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몽 Feb 04. 2021

나의 담이 벽이 되었다.

네 나무가 아니야

"00는 자기 닮아서 욕심이 많아"


신랑이 툭하면 내게 하는 말이다. 둘째가 언니를 졸래졸래 쫓아다니면서 언니가 하는 걸 다 따라 하고 언니가 먹는 것, 갖고 있는 것은 모조리 다 빼앗는 걸 보며 말하는 거다. 그나저나 내가 욕심이 많다고? 무슨 소리! 나는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 다만 내 것을 빼앗기고 싶지 않을 뿐이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나는 (지금에 와서 보니 이기주의에 가까웠지만) 남한테 피해를 주기 싫었던 만큼 남들도 내게 피해를 주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를 정해놓고 그 선을 넘으면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상대방은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선을 볼 수가 없다. 그러니 내 선을 넘는 것 따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땅따먹기도 아니고 굳이 내 선을 넘어설 이유가 없다.


9년 연애 후 결혼을 한 나는 긴 연애기간만큼이나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은 집안과 집안이 한다는 말이 맞았다. 9년 동안 비밀 연애를 했던 우리는 굳이 서로의 집을 들여다볼 이유가 없었기에 결혼 후 다가온 시댁의 무게는 어마어마했다. 4식구인 친정은 각자의 혈액형이 다 다른만큼 취향도 성향도 비슷한 구석이 많지 않았다. 자매는 옷 때문에 많이 싸우며 자란다지만 우리 자매는 서로의 취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언니의 옷을 몰래 입고 나갔다가 걸리는 일은 우리 집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시댁은 달랐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된다면 딱 이런 느낌일까 싶을 만큼 시댁은 공동의 물건이 많았다. 내가 샀지만 나의 물건이 아니라 모두의 물건이 된다. 성인이 되어 자녀들이 독립을 한 상태여도 물건들이 서로의 집을 오가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결혼을 한 이상 내 물건도 모두의 물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공동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내 물건을 내어줄 땐 꼭 내 것을 뺏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빌려달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못하는 성격이었다.


내 것을 꽁꽁 싸매고 있는 것이 남의 것을 탐하는 것만큼 욕심쟁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에 와서다. 온라인으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어느 순간 더 이상의 깊이 있는 관계는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왠지 그들이 나를 불편해하는 듯한 느낌이다. 동종의 분야였지만 그들은 함께이고 나는 혼자였다. 나는 왜 그들과 함께이질 못할까 생각하고 고민을 했다. 답은 나에게 있었다.


창업 관련 강의에서 내 상품의 디자인과 그림책테라피의 컨셉이 copy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내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내 것이 노출되면 다른 사람에게 아이디어 제공만 해주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아이디어 뺏긴다고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의 처음도 다른 누군가를 보며 시작하지 않았나요?"


선생님의 명쾌한 답변에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나는 내것은 뺏기지 않으려 하면서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림책 『이건 내 나무야』에서는 자기 것만 아끼다가 세상과 담을 쌓은 욕심쟁이 다람쥐가 나온다. 자신이 앉아 있는 나무가 곧 내 나무이고, 자신이 먹는 솔방울도 내 솔방울이다. 자기 것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함께 나누고 싶지 않아서 담을 쌓기까지 한다. 담 안에 홀로 갇힌 다람쥐는 문득 담 밖의 나무와 솔방울이 궁금해지고 결국 그것까지 욕심을 낸다.


여기에 나오는 다람쥐가 딱 나의 모습과 같다. 내 것이 소중해서 남들에게 뺏길까 봐 나만의 담을 쌓아놓고 살았다. 담 안에서 담 너머의 세상을 갈망하며 내게 도움될 것들만 쏙쏙 빼내어 자료를 수집하면서도 남들이 내 것을 가져가지는 않을까 견제하고 있었다.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이 거기서 거기이고 결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들었으니 비슷한 아이템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람들도 불편한 내 마음을 읽었던 것일까? 내가 내 일을 열심히 할수록 곁에 남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듯하다. 나만의 담을 무너트리면 나는 편히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어디까지 그들과 나눌 수 있을까. 그들 역시 나에게 나누어 줄 생각이 있기는 할까. 나는 아직도 위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이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아직 나눔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인가 보다. 내 것을 지키기 위한 담이 나를 막아선 벽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담을 무너트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의 맛, 비빔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