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없는 시모ㅣ뒷담화 하는 글
episode
이번에도 말씀하신다. 너희 필요할 테니 가져가라고 말이다. 이거 아주 좋은 건데 가져가서 써라. 이런 거 많이 필요하지 않느냐. 애가 어리니까 보온병은 필수다. 나는 남편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는 이미 내 눈빛을 받기 전에 자신의 엄마에게 계속해서 아니라고 필요 없다고 그리고 괜찮다고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듯이 내 시모는 자신의 말만 하는 일방적 스타일이라 그 상대가 본인 아들일지언정 그 필요 없다는 말은 묵살하고 무조건 가져가라고 하신다.
나는 "어머님 쓰세요"라고 던져보기도 했고 그렇게 좋은 거라면 그냥 두시라고도 해봤다. 그런데 그 물건은 누가 봐도 아주 좋은 건지도 그리고 꼭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미 내 아이를 위한 보온병은 고르고 골라 디자인까지도 깔끔한 것으로 아주 잘만 쓰고 있었고 이제는 이유식도 끝난 터라 굳이 이 한여름에 보온병을 찬장에서 꺼내 우리에게 건넬 때 나는 그것이 어머님이 집안 정리를 하다 버리긴 좀 그렇고 그렇다고 챙겨두기엔 별로인 물건임을 알았다.
그래 맞다. 이건 그냥 내게 버리는 물건이었다. 그런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굳이 나에게 왜 필요해야만 할 것처럼, 그리고 아주 좋은 것이라고 그렇게도 장황하게 목소리 높여 말하는 이유는 시모 본인도 참 민망해서였을 거다.
이놈의 남편 놈은 결국 일방적으로 권하는 자신의 엄마의 권유를 밀어내지 못하고 그걸 받아왔다. 집으로 가기 전에 제발 두고 오라고 이를 악물고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우리 집으로 이 물건을 절대 들고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내 말은 귓등으로 듣고 자신이 회사에 가서 쓰겠다며_ 가져가라는 엄마와 들여오지 말라는 아내 사이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회사에 들고 가서도 분명, 집에 몇 번이고 갖고 들고 들어올 테고 그보다 저렇게 큰 보온병에는 대체 뭘 얼마나 담아서 뭘 마셔대려는 건지 감도 안 온다.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참 좋은 브랜드라는 걸 말이다. 그런데 시모가 건넨 보온병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브랜드 - 예전에는 많이 썼을지언정 지금은 그 누가 찾아 쓰는지 난 잘 모르겠다. 아니 그냥 어머님은 매번 오랜된 그 브랜드의 아주 오래된 로그가 박힌 물건을 내게 버리시는것 같다. 누가 봐도 투박하고 장시간 외부와 단절된 채 찬장구석에 처박혀있었다는 게 빤히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보다 저 디자인은 레트로를 넘어서지 않았나 ? 언젠진 몰라도 삼십여 년 전에 구매해 짱박아두고 있던 빛바랜 박스 속 저 물건을, 내 취향도 아닌 저것을 굳이 정말 쓰고 싶지 않다. 난 정말 내 영역에 저런 물건이 들어오는 것이 싫었다.
솔직히 사진을 찍어두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냥 이것 좀 보세요. 이거 주는 의도 대체 뭔가요? 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에 찍어두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박스를 찍어둘걸 그랬다. 누가가에게 건네기엔 그것이 공짜라고 해도 건네기도 받기도 어려워 보이는 그 외관의 그 박스 말이다.
어머님이 주시는 물건들이 그 행색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편의를 위해 내게, 필요 없어진 것들을 처리하는 느낌이다.
회사에 가져가 사용하겠다던 남편은 보온병을 회사에 들고 간 적이 없다.
한번 씻어야 한다는 핑계로 내 기분이 상하도록 집으로 들고 들어와 가지고 나간 적도 없다.
결혼 초에 호의를 포장해 내게 이것저것 버렸던 접시 중 삼성마크가 찍혀있던 그 접시가 생각이 났다.
시모가 주신 그릇 중에는 심지어 수평이 맞지 않아 삐그덕 거리는 것이 두 개나 있었으며 지금은 글로벌 기업이 되었지만 그 옛날 고릿적 변경되기도 전인 1980년대 삼성마크가 떡하니 찍혀있던, 그러니까 아주아주 오래전에_ 그것도 어디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 같은 그릇까지 몇 개 끼어있었다.
시어머니의 호의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