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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며늘희 Jul 18. 2023

챙겨주는 물건

격식없는 시모ㅣ뒷담화 하는 글

굳이 챙겨주는 물건 : 필요 없는 에피소드







                     episode



이번에도 말씀하신다. 너희 필요할 테니 가져가라고 말이다. 이거 아주 좋은 건데 가져가서 써라. 이런 거 많이 필요하지 않느냐. 애가 어리니까 보온병은 필수다. 나는 남편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는 이미 내 눈빛을 받기 전에 자신의 엄마에게 계속해서 아니라고 필요 없다고 그리고 괜찮다고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듯이 내 시모는 자신의 말만 하는 일방적 스타일이라 그 상대가 본인 아들일지언정 그 필요 없다는 말은 묵살하고 무조건 가져가라고 하신다. 


나는 "어머님 쓰세요"라고 던져보기도 했고 그렇게 좋은 거라면 그냥 두시라고도 해봤다. 그런데 그 물건은 누가 봐도 아주 좋은 건지도 그리고 꼭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미 내 아이를 위한 보온병은 고르고 골라 디자인까지도 깔끔한 것으로 아주 잘만 쓰고 있었고 이제는 이유식도 끝난 터라 굳이 이 한여름에 보온병을 찬장에서 꺼내 우리에게 건넬 때 나는 그것이 어머님이 집안 정리를 하다 버리긴 좀 그렇고 그렇다고 챙겨두기엔 별로인 물건임을 알았다. 



그래 맞다. 이건 그냥 내게 버리는 물건이었다. 그런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굳이 나에게 왜 필요해야만 할 것처럼, 그리고 아주 좋은 것이라고 그렇게도 장황하게 목소리 높여 말하는 이유는 시모 본인도 참 민망해서였을 거다. 


아니, 그냥 분리수거를 해서 본인이 안 쓰는 거라면 버리면 그만인걸 

며늘희인 내게 이런 걸 건네어 꼭 기분을 상하게 한다.





이놈의 남편 놈은 결국 일방적으로 권하는 자신의 엄마의 권유를 밀어내지 못하고 그걸 받아왔다. 집으로 가기 전에 제발 두고 오라고 이를 악물고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우리 집으로 이 물건을 절대 들고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내 말은 귓등으로 듣고 자신이 회사에 가서 쓰겠다며_ 가져가라는 엄마와 들여오지 말라는 아내 사이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회사에 들고 가서도 분명, 집에 몇 번이고 갖고 들고 들어올 테고 그보다 저렇게 큰 보온병에는 대체 뭘 얼마나 담아서 뭘 마셔대려는 건지 감도 안 온다.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참 좋은 브랜드라는 걸 말이다. 그런데 시모가 건넨 보온병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브랜드 - 예전에는 많이 썼을지언정 지금은 그 누가 찾아 쓰는지 난 잘 모르겠다. 아니 그냥 어머님은 매번 오랜된 그 브랜드의 아주 오래된 로그가 박힌 물건을 내게 버리시는것 같다. 누가 봐도 투박하고 장시간 외부와 단절된 채 찬장구석에 처박혀있었다는 게 빤히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보다 저 디자인은 레트로를 넘어서지 않았나 ? 언젠진 몰라도 삼십여 년 전에 구매해 짱박아두고 있던 빛바랜 박스 속 저 물건을, 내 취향도 아닌 저것을 굳이 정말 쓰고 싶지 않다. 난 정말 내 영역에 저런 물건이 들어오는 것이 싫었다.


솔직히 사진을 찍어두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냥 이것 좀 보세요. 이거 주는 의도 대체 뭔가요? 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에 찍어두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박스를 찍어둘걸 그랬다. 누가가에게 건네기엔 그것이 공짜라고 해도 건네기도 받기도 어려워 보이는 그 외관의 그 박스 말이다. 




어머님이 주시는 물건들이 그 행색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편의를 위해 내게, 필요 없어진 것들을 처리하는 느낌이다. 






회사에 가져가 사용하겠다던 남편은 보온병을 회사에 들고 간 적이 없다. 

한번 씻어야 한다는 핑계로 내 기분이 상하도록 집으로 들고 들어와 가지고 나간 적도 없다.

 

나는 그것이 없었으면 가지 않아도 되었을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결혼 초에 호의를 포장해 내게 이것저것 버렸던 접시 중 삼성마크가 찍혀있던 그 접시가 생각이 났다. 



시모가 주신 그릇 중에는 심지어 수평이 맞지 않아 삐그덕 거리는 것이 두 개나 있었으며 지금은 글로벌 기업이 되었지만 그 옛날 고릿적 변경되기도 전인 1980년대 삼성마크가 떡하니 찍혀있던, 그러니까 아주아주 오래전에_ 그것도 어디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 같은 그릇까지 몇 개 끼어있었다. 


시어머니의 호의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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