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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매댁 Apr 08. 2021

결혼의 기록을 남겨볼까

남자와 사는 여자 이야기

곰서방과 결혼하고 2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6년을 연애했고 서로 눈빛이나 표정만 봐도 척하면 척-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같이 살아보지 않으면 모를, 내가 저 사람의 엄마가 아닌 다음에야 알 수 없는 모습이나, 결혼 후 가장이 되었다는 책임감에 새로 생겨나는 모습들도 많았다.


수건을 쓰는 방식, 개는 방식, 아침과 저녁의 루틴, 밥을 먹고 치우는 방식.. (나는 몰아서 치우고 곰서방은 쉴 새 없이 계속 치운다) (보는 내가 다 정신이 없)


다른 점들을 깨닫고 "아 이 사람은 이렇구나"라고 지나가거나 서로 자연스럽게 맞춰지기도 하지만, 도저히 이해하거나 맞추어지지 않아 피 튀기는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왜 수긍을 못하는지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도)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살아오며 여러 일을 겪고, 많은 생각들을 하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밤들을 지나왔고, 이 순간들을 기록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스쳐간 적도 있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과거엔 목숨 걸고 글을 쓰고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곤 했는데 말이지. 순간순간의 경험과 감정들을 촘촘히 글로 구체화하여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이 감정의 배출구와도 같았고, 조그마한 감정의 찌꺼기도 남지 않도록 정성을 다했다.


페이스북에서 "N년 전 추억을 확인해보세요!"래서 확인해보면 당최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거나 너무 오글거려 빠른 삭제를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긴 하지만


그러나 지금은 왜 타자 두세 줄 치는 것도 이렇게 힘들고 손이 가지 않는 걸까?


나이를 먹고 게을러진 것인가, SNS에서 글을 읽고 현실에서 만나 반응하는 사람들이 모두 진심 어린 공감(empathy)하는 이들만은 있는 것이 아니라, 관음증이나 비아냥, 오지랖의 차원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깨달아서일까. 혹은 극한 휘발성의 SNS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며 패스트 콘텐츠의 무용론에 빠져버린 것일까? 혹은 이 모든 것이 혼합된 결과인지도. (내 업무는 쉽게 비판하면서,내 인스타그램을 보고 "좋아보이더라~"하며 친한 척하는 극혐 상사에 대한 마음 같은 것?)


그러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워 먼저 잠든 곰서방의 코 고는 소리를 듣다 "이젠 글을 좀 적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16살에 조기유학을 떠나 청소년기와 대학시절을 혼자 보낸 나, 그리고 남중, 남고를 나와 형제도 남자 형제뿐인 곰서방. 9살의 나이차만큼 살면서 알아온 것도, 익숙한 것도, 감동받는 코드나 문화마저 다른 우리. 그런 여자와 남자가 한 집에서 살기로 하며 일어나는 일들, 소소하지만 마주쳐야만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어 졌다.





기록하면 또렷해진다.

어지러운 머리가 차분해지고 공간이 생긴다.

감정과 기억을 덜어낸 자리에 새로 맞이하는 경험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순간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고, 정의를 내리고, 가지런히 쌓아두어야겠다.

그래서 더 현명하게 사랑하고 행복해야지.



아기 낳고 키울 때까지도 계속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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