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받고 싶지 않아
결혼 후 첫 생리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신혼집에 들어오고 열흘 쯤 지나서였다.
힘든 준비과정 후 드디어 결혼식이 끝났다는 해방감과 더불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아무 생각도 걱정도 없이 돈을 팡팡 쓰며 오롯이 즐길 수 있다는 신혼여행! 게다가 꿈에 그리던 첫 유럽!
최상의 컨디션으로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식 4개월 전부터 달력을 펴놓고, 결혼식 3일 전에 생리가 끝나도록 머리를 굴리고 치밀하게 계산했고, 그에 맞추어 피임약을 먹었다.
신혼집 입성 후 21개의 피임약을 다 먹고, 매직 캘린더의 생리 예정일이 가까워지자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오빠 나 그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음.. 그게. 냄새가 좀 날 수 도 있어"
"냄새?"
"아무래도 피가 나니까.. 피비린내 같은게..? 예민한 사람은 난다고 하더라고. 오빠 냄새 잘 맡잖아."
6년이라는 긴 시간을 연애 했기에 생리를 한다는 말은 편하게 했지만, 하루 24시간 내내 붙어지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꺼낸 이야기였다. 보통의 냄새는 코 박고 맡아야 할 정도로 후각이 둔한 나도 가끔 나에게서 냄새가 나는데, 나보다 몇 배나 민감한 남편이라면 한 이불을 덮고 잠들고 깨는 생활에서 그 특유의 냄새를 맡을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heads-up(알림? 언지?)를 준 것이다.
결혼 전 엄마, 남편과 신혼집 생활용품들을 사러 갔을 때였다.
수납박스, 옷걸이, 쟁반과 락앤락 같은 주방 소품, 욕실 용품 등등.. 한 집을 채워 넣으려니 카트 2개는 거뜬히 차오르고 있었다. 주방 쓰레기통을 고르고 "이건 화장실용!"하며 2개를 더 골라 넣는데 남편이 묻는 것이다.
"화장실에 쓰레기통이 왜 필요해?"
그리고 엄마와 나는 동시에 대답했다.
"필요하지 당연히!" / "어머 얘.. 필요하지 여자들은!"
몇 초 후 그의 얼굴은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고, 난 그 때 알았다.
남동생과 자라 남중, 남고를 나온 그는 화장실 쓰레기통의 존재를 한번도 깨닫지 못하고 살았을 수도 있겠다는걸. 생리의 존재는 알아도, 우리는 당연히 알고 공유하는 그 안의 소소한 사실들은 알 기회가 없었다는걸. 철천지 원수라도 생리대만은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는 우리의 특이한 감성을 이해할 기회가 없던 사람. 내가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주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
지금 우리는 화장실을 각자 쓰기 때문에 남편은 쓰레기통의 존재를 다시 잊었을지도 모른다.
마트에서 세일하는 생리대를 카트에 담다가 남편에게 생리 한 번에 생리대 몇 개가 필요할 것 같냐고 물었더니
"한개?"라는 충격적인 답을 했다. 아이쿠. "그럼 내가 생리대를 왜 이렇게 자주 사는지 궁금하지 않았어?"라고 물으니 멋쩍게 웃는다.
혹시.. 하고 내 남동생에게 "여자가 생리할 때 생리대 몇 개 쓰는지 아냐?"라고 물으니 "2~3개?"란다. 그래도 누나랑 살았다고 니가 조금은 낫구나.
상대방은 민망하게 느낄 수 있는 생리 얘기를 자꾸 화제에 올리고 알려주려고 하는 것은, 그가 생리에 대해 빠삭히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물론 생리는 임신과 생명에 연결된 중요한 사건이고, 마치 그 중요성에 비례하듯(?) 재앙적인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걸 부각시켜 대접받고 싶은 것 또한 아니다.
다만 같은 집에서 살아가는 가족인만큼, 정확하고 현실적인 지식을 갖고 나를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램에서 시작된 것이다. 가끔 나에게 냄새가 나는 이유, 화장실 휴지를 남편보다 많이 쓰는 이유, 종종 아침에 일어나 긴장된 얼굴로 이불을 들춰보는 이유같은 것들 말이다. 게다가 분기에 한 번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 잦은 빈도로 일어나는 동거인의 삶의 루틴이기 때문이다.
오해 받고싶지 않아. 이해 받고 싶어.
성별과, 나이, 성격, 가정환경 만큼 우리는 서로 다르고, "이것도 설명해줘야 한다고?" 싶은, 나에게만 당연했던 일들이 무궁무진하다. 생리는 '그나마' 예상할 수 있는 다름 중 하나였지만, 그조차도 많은 설명과 이해의 영역이 생략되어 있었고, 그 지점을 찾아가야 했으며, 단지 친절한 설명이 얼마나 많은 오해들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는지 알게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