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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치열 Mar 15. 2022

사과

대선이 끝나고...

"이게 다 정의당 때문이야!"


대선이 끝난 다음날 아침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남편은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랐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재명이 좋아서가 아니라,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게 싫어서 그가 됐으면 했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 같은 입장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매우 근소한 차이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다.


남편은 낙담한 기색이 역력했고,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나의 낙담과 남편의 낙담은 깊이가 달랐다. 남편은 예전부터 민주당 지지자였다. 나는 정의당의 당원이다. 낙담의 깊이가 같을 수 없다. 나는 정의당의 당원이기에 양심에 비추어 보아도 우리당의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최악의 선거였다. 정권의 재창출이냐, 정권의 교체냐의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이곳에 적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든 윤석열의 당선을 막고 싶었다. 그의 낙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우리당의 후보에게 표를 주느냐, 싫어하는 사람의 당선을 막기 위해 다른 당의 후보에게 표를 주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이번 고민은 강도가 셌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심각하게 오랫동안 고민을 한 적은 없다. 평소의 나는 꽤 즉흥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만약에 후자를 택한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다. 당원들 보기에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할 것 같았다.


투표장에 가는 날까지 고민은 거듭되었다.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기표소에 들어서자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차악을 선택했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어 활개 치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아찔했다.

 

투표 시간이 끝났다.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아주 근소한 차이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다는 걸과다. 좌절했다. 남편에게는 이재명에게 표를 주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투표장에 가는 것을 보면서도 이번 한 번만 민주당에 표를 주면 안 되겠냐고 하지 않았다. 정말 간절했다면 말이라도 한번 꺼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본인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상대방의 소중한 투표권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의 고집은 아무도 꺾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서였을까.  


최종 개표 결과, 0.73%p차이로 윤석열이 당선되었다. 한숨이 나왔다. 윤석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우리당의 많은 당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이재명에게 표를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은 낙선했다. 그의 낙선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지난 5년간 민주당이 보여준 행보의 결과다. 국민의 눈은 예상보다 예리하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또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책이 부족했다. 그밖에도 낙선의 이유는 많지만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다.


워낙 박빙의 접전이어서 개표는 새벽에 끝났다. 출근하는 내게 남편이 내뱉은 나는 몹시 기분이 상했다. 바라던 결과가  나오지 은 것도 화가 나는데 정의당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자,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출근  자투리 시간을  카톡을 보냈다.  


"나도 사실은 이재명에게 표를 줬어.  말을 어제 하지 않은 , 쪽팔려서였어.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정의당 당원이잖아. 당원이 다른  후보에게 표를 준다는  말이  되는 일이잖아. 나 같은 당원들 피눈물을 흘리면서 이재명에게 표를 줬어. 그런데도 이재명이 졌어. 그게  정의당 때문이야? 정의당이 준 표 때문에 초박빙 선거가 됐어. 고마워해야   아니야? 당선이  되었으면   되었는지,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지.  탓하지 말고."


허탈하고 답답한 심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남편은 끝내 답장을 하지 않았다. 배꼽시계는 나의 허탈한 심정은 알 리가 없다는  요동을 .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몇 정거장을 지나자 카톡 소리가 났다.  


"나는 박정희나 전두환의 후예들이 만든 당의 사람은 안 된다고 봐. 과거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시절이 얼마나 혹독했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야. 다시 그 시절을 겪고 싶지 않은 거지.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더욱 간절히 이재명이 당선되기를 바랐어. 전체 지형을 보고 전략적인 행동을 하는 진보정당이었으면 해. 당신이 준 표는 고맙게 생각해. 아침에 화내서 미안해."


부글부글 끓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뭔가를 잘못한 , 사과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좀처럼 사과  같지 않던 남편에게 사과를 받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얼마 전에 오랜 친구가  때문에 화가  것을 알았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이 상했다면 무조건 사과를 하는  맞다.' 지론을 갖고 있다. 친구에게 사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달이 , 지나갔다. 시간이 흐르니  사과하기가 애매하다. 그래서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사과를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남편에게 원망 섞인 말을 들은 날, 분을 삭이지 못한 나는 출근하자마자 남편과 있었던 일을 페이스 북에 썼다.


“한집에서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이재명이 패배한 게 왜 정의당 때문이냐, 그동안 참고 살았지만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이혼각이다”등으로.


분노가 쌓이면 털어놓는 게 나의 스타일이다. 그런데 퇴근길에 남편의 사과를 받았다. 저녁도 든든히 먹었다. 대통령 선거는 내 뜻대로 안 되었으니 오늘은 일찍 자자.


다음날 아침, 남편은 인상을 쓰면서 또 볼멘소리를 .


"집에서 있었던 일을 SNS에 올려서 방방곡곡 소문을 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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