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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치열 Apr 13. 2022

생일이 뭐라고

우리는 왜 생일을 기념할까?

“생일 축하합니다. 즐거운 수요일 하루 되십시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생일 축하해요! 행복한 일 많으시길. ^^”


4월 6일 아침에 온 카톡 메시지다. 해마다 4월 6일이 되면 친한 지인들은 물론 소식이 뜸했던 지인들까지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엉겁결에 축하 메시지를 받고 고맙다는 답장을 한다.  사실, 내 생일은 4월 6일이 아니다. 주민등록상에 기재되어 있는 날짜일 뿐이다.  


나는 지인들의 생일을 잘 챙긴다. 내 성격은 누군가를 잘 챙기는 성격이 아닌데도 희한하게 생일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선물을 하지 못하면 축하 메시지라도 꼭 보낸다. 물론 내가 아는 모든 지인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다섯 명을 넘지 않는다. 다섯 명이 나의 기준에서 제일 친한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다섯 명의 생일을 챙기는 ‘기준’은 알고 지낸 세월과 비례한다. 한 가지 이유를 더 붙이면 날짜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기억력은 믿을만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생일을 챙기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축하를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언젠가 생일을 왜 챙기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지인들이 내 생일에 축하를 보내면 쑥스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그동안 부모님의 생일은 잘 챙기지 않았다. 아버지의 생일을 챙긴 게 4~5년 되었다. 아버지는 30대 후반에 어머니와 이혼을 하시고 자식 네 명을 홀로 키우셨다. 남성 혼자 재혼도 안 하고 4형제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짐작하기 힘들다. 그런 아버지에게 살가운 표현은 못할망정 툴툴거리기 일쑤다. 아버지는 올해 팔순이 되셨다. 

언제나 툴툴거리기만 하는 큰 딸인데도 싫은 내색도 안 하시고 우리 집에 오실 때는 항상 먹을 것을 바리바리 들고 오신다. 


“제발, 먹을 것 좀 갖고 오지 마. 냉장고가 작아서 넣을 곳도 없단 말야.” 


내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다음번에 오실 때도 아버지의 양손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들려있다. 


나에게는 올해 스물다섯 살이 된 딸아이가 있다. 딸아이에게는 살갑다 못해,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살뜰히 챙기고 애정 표현을 한다. 뭐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서 안달이다. 그때마다 아이는 말한다. 


“왜 그렇게 뭘 주고 싶어서 난리야? 방금 밥 먹었잖아. 배불러 죽겠어. 그만 좀 해.”


아이에게 한 소리 들으면 서운한 마음은 금할 길 없다. 아이가 싫다는 건 그만해야지, 하며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만다. 그런데도 툴툴 거리는 아이가 밉지 않다. 아이에게 그렇게 당하면서도 아이가 나에게 보인 행동을 그대로 아버지에게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아버지도 사람인데 왜 서운한 마음이 없겠나. 하지만 아버지의 서운한 마음은 헤아리지 않는다. 


아버지의 생일이 다가오면 얼마간의 금일봉을 보낸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꼭 답장을 하신다. 


“고마워. 잘 쓸게.” 


굳이 인사치레 같은 건 안 해도 되건만, 아버지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예의 바르시고 화도 안 내고 온화하신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고 화도 잘 내고 까칠한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아이는 아직 한 번도 내 생일에 축하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아마도 내 생일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내 생일을 알려줄 생각은 없다. 내 생일을 굳이 아이에게 알려야 할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 


내 생일은 음력 3월 21일이다. 카카오 톡이 음력 생일로 알린다면 나의 진짜 생일에 축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없으니 이번엔 내가 알려야겠다. 


“오늘 저녁에 한 잔 하자. 이유는 묻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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