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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치열 May 19. 2022

드디어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 왔다

마을문화예술교육지원 프로그램으로 합창단 활동을 시작

“어디 가서 절대 노래 부르지 마”


티브이나 라디오에서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른다. 그때 남편이 하는 소리다. 내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내가 들을 때는 음정이 틀린 것 같지 않은데, 다른 사람이 들을 때는 원음과 많이 다른가보다.


나는 듣기가 취약해도 음악은 좋아한다.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긴다. 짐작컨대 청력이 안 좋아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음정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청력이 나빠졌다고 노래부를 때 음정이 틀릴 거라는 예측은 하지 못했다. 오만한건지 둔한건지 내 음정이 틀린다는 것을 10여 년 전에야 알았다. 어느 날, 거짓말은 절대 못하는 한 지인이 내 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정이 하나도 안 맞아.”


나는 그동안 내가 부르는 노래의 음정이 원음과 다르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원음과 다르게 부르는 내 노래를 듣고 사람들은 왜 박수를 크게 쳤을까. 왜 나에게 음이 틀리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당시만 해도 나는 노래 부를 기회가 오면 “저는 음치예요(그래서 노래를 못 불러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시키지 않아도 손을 번쩍 들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방에 간다면 앞장서서 가고, 마이크를 잡았다. 그렇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차마 ‘네가 부르는 노래는 음정이 하나도 안 맞아 듣기 곤혹스러웠’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으랴. 그것은 마치 흡연자에게 금연을 하라는 것보다 잔인한 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자리를 빌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준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며칠 전, 내가 후원하고 있는 단체의 카톡방에 “마을을 생각하고 함께 노래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관심 있는 사람은 신청을 바란다”는 글이 올라왔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마을합창단을 만들어 노래 부르고 공연하고 악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곧이어 주최 측에서 덧붙였다.


“합창단을 꾸려야 해서 부득이하게 오디션을 보려고 합니다. 장르는 정하지 않습니다. 부르고 싶은 노래를 정하시고, 왜 그 노래를 선택했는지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신청할까? 말까?’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 나는 5초 동안 망설였다. 5초 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신청서가 접수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제는 빼도 박지도 못한다. 사흘 후에 ‘오디션’에서 부를 곡명을 정하는 일만 남았다. 음치가 음치를 들키지 않고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무엇이 있을까. 머리를 굴렸지만 어떤 노래를 불러도 내 음은 맞지  않는다는 걸 또 잊어버렸다. 결국 부르기 쉬운 동요, ‘오빠 생각’을 부르기로 했다.  


오디션 당일이 되었다. 낯선 사람이 많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각자가 정한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다들 잘 불렀다. 내 차례가 왔다. 떨리지는 않았지만 차마 노래를 부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디 가서 노래 부르지 말라는 남편 말도 생각났다. 그냥 포기할까, 하는데 옆사람이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고 말했다. “어서 노래하시죠.”


한 차례 구겨진 체면이 더 구겨지기 전에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오빠 생각’을 불렀다. 서울 가신 오빠를 애타게 기다리는 여동생의 슬픔을 담아 ‘오빠 생각’을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박자와 음정이 맞느냐 안 맞느냐가 더 중요했다. “비이~단 구~우~두 사 가지고 오~오~신 다아~더니~~~” 혼신을 다해 마지막 구절을 불렀다. 노래를 마치자, 합창을 이끌어갈 강사가 말했다.


“노래 못 부르는다는 것 엄살이었네요. 잘 부르셨어요.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입을 크게 벌리고 큰 소리로 노래 부르세요. 틀려도 괜찮습니다"라고 말씀 하시는 멋진 송희태 선생님!

강사의 피드백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확신에 찬 얼굴로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이었다. “따라오라”는 네 마디 말은 노래를 잘 불렀다는 말보다 몇 배는 더 반가운 소리였다. 강사는 노래를 못 부르는 한 중생을 구했다. 우주 최고의 음치를 버리지 않았다. 이번 마을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의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코 최고의 강사를 섭외했다는 것으로 하겠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솔직히 말하면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쪽팔림보다, 의욕을 가지고 참가한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더 컸다. 독창도 아니고, 합창인데 나하나 때문에 합창을 망치면 안 되니까. 옥에 티를 만드는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강사는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듯이 싸인을 보냈다. ‘음치면 어때? 우리는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모인 거지 노래자랑 하려고 모인 게 아니야.’


코로나19로 원활한 대면 활동을 못한 지 3년째다. 무엇을 하든 방역지침을 지켜야 했다. 각종 통제가 많았다. 인원 제한이 있고, 마감 시간이 정해졌고, 사적 모임이냐, 공적 모임이냐를 구분해야 했다. 피로도는 점점 높아갔다. 자유를 통제받고 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하루빨리 지옥 같은 나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가 4월 중순부터 서서히 확진자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방역지침을 해제한다는 발표를 했다. 드디어 통제의 시간이 끝났다. 나는 환호했다.


방역지침이 풀린 지 일주일 후, 마을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의 합창단 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받았다. 가뭄 속 단비 같은 소식이다. ‘고래이야기’라는 용산구 효창동의 마을 도서관에서 모인다는 알림이 왔다. 첫 모임 날, 기획자는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이에요.  노래를 잘 부르고 못 부르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함께 모여서 오아시스 같은 시간을 만드는 거예요.”


실내 마스크는 아직 해제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마스크 속에서 입꼬리를 올리고 웃고 있을 것이다. 오디션을 위해 노래 부를 때 잠시 마스크를 벗은 얼굴은 상기되었고 환한 표정이었다. 오랜만의 대면 모임이어서인지 생동감이 넘쳤다.

5월 17일, 용산의 작은 도서관 '고래이야기'에서 합창 연습을 하고 있는 참여자들.


“제가 정신적으로 좀 아파요. 마땅한 취미활동을 찾다가 페이스북에서 공고를 보고 신청했어요. 합창을 하면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참여하게 됐어요. ”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청년은 참여 동기를 위와 같이 말했다.


“저는 용산구 주민이에요. 용산연극협회에서 일 하고 있어요.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사람을 못 만나서 답답했어요. 용산과 관련된 연극을 만들고 싶어요. 주민들과 친해지고 싶고, 용산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어요.”


저마다의 참여 이유가 각별했다. 이쯤이면 나의 참여 동기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우긴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다양한 연령대에서 모였다. 함께 노래부르면서 마음을 열고, 마을의 역사를 알고, 악기도 배울 수 있으니 일타쌍피가 아니라, 일타N피다.


“삐삐삐삐~”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남편이 귀가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 합창단 오디션에 합격했어. 연습해서 공연도 한대. 공연하면 꽃다발 사 갖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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