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명부터 키우는 유튜브 (재)도전기
그날, 13,000명이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적으로 유튜브 스튜디오 앱을 켰다.
'어?'
로그인이 안 됐다. 비밀번호를 잘못 쳤나 싶어 다시 입력했다. 그래도 안 됐다. 이상하다 싶어 PC로 확인했다.
채널이 없었다.
'마케팅김이사' 채널. 13,000명의 구독자. 5년간의 기록. 그 모든 게 한순간에 사라졌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다음엔 화가 났다. 그리고 나서는... 묘하게 후련했다.
5년 차가 0으로 돌아가는 기분
온라인 마케팅을 오래 했다. 블로그도 했고, 페이스북도 했고, 인스타그램도 했고, 유튜브도 했다.
나름 전문가라고 자부했다. 강의도 하고, 컨설팅도 하고, 책도 냈다. "어떻게 하면 채널을 키울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 채널은 사라졌다.
아이러니하지 않나. 채널 키우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채널을 잃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가, 2025년의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구독자 0명부터 시작한다면?'
이 질문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 과정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실패를 숨기지 말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자.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진짜배기 콘텐츠가 될 거라고.
그래서 결심했다. 0명부터 다시 시작하되,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하기로.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 Day 1.
유튜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제다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주제 선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단 시작하고 보자"며 유튜브를 시작한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15년간 이 바닥에서 구르며 배운 게 있다.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리 달려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
유튜브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1년, 2년, 어쩌면 5년을 달려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주제는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나는 수첩을 꺼내 들고, 세 개의 원을 그렸다.
이키가이, 혹은 나를 찾는 법
일본에 '이키가이(生き甲斐)'라는 말이 있다. 삶의 보람, 존재 이유를 뜻하는 말이다.
이키가이는 네 개의 원이 겹치는 지점을 찾는 개념인데, 나는 유튜브에 맞게 세 개로 단순화했다.
첫 번째 원: 내가 잘 알고 잘 하는 것 두 번째 원: 시장(유튜브)이 원하는 것 세 번째 원: 지속가능한 것
이 세 개의 원이 겹치는 지점. 그게 내 유튜브 주제가 되어야 한다.
첫 번째 원: 내가 잘하는 것
수첩에 적어 내려갔다.
15년간의 온라인 마케팅 경험
AI 도구 활용 능력 (요즘 매일 쓴다)
노션, 메이크 같은 자동화 도구 전문성
콘텐츠 제작 및 강의 경험
적다 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15년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두 번째 원: 시장이 원하는 것
아무리 내가 잘해도, 아무도 관심 없으면 소용없다.
유튜브 검색창에 몇 가지 키워드를 쳐봤다. '직장인 생산성', 'AI 업무 활용', '업무 자동화', '노션 활용법'...
검색량도 괜찮았고, 관련 영상들의 조회수도 나쁘지 않았다. 시장은 있었다.
세 번째 원: 지속가능한 것
이게 가장 중요했다.
유튜브는 마라톤이라고 했다. 1년, 2년 꾸준히 할 수 있는 주제여야 한다.
나는 이 기준으로 많은 주제를 걸러냈다.
'AI로 돈버는 법' - 할 수는 있지만,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AI 영상 만들기' - 트렌드를 쫓아가는 건 피곤했다. '최신 AI 뉴스' - 뉴스 채널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는 트렌드를 쫓기보다, 본질에 집중하고 싶었다. 5년 후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세 개의 원이 겹치는 지점
수첩에 적힌 세 개의 원을 보면서, 겹치는 지점을 찾았다.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AI 도구 사용법
AI로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 튜토리얼
일 잘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 강의
큰 틀에서 보면 '일잘러를 위한 AI 도구 활용'이었다.
채널명은 '김이사 - 일잘러의 AI 철물점'으로 지었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철물점에 가면 필요한 연장을 찾을 수 있듯이, 이 채널에 오면 일 잘하는 데 필요한 AI 도구를 찾을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일잘러의 비밀
일 잘하는 사람의 비밀은 뭘까?
더 오래 일하는 것? 더 똑똑한 것?
15년간 일하면서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올바른 도구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
목수가 좋은 연장을 쓰면 일이 빨라지듯이, 직장인도 좋은 도구를 쓰면 업무 효율이 달라진다. 특히 AI 시대에는 도구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일의 성과를 결정한다.
나는 이 채널을 통해, 사람들이 AI와 자동화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일잘러'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게 내 이키가이였다.
물론, 성공을 보장할 순 없다
주제를 정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알고리즘은 변덕스럽고, 시장은 예측 불가능하고, 운도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방향은 맞다고 확신한다. 이 길로 가면, 설령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다음은 시장 분석
주제를 정했으니, 이제 다음 단계다.
Day 2에는 시장 분석을 할 예정이다. 경쟁 채널은 누가 있는지, 잘되는 콘텐츠 패턴은 뭔지, 내가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딘지.
Day 3에는 채널 기획을 한다. 채널명, 프로필, 배너, 초기 콘텐츠 10개 기획, 업로드 스케줄까지.
이 여정의 끝은 2026년, 이 채널이 어디까지 갈지 나도 모른다.
다시 11,000명을 회복할 수도 있고, 100명에서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를 투명하게 기록하는 것. 실패도, 시행착오도, 작은 성공도 전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게 이 프로젝트의 의미다.
13,000명 채널을 잃은 마케터가, 0명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