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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19. 2020

실수를 만회하다.

 어제 대형사고를 하나 쳤다. 학교의 여러 목적으로 잡혀 있는 예산 중 '강사료'라는 예산이 있는 것으로 올해 내내 기억을 하고 있었다. 올해 안에 집행을 해야 되는 예산이어서, 부랴부랴 강사를 섭외까지 해 두고 마지막으로 강사료 지급 방법만 남아 있던 단계였다. 그런데, 회계 프로그램을 열어 보니 아뿔싸. 애초에 강사료로 잡혀 있는 예산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사고가 터지려면 여러 겹의 사소한 실수들이 겹친다더니, 나뿐만 아니라 함께 일을 했던 다른 선생님들조차도 '강사료'가 분명히 있는 것이라고 너무 확고하게 믿어 아무도 사전에 프로그램을 열어 '진짜 예산'을 확인해 볼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의논을 할 다른 분들은 연락을 안 받으시고, 취소를 할래도 1분이라도 빨리 하는 게 낫겠다 싶어 강의를 해주시기로 한 분께 전화를 들렸다. 여자저차 사정을 말씀드리고, 정말 내가 아는 모든 사죄의 말을 덧붙이며 사과를 하려는 차에, 그 분이 꺼내신 말,

"아, 강사료 안 받아도 돼요. 선생님들과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그런 거니까 그냥 할게요."

 천사의 재림이 따로 없다. 그래도 사회의 갑질이며 재능기부니 하는 것들에 열을 내며 살아온 터라 그 분의 호의와 양해로 넘어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벌충할 수 있는 돈들을 깨알같이 찾아 내, 그 분께 강사료는 지급해 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강사를 섭외해주셨던 다른 선생님께 다시 전화가 왔다.

 "제가 얘기해 봤는데요, 학교 사정 뻔히 아는데, 다른 예산 억지로 끌어서 강사료 지급하시려면 선생님도 너무 복잡하시잖아요. 그냥 저희끼리 이번엔 좋은 마음으로 함께 하는 걸로 해요. 제가 그 분께 밥 한번 사기로 했으니까 그걸로 털면 돼요. 이 선생님도 자기가 공부한 거 나누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라 강사료 같은 건 신경 안 쓰시더라고요. 진짜 괜찮으니까 마음 놓고 진행하세요."

 두 번째 천사가 나타났다. 나중에 약소한 선물로라도 대신해야되겠다 마음은 먹었지만 그 와중에도 민망하고 망신스런 마음은 감출 길이 없었다.

 

 애초에 강의를 듣고자 했던 내용은 올 한 해 수업의 내용과 방향이었다. 올해 목전에 닥친 상황들에 시시각각 각개전투처럼 대응해 수업을 때우다 보니 정말 제대로 수업을 꾸려나갔던 이들의 경험담이 절실히 필요했다.

사실 내 실수는, 잡힌 일정이 뒤엎어지는 것을 넘어서 우리 학교 전체가 싸잡혀 욕을 먹어도 내 입장에선 할 말이 없는 수준의 일이었다. 그러나 '수업'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그 분께 전달이 되었고, 그 분또한 그것을 목적으로 하였기에 받아야 마땅했던 보상에도 개의치 않고, 계속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신 거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서야 사실을 안 나머지 선생님들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연수니 갹출해서라도 강사비를 보전해 주자며 의견을 보태셨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목적이 구성원들에게 공유가 되고, 거기에 대해 공감하고 진심으로 반응하면 이렇게 나 같이 엉망인 사람이 한 명 있을지라도 그 구멍들을 함께 메워나가며 일들을 진행해 나갈 수 있다. 내 잘못을 어떻게든 미화하고 합리화해 보자면, 나의 실수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 속에서 함께 좋은 수업을 만들어 가자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니, 그 다음 과정들이 수월하고 명료해졌다.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떠한 내용을 배우고 공부해 나가야 하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판이 마련되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본래의 진심을 알지 못했다면 나에게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고, 나는 자괴감에 빠진 채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 버렸을 게다.


 무슨 일이건, 그저 내가 생각한대로 빨리빨리 일을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무슨 일이건, 함께 하는 이들이 목표를 공유하고 뜻을 모아 가는 것. 그 일이 잘되느냐 못되느냐는 결국 일에 참여하는 개인의 능력치가 아니라, 이런 마음들에 의해 결정이 된다는 것.

 생각해 보니, 10여년 전쯤 회사가 총력을 기울여 만든 영화가 흥행에서 참패하여 회사 전체가 흔들리던 시절, 물에 잠겨가는 배에서 혼자 살겠다고 도망나오는 모양새로 학교로 빠져나갔다. 회사의 모든 자본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 그 안에서 일하는 이들이 서로 각각 다른 목표를 꿈꾸고 있었기에 영화도 회사도 악화일로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더랬다. 퇴사 전 어떤 일을 하려면 구성원들의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는 전체 메일을 마지막으로 보내놓고 회사를 나왔다. 그때의 마음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다. 여전히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더디게 성장해 가고 있는 사람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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