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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30. 2020

예비 번호

고3 들의 잔인한 희망 고문 

 지난 주까지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지원했던 아이들의 합불 결과가 모두 발표되었다. 대학의 이름이 지나치게 큰 의미를 갖게 해서는 안된다고, 합격이냐 불합격이냐가 인생에서 행복이냐 불행이냐를 결정지을 순 없는 거라고,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아이들의 삶이기에, 나의 성과나 실책으로 돌려서는 안된다고 떠들어왔지만, 막상 합격과 불합격을 하나하나 조회해 가는 내 마음은 마지막 번호인 아이의 결과를 확인할 때까지 긴장감이 뒤덮고 있었다. 

 이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게 '예비 번호'를 받아 든 아이들이다. 불합격은 불합격인데, 어쩌면 나중에 합격이 될지도 모르는 불합격? 

 예비 번호를 받고 나면 그 학과와 전형의 모집 정원은 몇 명인지, 그 전에는 예비 번호 몇 번이나 추가로 합격 통보를 받았는지를 살피며 '합격'에 얼마나 근접한 '불합격'인지를 가늠하게 된다. 몇 차례의 공식적인 추가 합격 발표 이후엔, 입학처에서 아이들의 전화로 추가 합격임을 통보해 주기도 하는데, 입학 직전까지도 그 과정이 계속 진행 중인 곳들이 있으니 그간 아이들은 '희망 고문' 속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던 시기의 일이다. 소위 직장 어린이집이라 사원들에게 인기가 꽤 높아 들어가기까지 경쟁도 나름 치열했다. 여직원 우선, 경력이 오래된 사람 우선 등의 기준에 의해 선발을 하는데, 남편이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축에 속하는 터라 첫째도 수월하게 입소할 수 있어 둘째 아이도 당연히 무사 통과일 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 올해 유난히 아버님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 어린이집 신청을 해서, 저희가 점수를 미리 내 봤더니  00이가 순위에서 좀 밀리네요. 다른 곳도 좀 알아보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 

  그나마 나이 많은 아빠에 언니가 재원 중인 덕을 봐 예비 번호 1번으로, 둘째 아이의 첫 '선발식'은 '불합격'으로 시작했다. 결과적으론 다행히 딱 한 명의 아이가 빠져나가 입소 직전 둘째 아이에게 순번이 돌아왔지만, 예비 번호를 받고 순서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마음은 정말 심란했다. 

 '인기가 많은 어린이집인데 누가 나갈 리가 없지.' 라고 단념하며 동네 어린이집을 알아 봤다가, '아니야, 아직 애들 나이가 어린데, 누군가 적응을 못하고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어.' 라며 죄없는 남의 아이의 부적응을 기대하는 나쁜 마음도 먹어 봤다가, '아이씨, 차라리 떨어질 거면 아예 꿈도 못 꾸게 떨어질 일이지, 기대를 버리지 못하게 하는 대기 1번이 도대체 뭐람.'하고 원망도 해 봤다가.  

"에이, 1번인데 되겠지.", "동생은 다른 데 보내야겠네." 등등 주변에서 한 마디씩 거드는 말들은 내용을 불문하고 또 어찌나 듣기가 싫은지. 


 한낱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것도 이랬는데, '대입'을 앞둔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싶어 예비 번호를 받아 든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떤 아이는 추가 합격 발표가 날 때까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도 하고, 어떤 아이는 눈물을 참고 있었는데 내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며 꺼이꺼이 통곡을 하기도 했다. 딱 바로 앞 번호까지만 추가 합격이 되거나, 예비 번호 1번을 받고도 빠지는 인원이 없어 분루를 삼킨 아이들도 있지만 합격 가능성과는 거리가 한참 먼, 아이들끼리의 은어, '우주 예비'를 받고서도 막판에 합격 통보를 받고 '문 닫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 왔기에 잘될 거라는 말도, 아쉽지만 단념하자는 말도 해 줄 수가 없다. 그토록 고생을 하며 여러 난관을 거쳤건만, 마지막 순간까지 시험대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의 시기처럼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보낼 수 있는 시간들이 다신 찾아오기 힘들텐데 그런 여유를 마음 졸이며 보내야 하는 게 무엇보다 안쓰럽다.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이 그저 언제 올지 모르는,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합격 통보를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니 너무나 잔인한 희망 고문이다.  

 

 "예비 번호를 받았다는 건, 합격한 애들과 점수 차가 크지 않다는 걸거야. 네 능력은 충분히 증명이 된 거고, 혹시나 불합격을 하더라도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대학에서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걸거야. 할 만큼 다 했고, 이젠 걱정을 하거나 신경을 쓰고 있대도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히겠지만 그래도 마음을 좀 비우고 편히 쉬기라도 해. 결과가 좋으면 너무 다행이지만, 아니면 또 그 때 가서 다른 길들을 같이 찾으면 되지. 널 예비 번호로 밀어낸 학교들은 참 징그럽게 사람 보는 눈도 없네. 망해라 그딴 학교." 

 

 담임으로서는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게 괴로운 지점이다.

 대학에서 들으면 어이없겠지만, 힘들어 하는 애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괜히 대학들에 엄한 저주나 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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