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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04. 2021

누군가의 실수 앞에서 취해야 할 태도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때의 나는 지독한 결벽증이 있었다. 내 몸과 내 손에 닿는 모든 것은 깔끔하고 위생적이어야 했다. 내가 살았던 지방 작은 동네의 오래된 학교 화장실과 나의 궁합은 최악이었다. 그때 막 공공 건물들의 화장실이 '푸세식' 에서 '수세식' 화장실로 개량되어 가던 시점이라 학교 건물 안에 있는 화장실은 수세식이었지만, 건물 밖에는 여전히 반경 몇 십미터부터 고약한 냄새로 존재감을 알리는 재래식 화장실이 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건물 안팎에 있는 화장실 모두 내 기준에는 한참 못 미쳐, 나는 초등학교 생활 6년 내내 학교 화장실을 이용한 횟수가 열 손 가락 안에 들어왔다.  그마저도 한 번 가고 나면 화장실의 자태(?)와 냄새를 잊지 못해 그 후로도 며칠 헛구역질을 하곤 했다. 

 이렇게 남다른 '위생 관념' 탓에 사단이 났던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수업 시간에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세식은 고학년 전용이었고, 1,2학년은 건물 밖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니, 내 딴에는 집에 갈 때까지 어떻게든 참아 보려 용을 쓴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수업 시간에 맥을 끊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감히' 쉽게 할 수 없어 쉬는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이면 소변이 급한 아이들이 여기 저기서 요의를 참느라 엉덩이를 들썩이던 시절이었는데, 화장실을 가겠다며 교실 밖으로 뛰쳐 나왔던 걸 보면 정말 참기가 힘들었었나보다.  곧 큰 일을 치르고 말 것 같아 뛰지도 못하고 종종 걸음으로 화장실을 향해 가는데, 엉덩이를 잔뜩 조이던 힘이 풀리며 팬티 속으로 뜨거운 느낌이 전해져 왔다. 한 번 힘을 놓아 버리니 이제 내 육체는 더 이상 뇌의 명령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몇 시간을 버티고 있던 장 안의 내용물들이 눈치도 없이 계속 바지 안으로 쏟아졌다. 이대로 교실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양호실로 갔고, 한가히 앉아 계시던 양호 선생님은 똥을 뒤집어 쓴 채 나타난 학생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져 빨리 집으로 가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눈물밖에 나오지 않아, 나는 엉엉 울며 집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학교에서 집까지는 왜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골목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왜 또 그리 날 빤히 쳐다들 보는지. 집에는 직장에 나가셨던 엄마를 대신해 우리를 돌봐주셨던 도우미 할머니가 계셨다. 집이 가까워질 수록 이 꼴로 현관문을 여는 것도 두려워졌다. 

 난데없는 초인종 소리에 할머니가 문을 여셨고, 현관 앞에서 울먹이며 있는 나를 보고 단번에 상황을 알아 채셨던 것 같다. 내 예상과는 달리 할머니는 똥 범벅이 된 나를 보자마자 꼭 품에 안아 주셨다. 

 "얼마나 놀랐니, 그래. 괜찮아, 그럴 수 있어."

 할머니는 나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몸을 구석구석 씻겨 주시고, 더러워진 옷들도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빠셨다. 몸을 씻겨 주시는 중간중간에도 '괜찮아' 라는 말을 수도없이 해주셨던 것 같다. 3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여전히 나를 위로해 주시던 말투와 손길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내가 학교에 두고 온 짐을 어떻게 가지고 왔는지, 다음날 책가방을 가지고 갔는지 아닌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졸업 때 초등학교 6년 개근상까지 탄 걸 보면 뒤늦게 사실을 안 엄마와 담임 선생님이 모종의 협약 속에 그 다음의 상황들이 자연스레 잘 마무리가 되었었나보다. 


 새해가 되고, 며칠 후에 있을 졸업식에서 아이들을 떠나 보내며 새 아이들을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불현듯 할머니의 생각이 났다. 그때의 내가, 지금도 입밖으로 꺼내기 민망한 실수를 해 놓고서,  다음 날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건 '괜찮아.' 라는 말 덕분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이들의 실수에 유독 야박한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누군가 일을 그르치면 실수를 수습하거나, 그 원인을 찾아 다시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보다, 꼭 실수를 범한 이들을 지목해 '탓'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 앞에서 실수를 하지 않으려 신경 쓰다 보면 늘 틀에 박힌 대로, 하던 대로만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는 말과 행동을 삼가니, 일을 할 때 더 쉽거나 새로운방법들을 생각하고 실현해 나가는 사람들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타인의 실수에 박할 수록, 자신이 실수할 때에도 자괴감에 빠져 쉽게 극복하지 못해, 남들 보기엔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스스로를 옥죄는 경우도 많다. 결국 나나 우리에게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이다.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끌어안고, 함께 해결해 나가고 '괜찮아'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나도 그 때의 할머니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새해 첫 출근 전, 스스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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