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졸업식은 수능 수험표나 성적표를 나눠주었을 때처럼 '워킹 스루'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말은 졸업이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교실에 출입했던 시기는 11월 중순 이후 경이 마지막이었으니, 원격 수업 기간 중이래도 사실상 12월 내내 졸업한 상태나 다름 없던 상태였기에 '졸업'이라는 단어를 들어도 별다른 감흥이 오지 않았다. 학기말이면 으레 따르는 이런저런 잡무를 하고 늦게 퇴근한 후, 졸리고 지친 나와 안 자고 싶고 마냥 뛰놀고만 싶은 아이들의 기싸움이 벌어지던 무렵, 휴대전화에서 소리가 나서 보니 우리반 M에게 장문의 메시지가 와 있다.
M은 고3 생활 내내 '공부만 잘 했다'고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아이였다. 학교에 오면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늘 자리에 앉아 공부만 했고, 시험 기간 전후로는 역대급으로 불안해하고 예민해했고, 그렇지만 항상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맞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교사 입장에서도 '재수없는 아이'.
아니나 다를까 모든 입시의 과정들이 끝나가니 M은 말 그래도 '행방이 묘연'해졌다. 학급 단톡방에서도 일찌감치 빠져나갔고, 내가 개별적으로 보낸 메시지도 확인조차 하지 않았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나도 모르게 머릿 속에 '재수없는'이란 수식어를 다시 한 번 쾅 박아두고, 더 이상 연락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 M에게 편지가 날아든 거다. 메시지 안에는 자기가 수시를 준비하고 합격과 불합격이 발표될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수능을 치르기까진 얼마나 불안감에 시달렸는지, 생각하지도 못했던 좌절의 순간도 있었지만 원하는 대학에 합격해 얼마나 기쁜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해 준 내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명랑한 모습으로 학교 생활을 하지 못해 나에게 얼마나 미안해 하는지 순간 순간의 감정들이 담담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M은 재수 없던 아이가 아니었다. 그저 편견에 사로잡혀 겉으로 드러나는 아이의 단편적인 모습들만을 보고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한, 내가 재수 없는 교사였다.
아이들을 얄팍하게 파악하고 재단하는 나 같은 교사 뒤로,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은 얼마나 깊은지, 그 안에 내가 보지 못한 얼마나 큰 우주가 있는지. 다시금 깨닫고 또 깨달으며 마무리하게 된다.
학급 단톡방에 들어가 졸업식 시간과 방법을 안내하고 나니, 아이들은 지들끼리 교복을 입고 단체 사진을 찍자는 둥, 그러면 얼어 죽는다는 둥, 너무 아쉽다는 둥 난리가 났다. '워킹 스루' 의 형식 속에선, 아이들의 마음까지도 그저 학교를 지나쳐만 가리라는 나의 생각도 틀렸었던 것.
폭설이 내려 눈이 소복히 쌓인 거리를 보며 내일 일찍 일어나 눈사람을 만들겠다는 포부에 가득 차 있는 딸 아이들 소리를 들으며, 나도 내일은 일찍 일어나 졸업식장에 축하한다는 말이라도 붙여 놓고, 온마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