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승희 Feb 26. 2019

아주 긴 여름을 건너  아부다비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아부다비입니다.

작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아무리 한국의 여름이 덥다 하지만 중동의 여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강렬한 햇볕에 견디고 있는 건물과 나무들이 신기할 정도다.

이 정도 더위에 다 녹아내리던지 다 타버려야 할 거 같았다.

평생 경험해 보지 못했던 더위였다.


딸아이 손을 잡고 내린 아부다비 공항은 말 그대로 한증막 같았다.  

새벽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위와 습기는 엄청났다.


숨이 턱 하고 막히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 곳에서 이제 우리가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하기만 했다.


여기 서 있다는 것 자체가 꿈만 같았다.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그 막막함 앞으로 남편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인지 더위 때문인지 상기된 남편의 얼굴을 보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어느새 딸아이는 아빠에게 달려가 안겨 있다.


나는 남편 얼굴부터 살핀다.

퀭하다.

평생 살이라고는 쪄 본 적이 없는 마른 체형 남편의 얼굴이 더 야위었다.


"여기 온 것을 후회하지 않겠어?"


여기 오기로 결정하면서, 자주 남편이 물었다.


가족이 같이 살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같이 보고 싶었다.


나에게도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딸이 듯, 남편에게도 딸아이는 세상에 하나뿐인 자식 아닌가.


"너도 도연이 크는 거 봐야지, 너무 금방 커 아이가"


맞다. 저만치 달려와 안기면 내 품에 쏙 들어오던 아이는 어느새 내 허리춤만큼 크더니

이제는 나만큼 컸다.

아무리 자고 일어나면 쑥쑥 큰다고 하지만, 내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보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속도가 아쉽다. 아이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 거 같아 마음이 아리다. 그 시절 더 많이 이뻐해 주고, 더 많이 품고 다녀야 했는데 하면서 말이다.

혼자 밥 먹을 거라고 고집을 피우며 입에 들어가는 밥 보다 흘리는 양이 더 많을 때, 지저분해진 마루 바닥을 닦으면서 혼자 되뇌곤 했었다. '언제 커서 혼자 밥 먹을 먹을까, 언제 커서 학교 가나'

당시에는 그런 날이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 저만치 달려와서 앉기면 내 몸이 뒤로 휘청 거릴 정도로 큰 아이가 되었다.

장을 보면 무거운 것은 본인이 들겠다고 나설 만큼 팔 힘도 억세 졌다.


그저 저런 모습을 남편과 같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후회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동이라니, 아부다비라니....


사회정책을 그것도 돌봄과 여성 가족 정책을 연구해 온 나에게 이슬람 국가라니....


사회정책적으로 혹은 젠더 정책으로 여러 면에서 나에게 자극을 줬던 스웨덴과

이슬람 국가는 너무나도 멀고 먼 대상이었다.

나의 연구 관점에서 보면 두 국가는 정말 극단에 있는 국가였다.


무섭도록 강렬한 햇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국가를 옮겨 다니면서 이사를 한 후 힘이 들어서였는지,

아부다비에서 집을 구하고 아이 학교 문제가 해결된 그 이후부터 정말 한 달간 나는 잠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간 거 같았다.


강렬한 햇볕, 숨 막힐 듯한 더위를 피해 어둡게 가린 커튼 아래에서 나는 잠을 잤다.

아주 오래오래 잠을 잤다.


예전에도 이렇게 자 본 적이 있었다.

머리 수술을 하고 난 뒤였다.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때는 약 기운으로 몸이 늘어져서 잠을 잤던 거 같은데, 이번에는 무슨 영문이지 잠이 한없이 몰려왔다.


비몽 사몽, 그렇게 긴 여름을 보냈다.

잠이 물러 갈 때쯤, 아부다비에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왔다.


"사막에 겨울이라니요"


헛웃음이 나왔다.


매일 잠에 취해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동네 분이 말씀해 주셨다.

곧 겨울이 온다고, 너무 좋은 계절이 올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동네 분의 말씀처럼 새벽에 그리고 저녁에 불어오는 바람에서 시원한 결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메마른 바람이 아니라 습기를 머금은 그리고 시원한 무엇인가를 품은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유순한 바람이었고, 변화를 알리는 바람이었다.


엄청난 바람과 천둥과 번개가 왔다 갔다. 여기에서는 계절이 바뀔 때, 모래 폭풍이 분다고 했다.

테라스에 둔 의자들이 날라 갈 거 같아 집 안으로 옮기고 있는데,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에 처음으로 번개가 바다로 내리치는 모습을 실컷 봤다.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벼락이었다.


그렇게 모래 폭풍이 지나가고,  

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맙소사.

사막에도 겨울이 있다.

지금 나는 겨울 카디건을 집 안에서 걸치고 있다.


물론 눈은 오지 않는다.

영하로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막의 겨울은 이 척박한 곳에서 생명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하나 계절이다.

하늘이 높고, 바람이 좋다.

햇볕이 유순해졌으며, 바다에서 물고기들이 뛰어 논다.


다시 새로운 세상이다.


스웨덴에서 보다 더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심지어 얼굴도 가리고 다니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짧은 치마에 민 소매 옷을 입고 다니는 여성들도 많다.

폐쇄적인 문화와 개방적인 문화가 공존하는 곳,

국가가 세워진 지 고작 47년밖에 되지 않은 나라,

해와 달이 공존하는 곳,


여기는 아부다비다.


긴 여름을 넘어 도착한 이 곳은 아부다비다.


매거진의 이전글 2월의 어느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