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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희 Jun 11. 2019

스웨덴의 저녁은
오후 4시에 시작된다

책을 읽고 나온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

<스웨덴의 저녁은 오후 4시에 시작된다> 책이 나온 지 한 달이 되었다. 

내 첫 책을 받았을 때 그 감동은 뭐라 해야 할까...

내 글들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오다니.

그저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출판사에게 나는 세 권의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 권은 남편에게, 한 권은 내 딸에게 그리고 한 권은 나에게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외 우편이라 시간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책을 받았다. 

책을 가슴에 꼭 안아 보았다. 

따뜻했다. 

물론 요새 여기는 날씨가 많이 더워지고 있다. 그래서 택배 차량 안에 있었던 내 책들이 그 열에 데워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책이 참 따뜻했다. 

심지어 책 냄새도 좋았다. 

'킁킁'

내 책에서는 새 크레파스 냄새가 났다. 

"도연아!! 엄마 책에서 좋은 냄새가 나~ 마치 새 크레파스 냄새가 나는 거 같아"

"진짜요?"

딸아이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달려와 같이 책 냄새를 맡았다. 

킁킁 거리며 책 냄새를 맡던 아이가 한 마디 한다. 

"엄마, 저 이 냄새 뭔지 알아요"

"뭔데?"

"새 문제집 샀을 때 나는 좋은 냄새예요~"


크레파스 냄새가 나던 새 문제집 냄새가 나던, 항상 새 학기 새로운 시작을 알리던 크레파스와 문제집처럼

내 책에서는 그러한 냄새가 났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설렘 그리고 두근거림의 냄새 말이다. 


독자분들의 책에 대한 리뷰와 평가가 올라오지만,

막상 내가 그분들에게 답변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어쩌면 이 글은 내 책을 읽고 궁금해하시는 것들에 대한 내 나름의 답변이기도 하고 그분들에 대한 내 나름의 감사함의 표현이다. 


스웨덴의 복지.... 너무 부럽습니다. 


내 책을 읽은 분들이 가장 많이 내놓는 말씀은 우선  '부럽다'이다. 

우선 이 부분에 대한 나의 답변을 하기 전에  말하고 싶을 것이 있다. 

나는 브런치를 통해 '정책 , 삶을 반영하다'라는 정책 이야기를 2015년부터 써왔다. 그러다 2016년 스웨덴에 가서는 스웨덴 정책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이다. 만약 브런치를 본 독자들이라면 내가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건너가 스웨덴 정책을 연구하면서 했던 고민들을 더 느끼셨을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넘어가 정책 연구를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바로 '부러움'이었다. 

그 부러움이 너무 크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국적 상황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스웨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정책이 너무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잘 작동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 부러웠다. 

그러면서 계속 한편으로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나 싶었고, 과연 우리나라에 적용이 될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랬다. 당시 나는 그런 부러움으로 자괴감까지 들 정도였다. 

글을 쓸 수 없었다. 심지어 불평만 늘어갔다. 

그러다 다시 글을 썼다. 

그런데 그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대한민국이었다. 

티브이를 통해 나는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기 위해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을 보았다. 

그리고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연구를 그리고 다시 글을 쓰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맞다.

스웨덴은 부러운 국가다. 

그들이 만들어 낸 국가를 우리뿐 아니라 다른 유럽 사람들도 부러워한다. 

하지만 부러움에 너무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 책에도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꼭 스웨덴처럼 되어야 할까?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우리에게 맞는 옷을 분명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내 책을 읽고 스웨덴 정책에 부러움을 느끼셨던 분이라면, 이 부분을 같이 고민해 보고 싶다. 

우리가 꼭 스웨덴처럼 되어야 할까?

우리는 한국식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가 우리 나름의 복지국가를 만들기 원한다면 그 모습은 과연 어떠한 모습인가?



왜 책의 제목이 <스웨덴의 저녁은 오후 4시에 시작된다>인가요?


책 제목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내 책의 원 제목은 '정책, 삶을 반영하다'였다. 

딱딱한 글을 주로 써왔던 나에게 아주 참신한 제목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 제목은 출판사 분들께서 고민 끝에 나에게 제안한 제목 중 하나였다. 

내 글의 전반적인 분위기 등으로 고려해 여러 차례 상의한 끝에 나온 제목이었다. 


어떤 분들이 또 이렇게 질문한다. 

그런데 스웨덴의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글은 없잖아요?

물론 맞다. 

딱 내 책 제목을 타이틀로 한 글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내 모든 글들이 이 제목 아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즐겨 쓰는 말이 있다. 

바로, 

'변화를 가져오는 단 하나의 정책은 없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정책들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정책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 생각한다. 

연금, 의료 보험, 고용 보험, 아동 수당 등등 이 모든 정책들을 따로 살펴본다. 

솔직히 단 하나의 정책을 들여다보는 것도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개별 정책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실제 우리 삶은 정책'들'로 둘러싸여 있다. 


정책은 다발로 움직여야 한다. 


자, 예를 들어 보겠다. 

여기 지금 막 아이를 출산한 부부가 있다. 

둘 다 맞벌이 부부이다. 

이들에게 우선 주어지는 정책은 모성 그리고 부성 휴가이다. 

출산 후 엄마 그리고 아빠에게 주어지는 휴가 정책이다(우리도 이런 휴가 정책이 있다)

출산 전후로 휴가 기간을 다 쓰고 나면 자연스럽게 엄마 혹은 아빠는 부모휴가(우리나라에서는 육아휴직이 해당된다)로 이어진다. 보통 1년 정도의 부모휴가를 쓰고 나면 엄마 혹은 아빠는 자신의 직장으로 복귀한다. 물론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부모는 선택에 따라 근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아무튼 엄마 아빠가 직장으로 복귀하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가 사는 집 근처 어린이집에 다녀야 한다. 

즉, 아이의 출산에서 아이가 어린이집 그리고 다시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혹은 그 이후까지 혜택을 받는 정책의 이름은 바뀌지만 쭉~~~~ 이어져야 한다. 

만약 정책과 정책 사이에 공백이라도 생기면, 맞벌이 부부에게 여간 낭패가 아닐 것이다. 

부모휴가가 끝난 다음에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며? 혹은 어린이 집이 너무 멀다면? 혹은 출산 휴가 끝나고 부모휴가가 없어 바로 회사로 복귀해야 한다면?


하나의 정책은 아무리 강력하다 하더라도 그 효과를 낼 수 없다. 

정책은 다발로 다른 말로 정책 묶음(정책 세트?)으로 움직여야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스웨덴에 오시는 한국분들이 가끔 하시는 질문들이 있다. 

" 왜 스웨덴에는 어린이집 차량이 없어요?"


맞다. 

스웨덴에는 노오란 어린이집 차량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어린아이들이 차량으로 등 하원을 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며, 더 근본적이 이유는 어린이집이 다 집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아파트 1층은 어린이집이었다. 

등 하원 시간이 되면 아이들 소리로 가득 찼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 바로 뒤편 아파트 1층도 어린이 집이었다. 그리고 길 건너 공원 맞은편에도 어린이집이 두 개는 더 있었으며, 공원을 중심에는 개방형 어린이집까지 있었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걸어서 10분 혹은 15분이 채 안다는 거리에 어린이 집이 내가 알기로는 5개가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 어린이집을 갈 수 있는데 굳이 어린이집 차량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물론 부모의 직장 내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은 부모와 같이 부모의 차량 혹은 자전거를 이용해 등 하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침에 엄마 혹은 아빠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간다. 걸어서 말이다. 


스웨덴에는 노오란 어린이집 차량이 없는 이유는 

직접적으로 어린이 집들이 다 집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들의 보육 정책이 이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보육정책 만으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여러 가지 정책들의 조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스웨덴의 저녁이 오후 4시에 시작되기 위해서는 

여러 정책이 세트로 혹은 묶음으로 움직여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근무시간 조정, 출퇴근 시간, 아이 보육 정책 등 이 모든 정책'들'이 같이 움직여 줘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단 하나의 답을 가정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삶에서 단 하나의 답이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 


정책 역시 그러하다. 

'하나의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극히 적다. 

하지만 '정책들'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많다. 



너무 가족을 중심으로 정책을 설명하신 거 아니신가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내 책을 읽다 보니, '아 그렇게 느끼셨을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내 전공이 가족정책이기도 하고, 특히 부모휴가, 보육정책이다 보니 아이가 있는 가구에 대한 정책들을 많이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내 관심 영역도 그리고 내 글 속에서도 가족정책에 치우쳐진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예를 드는 이유는 이해가 쉽게 하기 위해서인데, 되도록이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정책 분야로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했다)

내 전공이 가족정책이라고 해서 내가 가족주의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가족을 강조하는 것처럼 읽혔다면, 내 글의 부족함이라 생각된다. 


다양한 가족 안에서 개인의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내가 주로 연구하는 초점이라 할 수 있다. 

내 글에 가족 특히 부모와 아이가 있는 가족을 상정하고 정책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가족의 기준을 부모와 아이가 있는 가족으로 두지는 않는다. 

솔직히 나는 가족보다 가족 안의 한 개인의 권리(어머니로써의 권리, 아버지로서의 권리 혹은 부모로서의 권리 그리고 아동으로써의 권리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실제 내 연구들의 분석틀은 개인적 권리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만약 더 기회가 된다면, 더 다양한 삶을 지지하고 지탱하게 하는 정책 이야기를 나중에 더 하고 싶다. 


스웨덴에 지내면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선 다양한 형태의 동거 가구가 많다. 아이가 있는 동거 가구도 많다. 또한 다양한 국적의 다문화 가족도 많다. 

나 역시 이러한 다양한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아이를 통해 이혼한 부모가 있는 친구들을 종종 만나게 되었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혼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피해 갈 수 없는 힘든 시간임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여러 제도를 통해 이 아이가 다양한 가족을 혹은 부모들의 선택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보았다. 다양한 가족의 유기적인 변화와 그 안에 살아야 하는 성인 그리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선 책의 지면상 이미 써 놓은 글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가족 정책 이야기는 따로 하고 싶었다. 정말 더 깊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내고 싶었다. 이번 책은 어쩌면 정책에 대한 편한 입문서라 생각하고 썼다면, 다음에 써야 할 책은 한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특히 요새처럼 이혼 재혼 가정 안에서 방임되고 학대되는 아이들 이야기를 접할 때면 마음이 무겁고,  이 아이들에 대한 정책이 너무 시급하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다양한 가족 안에서 다양하게 사는 우리네 모습을 다음 책에서는 담고 싶다. 



사진은 누가 찍었나요?

책에 실린 사진에 대한 질문들이 있다. 

내 책에 실린 사진 중 몇 장은 스웨덴 지인이 주신 사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진은 나와 남편이 휴대폰과 사진기로 찍은 사진들이다. 거의 살던 동네, 연구소 주변, 산책 다니던 동네, 딸아이 학교, 학교 주변 등지에서 찍었다.  책을 만들 때 쓰려고 찍었던 것은 아닌데, 책을 만들면서 사진도 같이 실었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내 사진은 멋진 풍경 사진은 아니다. 물론 풍경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책에 실린 사진들은 내가 살던 동네와 주변 사진이 대부분이다. 당시 내가 글을 쓰면서 들었던 감정 그리고 그 분위기를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같이 느끼기 바라는 마음에 일상적인 사진들을 많이 올렸다. 



마지막으로,

출판 후기

책을 내고, 서점에 내 책이 진열되어 있는 사진을 종종 지인들이 찍어 보내주고 한다. 

신기한 마음에 사진을 확대해서 보곤 한다. 사진을 확대한다고 해서 내가 그 현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가운 마음에 사진에 코를 박고 한참을 쳐다본다. 


만약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서점에 가서 직접 내 책을 샀을 것이다. 

그리고 구매대 앞에서 서점 직원에게 내가 이 책의 저자라고 은근슬쩍 이야기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서점 직원의 반응이 좋으면, 신이 나서 주책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 낼 수 도 있다. 물론 직원의 반응이 무덤덤할 수도 있다. 순간 머쓱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나는 내 주책을 탓하기보다 서점 직원의 메말라버린 감성을 탓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정말 내 책 앞에서 내 책을 펴 읽고 있는 분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나는 어떠한 기분이 들까? 아마 가슴이 벌렁거려서 숨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거 같다. 

내 책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부끄러워 숨고 싶은 마음이 오락가락할 거 같다. 

하지만 이런 게 다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주책 떨 일은 없을 거라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다시 한번 내 글을 책으로든 브런치로든 읽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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