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랫동안 기억 속에 묻혀있었는지 깨닫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불과 몇일 전,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렸다가 베스트셀러 판매대도 아닌 인적이 드문 책장 속에서 책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나는 발견 즉시 한치의 망설임 없이 구매했고 벌써 책의 1/3지점을 읽던 참이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책을 읽다가 학창시절 왕따를 당해 공부로 도피해서 카이스트에 갔다는 모델 최현준의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문단씩 읽다보니 어쩌면 그와 비슷할지도 모르는 과거의 기억 조각이 하나 둘 씩 떠오르다가 켜켜히 쌓인 먼지 속에 묻혀있던 것만 같은 '나'의 이야기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약 11만명의 팔로워를 가진 크리에이터로 활동중이다. 어쩌다보니 이런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언제쯤부터 요리 영상을 찍어 올리는 걸 시작하게 되었나 계기를 떠올리면, 대학교 새내기 시절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매일 집에 일찍 돌아오게 되었고, 남은 하루의 무료함을 풀고 싶었다. 쭉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실은 대학생활에 내가 쉽사리 적응하지 못해서였다.
어릴 적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한 소외감이 느끼며 학창 생활을 지속해오던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결이 달라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친구들 앞에서 마치 내가 그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인 척 행세하며 스스로를 거짓된 모습으로 바꾸어 치장했다. 그냥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밥을 먹고 함께 과제를 하는 일이였지만 학교를 다녀오면 매일매일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에너지가 진공청소기마냥 빨려 나간 듯한 기분을 받았다.
고등학교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들 사이에 잘 어울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나게 되면 도망칠 공간은 아에 없다고 생각했다. ( 나도 최현준처럼 공부나 책이든 다른 무언가를 도피처로 삼았다면 난 아마 한 분야의 천재가 되었을지도.. ) 그래도 다행인지 아닌지 대학생활은 그 전과는 조금 달랐다. '열외자'가 아닌 ‘자발적 아싸’ 인 척 하는 것이 가능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리기 어려울 정도로 인생을 열심히 사는 갓생러가 되기로 했다. 시간표를 같이 맞춰서 짜고 수업이 끝나면 함께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갈 짝꿍이 없던 나는 입학 후 한 두달만에 갑작스레 몸이 안 좋아진 것을 명분으로 삼아 수업이 끝나면 집에 일찍 갈 수 밖에 없는 인물에 대한 시나리오를 짰다. 그리곤 매일 그 역할을 충실히 임하며 집에 일찍 돌아갔다. 하루의 남은 시간동안은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그때 시작했던게 내가 만든 요리를 영상으로 찍어 만드는 일이였다.
어쩌면 심심해서, 어쩌면 세상에 나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 둘 중 어떤 사유가 더 가까웠을진 모르겠으나 나는 필사적으로 매일매일 학교가 끝나면 나만의 아지트로 도망쳤다. 그 곳에서 만큼은 내가 주인공이였고 나의 존재는 남들에게 재미와 행복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이 역할과 삶에 몰입했고 몇년이 지나 나는 학과 내에서 최고의 아웃풋이자 그리고 묵묵히 본인만의 길을 찾아가는 '걔' 되어 있었다.
오늘, 오랜세월 잊혀있던 딱한 나의 모습을 마주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엔 그런 내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창피했다. 그러나 세월이 한 참 지나 먼 발치에 떨어져 그때의 나를 내려다보니 참으로 대견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홀로 외롭고 아팠을 텐데 그 와중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찾아 그 공간 안에서 편안한 쉼을 쉬며 스스로를 챙기며 있었다.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이 하고 싶은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물어봐주던 그녀는 자신의 빅 1호팬이였다. 그녀의 믿음과 관심 덕분에 이수빈이라는 사람은 더욱 멋진 사람이 되었다.
‘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라는 건 지난날의 내 모습까지 다 껴안았음을 의미한다. 그는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향한 믿음과 관심만큼 성장한다. 하나밖에 없는 나 그리고 나의 삶. 나의 빅팬 1호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
<나답게 일한다는 것- 최명화> 책 구절 내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