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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정 Sep 23. 2023

엄마의 계절

-비를 피할 집이 있다는 것

그러다가 엄마께서 초가집 골방을 하나 얻으셨다.

두 사람이 겨우 누울까 말까한 방이었다.

부엌은 큰방 집주인이 쓰시고 우리는 잠만 자는 방이었다.


아미동 꼭대기에는 외할머님과 작은외삼촌 정자 이렇게 사시는데 물이 가물어지면 내가 이어다 주기도 하고, 할머님 밥도 가끔씩 해드리고 했다.


그런데 외할머니께서는 굿을 자주 하신다

빌기도 하시고 대나무 잡고 뛰기도 하시고.

정자가 많이 아파 도사라는 사람한테 할머니랑 내가 데리고 가니 병에 낫게 해준다고 했다. 정자를 두고 가게 되었다. 한달 정도 소식이 없어 도사 집에 가보니 꼬챙이처럼 말라 누워있었다. 난 그 모습을 한 그때 정자가 무서웠다. 며칠이 지나 정자가 죽었다고 작은외삼촌과 난 정자를 묻으러 산꼭대기에 갔다.


이렇게 정자 나이 9살에 세상을 떠났다.


작은 외삼촌과 외숙모라는 사람이 함께 할머니 집에 왔다.

근자, 은자 두명의 딸을 데리고.

그런데 외숙모의 엄지손가락이 다른 사람의 3배 정도 크게 보였다.

작은 외삼촌에게서 태어난 정일이와 정애.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정말 한번쯤은 만나보고 싶은 얼굴이다.


방이 있다는 것, 잘 수 있다는 것, 형제는 그 방에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엄마가 장사 나가시면 동생들 뒷바라지를 내가 했다.

가게 가서 물 길어주고 시장보아다 주는 것이 나의 생활이었다.


한번은 부엌 옆에 화장실이 있는데 배설물이 꽉 차도 주인 할머니께서 벌레가 나오고 심한 냄새가 나는데도 똥을 푸지 않는다. 바로 집 앞에 도랑이 있는데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똥을 푸는 바가지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다.

난 비를 맞으면서 그 똥들을 도랑에 버리기 시작했다.

저녁에 잠을 자는데 냄새가 나지 않고 구더기도 보이지 않아 좋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허허 웃음이 나온다.


방이 좀 큰대로 이사 왔다. 나의 엄마는 우리한테 찹쌀 반 되씩을 팔아와 찹쌀밥을 한번씩 해주셨다. 골이 비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대학병원 뒤 판자집으로 세를 얻으셨다.

이곳에서 우리집 장남이 태어났다.

딸넷에 아들, 큰 경사였다.

명수동생은 참 순했다. 하얀 피부에 엄마 젖만 먹이면 잠도 제일 많이 자고 어진 동생이었다. 


이곳에서 한번은 우리형제들 다 죽을 뻔 했다.

연탄 피우는 난로에 저녁에 연탄을 갈 때가 되었는데 그날따라 연탄을 갈면서 소금을 뿌리지 않았다. 

아버지, 엄마는 가게에서 오시지 않았고.

연탄가스에 나와 동생들 머리가 너무 아파 새벽에 일어나니 동생들이 이상했다.

동생들 한 명, 두 명 끌어내어 길바닥에 눕히고 찬물을 마시게 했다.

동네한분이 새벽에 나의 소리를 듣고 나오시더니 국물김치를 가져다 먹였다.

얼마 지나니 동생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연탄가스가 얼마나 무서운지 큰 경험이었다.


엄마가게에 선생님 두 분이 자주 오셨다.

나를 몇 번 보신 선생님께서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고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날 보는 앞에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서 나는 제일극장 사장님이 학교를 설립하신 해양고등공민학교에 4학년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너무 좋아 뛰고 뛰고 또 뛰었다.


새벽에 일어나 자갈치시장을 보아다 주고 학교 가자니 매일 지각이다.

그래도 배운다는 생각에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학교마치면 동생들 빨래와 기저귀를 손으로 그 많은 것을 빨아야 하고 동생을 업고 엄마한테 젖먹이러 다녀와야 하고.


저녁으로 숙제를 하려면 명수동생을 업고 호롱불 앞에 자불다가 머리를 한번 태우고 그랬다.

나의 허리는 동생의 오줌으로 항상 젖어 있었다.

지금처럼 기저귀가 있나...

미국사람들이 버린 큰 옷들을 주어다가 가위로 잘라 기저귀를 만들어 삼고 밀가루 포대가 그때는 제일 좋은 기저귀였다.

어쩌다 구해지면 폭폭 삶아쓰고.


그러다 또 동생이 태어났다. 명구 동생이다.

미역국을 끓이면서 나는 속으로 울었다.

엄마는 왜 동생을 또 낳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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