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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정 Sep 14. 2023

광안리의 기억 -어머니의 가계도


" 복아, 미안하다."

외할머니는 7 남매의 장녀인 어머니에게 이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죽음을 통해서 화해를 이루기도 하고 남은 가족들은 또 다른 결속을 얻기도 한다.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연결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존재로 인해 그나마 라도 실오라기 처럼 이어졌던 인연이 단숨에 끊어지기도 한다. 사람이 태어나면 죽는 것은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는 거처럼 어제도 일어나고 오늘도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진리를 깨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당연함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알고 있다고 해서 대비를 하기도 어려운 것이 누군 가의 죽음이고, 막상 닥치고 나면 언제나 예상한 거 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결과를 가지고 온다. 대부분은 좋지 못한 형태로 다가온다.

외할머니의 죽음은 이후 어머니가 어린 나이에 당신보다 더 어린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태를 만들어주었다.


그런 책임을 맡게 된 어머니는 귀하게 태어났다고 한다. 아니 귀하게 생명을 다시 얻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3대 독자였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첫 아이었던 어머니는 태어나자 마자 숨을 고르게 쉬지 않았다. 다들 죽는 다고 했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조산소에서는 이미 포기했고, 부랴 부랴 달려간 병원에서 조차도 힘들다고 말했다. 첫 아이를 어떡 하든지 살리고 싶었던 두 분은 백방으로 뛰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물어 물어 간 곳은 영도의 어떤 절이었다. 주지 스님은 자신에게 3 일의 시간을 달라고 했고, 3일 동안 갓 태어난 아이의 머리 크기 보다 더 큰 침을 숨 구멍부터 발끝까지 놓았다. 그 3일 동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잠 한숨 안자고 기도를 했다. 침이 효과가 있었는지 기도가 통했는지 3 일째 되는 날 몸에는 온기가 들었고 어머니는 기적처럼 소생하셨다.



나는 무협지에나 나올 만한, 박혁거세 탄생 스토리에 버금가는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항상 헷갈린다. 그 시절을 어머니가 기억 할 리는 없고 분명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해준 이야기 일 터인데, ' 너는 귀한 아이란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였을 지 아니면 고된 일을 죄다 어머니에게 맡긴 것이 미안해서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미안한 마음에 지어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벌 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이 3대 독자로 귀하게 자라신 외할아버지와 공주 성향이 강했던 할머니는 대부분의 집안 일과 육아 그리고 생계까지 어머니에게 맡기셨다. 아래로 6명의 동생을 두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동생들의 똥 기저귀를 빨면서 '어쩌자고 우리 엄마는 동생들을 계속 놓노...'하면서 탄식을 했다. 


외할머니는 식당을 하셨는데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길어오고 자갈치 시장에 가서 생선이며 채소를 사서 나르는 일은 어머니가 했다. 국민학생 밖에 안된 장녀는 매일 꼭두 새벽에 일어나서 두 가지 일을 하고 나서야 등교할 수 있었다. 심지어 동생을 둘쳐 업고 학교에 가서 놀림을 받기도 했다. 어머니는 꽤 오랫동안 기저귀를 빨게 되었다. 동생들이 자라서 기저귀를 빨지 않게 되고 나서도 그 일은 멈추지 않았는데 다음 차례는 외할머니의 피기저귀였기 때문이었다.



외할머니는 지금으로 치면 아마도 자궁암 진단이라 할 수 잇는 병을 얻었다. 돈이 없는 집에서 제대로 된 병원 치료는 어려운 일이었으니 그저 '마이신'만 복용하고 오랫동안 피를 쏟는 나날을 보내다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 퇴근하면 할머니가 차고 있던 기저귀를 빨았는데 물에 담그면 벌레가 둥둥 떠 있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까지 가셨다. 없는 살림에 7 남매를 두고 나서야 더 이상 애를 가지면 안되겠다고 생각하신 외할머니는 보건소에서 보급한 철제 루프를 오랫동안 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것이 원인이었는지 모진 세월이 원인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자궁병을 얻었다.



지금도 맥주 한 잔씩 하면 어머니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시는데 논리나 과학으로는 설명되거나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신다.


외할머니가 병환으로 누워 계실 때 어머니는 퇴근하면, 누나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동생들에게 밀가루 죽을 끓여 끼니를 때우게 하고 누워계신 할머니를 돌봤다. 어느 날 자리 보전하고 누워 계셨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일어나셔서 대나무를 구해 오라고 했다. 누워 계신 분이 하신 말씀이니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이 바로 밖으로 나가 대나무를 하나 잘라왔다. 그 대나무를 건네자 외할머니는 대나무를 한 손에 세워 잡고 고무 다라이 위에 앉아서 신이 내린 사람처럼 이렇게 말하셨다.



" 복아, 복아, 너는 23살에 꼭 재출로 시집가거래이 ."



고무 다라이를 두 손으로 몇 번 치고 나서는 거짓말처럼 쓰러져서 방안으로 옮겨졌다. 거동도 어려워서 기저귀를 차고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한 일이니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진짜 신이 내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우리 외가 쪽 사람들은 사람들은 점을 보러 가면 "공줄을 일곱 번은 더 타고 났다.", " 자기 점 자기가 치는 사람이 여기 왜 왔어?" "윗대 에서 내림 굿을 안 받았으니 너가 받아야겠네." 같은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자신의 공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며 "제가 볼 수 없는 팔자입니다."라고 말하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된 점쟁이도 있었다. 삶의 고됨에 몇 곱으로 비례해 친척들은 점쟁이를 자주 찾아 갔던 거 같다.



나의 경우는 내가 돈을 주고 점사를 본 적은 없는데 나의 소중한 개인정보인 사주를 털어간 사람들이 보고 와서는 몇 가지를 전해 주곤 했다. " 신이 내리는 형태는 아니고 스스로 입이 터질 것이다. " 라고 전해준 사람도 있었고. "영이 참 맑아서 실리기 좋은 몸이다."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다른 일로 만나게 된 분이 예전에는 정치인도 들락 날락 거릴 정도의 유명했던 무당이었는데, 나의 뒤에 두 분이 서 계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 남들처럼 목덜미가 서늘해 진다 거나 머리카락이 서는 느낌은 없었다. 


그 때 나는 그런 존재가 있다면 정말 만나고 싶었으니깐. 이유는 따지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였다. 도대체 신이라면서 세상을 왜 이렇게 두는지 앉혀 놓고 따지고 싶었다. 반골 기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사람인 걸 알아서 인지, 나에게 혼날 것을 두려워 해서 인지 오신다는 분은 17년이 지나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아! 물론 다른 형태로 오시긴 했다. 지름 신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떨쳐내기 힘들다는 그 신이 오긴 했었다.



반골 기질은 세상과 타협하면서 쪼그라 들었으니 이제 오셔도 "수고가 많습니다.'라고 말할 처세를 부릴 정도는 되는데, 세상에 찌들면서 영이 탁해져서 안 오시는지는 오늘 할 이야기는 아니니 다시 어머니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병환으로 누워 계시는 날이 늘어가던 어느 날 어머니가 일하던 공장으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고 부라 부랴 달려가니 외할머니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이모들과 삼촌들은 그 옆에서 무섭다며 모여서 울고 있을 뿐이었다. 하얀 천을 제끼고 외할머니의 몸을 부여잡은 어머니는 대성 통곡했다. 그 순간 외할머니가 눈을 다시 떴다. 그리고 한마디를 남기셨다.


" 복아, 미안하다."


외할머니가 살아온 짧은 세월 동안의 회환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어머니가 짊어지고 갈 무게에 대한 외할머니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경제적 능력이 전무한 아버지와 한 없이 어리기만 한 동생들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수가 무려 6명이나 되는 사람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절대 비단길이 아닐것이다. 신일숙씨의 만화 '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서는 "인생은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고 했지만 어머니의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거라는 걸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죽음으로서 인해서 그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 장녀에게 남긴 말이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뭐가 있겠는가.


눈이 쉽게 감기지 않는 이유는 꼭 만나야 하는 사람, 그리고 꼭 할 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염원이 어머니에게 잊혀지지 않는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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