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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in Jul 26. 2020

퇴사하던 날

퇴사하는 날이다. 근 3년간 있었던 곳이니 그래도 정이 많이 들었다. 머물 이유보다 머물 수 없는 이유가 더 많아져서 그만두게 되었지만, 어쩐지 마지막은 항상 좋은 기억만 떠올리게 한다. 괜히 감상에 젖는다. 자주 연락하던 거래처의 차장님에게 마지막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 통화로 서로의 건강을 챙겼다. 유선상으로만 연락했던 사이라 일면식도 없는 서로지만 마지막이란 말이 주는 이유 없는 무게감에 슬퍼졌다. 그녀도 아쉽다는 말을 계속했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직원들과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3년간의 흔적만큼 많은 짐들을 가득 안은 채 회사를 나왔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에 얼른 자리를 뜨느라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얼른 건물을 벗어났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가사말처럼 유독 마지막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내가 가게를 온전히 맡게 되면서 평일에 내 몫까지 열심히 해줬던 내 사촌 언니와도 마지막이 되었고, 주말에 나와 함께 일하며 나의 주말을 1년 넘게 공유하던 아르바이트 친구와도 안녕을 고했다. 내 선택이 이렇게 많은 마지막을 낳았다.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 많아질 것 같아서 꽤나 두려워지기도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또 어느새 적응하고 이 생활에 익숙해지겠지만 한동안 새로운 생활, 새로운 사람들과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을 다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걸 알았지만 그것이 무언가를 정리하고 마지막을 고하는 용기일 거라고 예전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전에도 새로운 도전을 앞뒀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닥칠 변화들에 집중하느라 내가 잃어버릴 것에 대해서는 크게 인식하지 못했다. 뒤에 그냥 방치하고 내버려 둔 채 앞만 보며 달리느라 나중에 그것들을 발견하고 당황했던 날들도 꽤 되었다. 새로운 도전에 집중하려면 지나온 발자취 또한 잘 정리해야 한다. 사람일이란 건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니 언제 또 나의 발자취 중 하나가 새로운 앞날을 제시할지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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