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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형 Apr 30. 2022

적폐 청산 재판 추적기(4) 여경은 경찰의 미래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4화. 여경은 경찰의 미래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조현오 청장이 댓글 공작을 했다면 실행 부서는 경찰청 정보2과다. 


정보2과 업무 중 하나가 사이버 이슈 대응이기 때문이다. 정보2과 담당 직원 대다수가 법정으로 불려 나왔다. 


2011년경 경찰청(이하 본청)에서 <사이버 이슈 보고서>를 작성했던 여경 A부터 살펴보자. 


여경 A는 본청은 지방청이나 일선 경찰서에 댓글을 쓰라고 지시하거나  곳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본청은 사이버상에 떠도는 이슈를 관할과 기능에 맞게 알려주는 곳이라고 했다.  


통고를 받은 지방청과 일선 경찰서는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여론 대응 방법을 선택한다.   




서울청 스폴팀에서 근무한 여경 B도 상부 지시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다. 


“자체적으로 했던 것이 95% 이상이었던 것 같고요. 제가 그날 작성했던 사이버이슈 같은 경우는 아침에 일찍 와서, 전날부터 검색을 해서 선정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저희 실무자들이 (대응 이슈를) 선정해서 보고를 했던 것이지 위에서 지시를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검찰은 실망하지 않았다. 


댓글을 직접 쓴 서울청 정보국 정보4과(스폴팀) 여경 B가 스폴팀이 처음부터 경찰관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활동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세간에서도 이미 경찰이 일반인처럼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론에 보도가 종종 됐기 때문이다.  


- ‘나경원 편들기 수사’ 글에 비난 댓글 달아라... 경찰, SNS 여론몰이 지침 논란(서울신문. 2012.02.03.)

- '주민 괴롭히는 희망버스’ 글, 알고 보니 경찰이 작성(한겨레. 2011.07.13) 


당시 언론은 이를 댓글 공작 또는 여론조작이라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과 경찰이 서로 잡아먹으려고 하던 시기였다. 


익명 댓글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여론조작 행위로 인식됐다면 검찰은 분명 칼을 들이댔을 것이다. 


이러한 익명 댓글이 범죄행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12월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지고 난 후다.


당시에는 이런 익명 댓글 대응이 뭔가 당당하지 못하고 '찝찝하다'는 느낌을 가졌을 뿐이다.     




2011년 새로 부임한 정보 4계장이 특히 그랬다. 


그는 직원들에게 경찰관 신분을 밝히고 사실관계를 바로 잡는 내용으로 댓글을 쓰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돌아오는 반응은 ‘수구꼴통이냐’는 악플들 뿐이었다. 경찰이라는 것을 밝히고 댓글을 쓰면 읽지도 않는 현실을 경험한 정보 4계장은 공개 대응을 포기했다.   




스마트 폰 보급률은 2009년 3% → 2010년 14% → 2011년 40%로 증가했다. 2007년 설립된 '트위터'가 국내에는 스마트폰 보급과 맞물리며 2011년 활성화됐다.   


여경 B는 당시에는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SNS상에 허위사실을 올리는 게 위법하다는 인식이 높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심각성은  문재인 정부 들어와 <가짜뉴스>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당시 집회가 열리면 누군가가 SNS에 올린 허위사실이 순식간에 리트윗 됐다. 이런 허위사실을 진보 매체가 받아서 보도했고 시위대를 흥분시켜 과격 폭력시위를 부추겼다. 


재판장이 물었다. 


“일반인처럼 댓글을 달면 유언비어 퍼졌던 것이 바로 잡히는 효과가 있나요?”
“네. 있습니다.” 


여경 C는 확고하게 답했다. 


“유언비어가 한 번 퍼진 것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사실이 아니라고 올리면 확산되는 게 방지가 됩니다. 예를 들면 경찰이 누구를 때렸다고 하면 막 퍼지고 퍼져서 리트윗이 계속되거든요. 그런데 이런 부분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 되돌리기는 힘들지만 확산이 되는 것은 어느 정도 방지가 됐습니다.” 


여경 B은 법정에 나왔던 다른 여경들보다 한 수 더 뜬다. 


“공식 비공식을 따지는 것보다는 그 유언비어 유포로 인해서 올 수 있는 사회 혼란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검사가 물었다. 


“공식, 비공식보다는 혼란을 막는 게 중요하다?”
“네” 


여경 B는 뜸 들이지 않고 답했다. 평소 소신이고 신념이라고 했다.  


검찰도 SNS 초창기인 당시에는 경찰 조직 내 명확한 SNS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검사로서는 당시 이러한 비공식 댓글 대응이 문제 될 소지가 있어 보였다는 말만 받아도 성공한 셈이다. 


재차 질문했다. 


“지금 증인께서 7~8년 전 당시 SNS 상황하고 지금 상황하고 많이 다르다고 설명하시는 것 중에 일부 요소로서 당시에는 일부 젊은 층이 관심이 있었고 또 노조나 이런 집회시위를 하는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 위주로 이걸 사용했다고 하셔서 그런데 일종이 그때 당시의 대응은 젊은 층이나 노조 등등이 법질서 파괴세력으로 거론되기도 했었거든요. 그 당시 내부 문건 보면. 이런 것에 대한 심리적 차원에서 행해진 측면은 있지 않을까요?” 


여경 C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런 거대한 관점을 갖기에는 제가 너무 소소한 업무를 했네요.”  




경찰이 존재하는 이유는 치안 질서 유지다. 정보·홍보·보안 등 모든 업무는 치안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그렇더라도 그 수단은 오직 공식적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소신과 신념으로 뭉친 경찰도 있다. 


고학성(가명) 씨가 그런 경찰이다.  


고학성은 2000년 중반부터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에서 근무했다. 고학성이 근무했던 홍보부서는 국민에게 경찰 이해도를 높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2017년 경찰 댓글 사건 수사가 시작되자 특별수사팀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고학성이 조사를 받은 부분은 2011년 6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됐던 부산 희망버스 집회 관련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발하여 김진숙 씨가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했고 2011년 6월부터 SNS로 집회 참가자들을 모집하여 희망버스 집회가 부산에서 개최됐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경찰청장 조현오는 화상 간부회의에서 여론대응팀 가동을 주문했다. 


이러한 조현오 청장 지시가 떨어지자 부산청은 여론 대응을 위해 온라인TF(태스크포스)팀이 만든다. 


경찰관 신분을 숨기고 1박 2일 동안 집회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댓글이나 트윗을 작성했다. 


희망버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고학성은 조사 과정에서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지금과 같이 민주당 시절이라고 한다면 보도자료를 배포할 수 없었겠지만 당시 부산시장이 희망버스 시위에 대한 반대의견이나 외부세력 반대의견을 발표하니, 부산 상공회의소도 같이 움직였겠지요. 그 부분은 저희 추정입니다만 지금의 민주당은 작은 목소리 상대적으로 낮고 힘없는 곳에 귀를 기울이고 반면 자유한국당은 그 반대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고학성은 보수 색채가 강한 부산에서 다른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다. 실제로 고학성은 퇴직 후 민주당에 입당했고 선거도 나갔다. 


문재인 정부와 시각이 비슷했던 고학성은 당시 서천호 부산청장, 부산차장, 경찰청 조현오 청장뿐만 아니라 경찰청 대변인, 홍보담당관이 기소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고학성은 검찰 핵심 증인이었기에 재판마다 불려 나갔다. 그때마다 변호인들은 똑같이 언론 기사를 하나 꺼냈다. 



mbn 인용



“증인, 여기 권기선 청장 알지요? 2015년 1월 7일 자 권기선 부산청장이 도를 넘는 욕설과 모욕적인 말을 했다며 공식적인 해명을 요구한 사실. 증인이 이 해명을 요구했지요?” 


고학성은 이 내용은 희망버스와 관련 없다며 반박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재판장도 무슨 뜻인지 알겠다며 질문을 이어가게 했다. 


“증인이 이렇게 한 것은 맞잖아요”
“네.” 
“증인의 성품은 윗사람에게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 맞지요?”
“권기선 청장님은 부하 직원들에게 육두문자로 욕을 하니까...” 



사과하는 권기선 부산청장.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서천호 전 부산청장 기억에도 증인 성격이 불의를 못 참고 좀 강직한 성격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증인께서 적어도 댓글 다는 게 증인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으면 피고인에게 '청장님 위험하니까 우리 좀 조심스럽게 합시다' 이렇게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변호인들은 계속해서 고학성을 추궁했다 





변호인들이 던지는 질문에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이렇게 느껴졌다.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특별수사단에게 데이셨죠?’  





변호인은 언제부터 위법하다고 판단했는지 그 시점을 물었다. 


“제가 2017년 퇴직 후에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댓글 문제가 등장하면서 조사받는 게 제 귀에 들어올 때 2년간 정말 힘들었습니다. 조사를 제가 전체적으로 받아보니까 제가 마음속에 생각하는 바가 그때는 제가 생각 못했지만 ‘정말 잘못됐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학성은 경찰 특별수사단 조사를 받을 때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읊조렸다. 


“참 힘들었다. 지금도 힘듭니다.”


법정에서 변호인은 고학성 씨가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에 있었던 2006년과 비교해서 희망버스 집회가 열렸던 2011년에는 어느 정도 홍보업무 환경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이에 고학성 씨 답변은 이례적으로 막힘없었다. 



“많이 바뀌었어예.” 


(다음 제5화 부산경찰의 힘)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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