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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Sep 22. 2022

단편영화

"두려움이 가고 나면, 나만 남는다"


dear, 혜린


태풍이 지나가고, 또 다음 태풍이 왔어요. 낮에는 땀이 날만큼 덥지만 오후가 되면 금방 선선해진 바람이 발을 시리게 합니다. 저 그림엽서는  우리가  단편영화 작업 로케이션 탐사 겸 , 조명 체크를 하러 시크릿 비치에 갔던 날이네요.  바위틈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땀이 줄줄 나서 혼쭐났던 기억이 나네요.


저 바다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일상이 사진이 되고, 혜린님의 작품이 되고,  영화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 못가 너무 아쉽습니다. 10월의 전시는 가볼 수 있겠지요?  

그나저나 생계유지는 잘하고 계신가요? 

저도 어찌 저지 영리 활동을 이어나가며, 계속 영화 촬영 중입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품앗이 문화는  이럴 때 쓰는 게 아니었을 텐데, 영상작업을 하다 보니 품앗이가 미덕이 되는 문화에 어질어질 하지만,  첫 영화 연출을 하며  느낀 것은  단편영화 작업에선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가 처음 시크릿 비치에서  상상하던 장면들이 글이 되고  혜린님이 그려 준 그림이  콘티가  되어 영상이 되는 마법을 보면서 참으로 흥분되면서도 영상이 우리가 그린 그림만큼  잘 나오지 않을 때면,  또 좌절을 하곤 합니다. (거의 90프로는 좌절 모드지만요 )  자연에서의 촬영은 정말 너무 힘드네요. 

혜린님이 그려준 그림 콘티


다행히 인서트에 들어갈 드론 장면을 마무리했어요. 안전요원을 쓸 돈이  없어서 조류가 가장 없는 날 배 타고 섶섬 작은 한 개창에 들어가 바다수영을 해서 망망대해 느낌이 나는 곳에  떠다니며  촬영을 하고 다시 수영해서 들어와 모니터를 확인해야 했어요. 그곳이 평소 조류가 있던 지형인걸 아는 지라  핀 없이 수영하러 나가는 길이 어찌나 무섭던지.  


두려움이란 건,  모든 걸 멈추게 하나 봐요! 생각도 신체도 , 아무것도 통제할 수가 없었어요.  

공포 때문이었는지 금방 체력이 다해  몇 분 못 버티고 다시 돌아와 화면을 확인해 봤더니, 화면에 공포에 질린 나만 보이더라고요.  (젠장,  오늘이 약속한 마지막 드론 촬영 날인데!  )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어요 또 태풍이 온다고 했거든요. 나를 믿고 품앗이 해준 스텝 배우들을 위해서라도

두려워하지만 말자! 에라 모르겠다 수영하고 누워버렸어요 떠내려가면 떠내려가는 대로 육지에 닿을 거야 ~  잡으러 오겠지 하고요. 그랬더니 정말 이상하게도 체력이  빠지지 않더라고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어쩌면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지 모르겠어요. 보이지 않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죠.


영화 DUNE의 원작에 나오는 베네 게세리트 기도문이에요.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 두려움은 완전한 소멸을 초래하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설 것이며 두려움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두려움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그것이 지나간 길을 살펴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남아 있으리라."


 귀여운 티모시 샬라메의 결정적 대사 한마디가 있었죠. 

"두려움이 가고 나면, 나만 남는다"


제가 두려움을 극복했냐고요? 아니요.  두려움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죠. 다만 , 두려움을 극복하는 경험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다 보면 조금은  태연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 언젠가 진짜 '나'만 남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바라봅니다.  아무튼 저에게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너무 영화 얘기만 하게 되었네요 미안합니다.  




무화과나무 


엽서에서 무화과 향이 날 것 같아요. 5월인데도 무화과 꽃이 통통하게 올랐네요. 열매를 맺기 힘든 무화과 마치 우리의 작업과도 비슷한 거 같아요.  은은하고 우아한 향이 나는 무화과처럼 우리의 작품도 그러길 바라며,


9월의 중순  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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