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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임문화포럼 Dec 16. 2021

게임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가능성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이야기에서 몰입과 감정 이입의 문제와 소외 효과

  몰입과 감정 이입의 문제는 비단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학에서도 몰입의 문제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지금까지 감정 이입과 카타르시스의 경험은 극이 관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브레히트는 서사극 이론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 극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브레히트는 관객에게 감정 이입을 제공하는 극을 자본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의 가치가 중시되던 시대의 극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러한 가치들이 더 이상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자 극의 혁명을 도모했다. 서사극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정치·사회적 동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현재까지도 서사의 원칙으로 받아들여지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서사 문학에 대한 시도는 문학사에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새로운 극 문학을 서사극(epic drama)으로 이름 붙이고, 서사극을 구성하는 기법으로 소외 기법을 발전시켜 자신의 극에 적용했다. 극에서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인물을 소외시킨다는 것은 이 사건 및 인물에 대해 놀라움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서사극에서 소외 효과의 대상은 관객이다. 극이 모방하는 현실을 감정 이입을 통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극과 거리를 두고 극의 인물과 사건을 소외시킴으로써 비판적으로 극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소외 효과의 목적이다. 서사극에서는 관객이 극의 감정 이입하지 않도록 하고 극의 환상을 깨는 모든 기법들을 사용한다. 배우의 연기에서부터 무대장치, 서술자의 존재와 관객에게 말 걸기 같은 기법들이 그것이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의 소외 효과

  넷플릭스가 2018년에 선보인 인터랙티브 영화인 <블랙 미러 : 밴더스내치>는 감정 이입 경험에 의존한 기존의 영화나 게임과 같은 콘텐츠와 달리 관객에게 서사극의 경험을 제공한다. 인디게임 개발자인 스테판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몰입과 1인칭 경험이 아닌 다른 방식을 통해 적극적 참여의 경험을 제공한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에 사용되고 있는 소외 기법도 서사극의 기법과 동일하다. 1인칭 경험, 감정 이입, 몰입이라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관습에 익숙한 관객에게 이러한 익숙한 관습을 낯설게 바꾸어버리는 전략을 사용한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에서 관객은 주인공 스테판의 입장이 되어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관객은 자신이 스테판의 캐릭터로 대리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와 같은 소외는 <블랙 미러 : 밴더스내치>가 결말을 다루는 방식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대부분의 게임이 그러하듯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에도 다양한 결말이 존재하며, 총 12개의 결말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이야기 초반에 5개의 결말이 제시되는데 이는 실질적으로는 결말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관객이 이 5개의 결말에 도달할 경우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강제로 이야기를 앞으로 되돌려 버리거나 앞으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관객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여섯 번째 결말’에 가서야 비로소 엔딩 크레딧을 선택함으로써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 


  이야기 초반에 게임 개발자인 스테판은 ‘터커소프트’라는 게임회사로부터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게임 <밴더스내치> 출시를 제안 받는다. 이때 관객은 스테판이 게임을 집에서 독립적으로 개발할지, 회사에 소속되어 개발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관객이 게임 회사에서 개발하는 것을 선택하면 이야기는 ‘첫 번째 결말’로 귀결되고 <밴더스내치>가 출시되지만 평점 0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면 이야기는 이전 장면인 ‘독립적 개발’과 ‘회사에서 개발’을 선택 장면으로 되돌아간다. 관객은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독립적 개발’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 결말’의 경우 집에서 혼자 게임을 개발하던 스테판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아버지와 대립하는데 관객은 ‘아버지에게 고함지르기’와 ‘컴퓨터에 차 쏟아붓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때 관객이 ‘컴퓨터에 차 쏟아붓기’를 선택하면 <밴더스내치>가 개발되지 못해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하지만 이 결말 이후 화면에는 ‘되돌아가기’라는 하나의 선택지만 제시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종의 ‘올바른’ 선택을 해서 이 두 가지 결말을 경험하지 못하는 관객도 있겠지만, 이야기 초반에 이 두 가지 결말을 경험한 관객은 주인공 캐릭터로서 자신의 선택이 제약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관객은 계속해서 스테판의 행동을 선택하지만, 관객에게 선택을 통해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선택들을 통해 여러 분기의 결말들을 탐색하는 역할만이 주어진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가 주인공 캐릭터에 감정이입 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관객은 자신의 역할이 실제로는 작품이 제시하는 여러 분기를 탐험하는 역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1인칭 경험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강제로 되돌아가기라는 장치를 통해 실제로는 1인칭 경험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저버림으로써 소외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브레히트가 서사극을 위해 사용한 소외 기법 중 하나는 등장인물이 관객을 향해 말을 거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연극이 성립하게 하는 무대와 객석 사이의 ‘제4의 벽’이라는 관습을 깨버림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소외를 경험하게 한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배우와 관객 사이의 약속이며, 관객이 극에 몰입하게 하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 된다. 하지만 서사극에서는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검으로써 ‘제4의 벽’은 무너지고 관객은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에 감정 이입하기보다는 자신이 연극을 관람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에도 이와 같은 관객에게 말 걸기 형식의 소외 기법은 사용된다. 이야기 전반부에 사용자의 선택이 여러 차례 이어지면서, 주인공 스테판은 누군가 자신을 관찰하고,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해 정신적 혼란을 겪고, 심리치료사에게 상담을 받는 장면도 등장한다. 스테판과 스크린 너머의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제4의 벽’은 점진적으로 투명해지다가 한 장면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장면에서 스테판은 자신을 조종하는 누군가에게 ‘제발 신호를 줄래?’라며 허공에 절규하게 된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의 한 장면

 이때 관객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NETFLIX’와 ‘분기를 의미하는 기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관객이 ‘NETFLIX’를 선택하면 컴퓨터 화면에는 ‘넷플릭스라는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너를 보고 있다’는 메시지가 뜬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스테판은 자신의 선택이 관객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관객 역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스테판이 알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이 지점부터 관객은 스크린 너머의 캐릭터를 의식하면서 선택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NETFLIX’를 선택할 경우 관객은 두 가지 결말을 경험할 수 있다. ‘여섯 번째 결말’과 ‘일곱 번째 결말’이 그것인데, ‘여섯 번째 결말’에서 자신이 극 속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정신적 혼란을 겪는 스테판은 심리치료사의 사무실에서 심리치료사와 아버지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관객을 향해 ‘너희가 원하는 오락이 이런 거냐’라고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때 관객은 작품의 주인공을 이야기 경험을 대리하는 아바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인식하는 타자로 인식하게 된다.


 ‘일곱 번째 결말’의 경우 스테판이 자신의 현실이 진짜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순간 감독의 ‘컷’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촬영장을 비추며 줌아웃 된다. 그리고 스텝이 스테판에게 다가와 배우의 본명인 마이클이라고 부르며 말을 걸고 스테판은 또다시 혼란에 빠진다. ‘여섯 번째 결말’에서 관객과 캐릭터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이 사라졌다면, ‘일곱 번째 결말’에서는 무대와 무대 뒤를 구분하는 벽이 사라진 것이다. 관객은 관객과 무대 사이의 벽뿐만 아니라 무대와 무대 뒤 사이의 벽까지 사라지는 경험을 함으로써 한층 더 강화된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이야기 전반부에 관객은 1인칭 선택을 통해 주인공인 스테판과 동일시의 경험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선택이 반복되면서 선택을 통해 자신이 스테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있는 분기 서사를 탐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 후반부에는 캐릭터와 관객이 서로를 인지하게 되면서 관객은 ‘선택하는 관객’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더욱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캐릭터와 심리적 거리가 가장 가까운 감정 이입의 경험으로부터 선택을 의식하는 관객으로 점층적으로 캐릭터와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는 소외를 경험하는 것이다.      


게임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가능성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뿐만 아니라 게임 이론 상당수가 사용자 참여의 미학으로 몰입, 동일시와 같은 개념에 천착해왔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분기 서사라는 형식에 대한 비판적이고 다층적인 자기 반영을 통해 관객에게 ‘게임과 같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콘텐츠 안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상호작용이 가능한가?’라는 비관적 질문을 던진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주제 의식과는 별개로, 아이러니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아닌 다른 방식, 몰입이 아닌 소외를 통해서도 극적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게임이라는 장르, 1인칭 경험과 동일시라는 형식 외에도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서사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모든 종류의 콘텐츠가 디지털의 형식을 취하고, 웹 플랫폼에서 유통되며, 사용자 참여의 형식을 요구하는 시대에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 게임이 아닌 다른 미디어로, 극적 서사 경험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스토리텔링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윤혜영

가톨릭대학교 글로컬문화스토리텔링 융복합전공 교수

2021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2017년~현재 가톨릭대학교 글로컬문화스토리텔링 융복합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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