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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임문화포럼 Dec 24. 2021

게임과 일상: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즐기는 게임

  게임은 늘 일상과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었다. 게이머는 현실을 뒤로 한 채 게임에만 몰두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십상이고, 과몰입이나 중독과 관련된 논의는 게임을 일탈의 미디어로 인식되도록 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일상을 대체하는 공간으로서의 메타버스(metaverse) 열풍에는 역설적으로 게임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메타버스로 언급되는 대부분의 사례들은, <동물의 숲><포트나이트(Fortnite)><마인크래프트(Minecraft)>와 같은 게임형 가상세계들이다. 생활형 가상세계로 분류되는 <제페토(Zepeto)>도 서비스 방향성의 무게를 게임 쪽에 싣고 있으며, 회의를 하거나 강의를 들으러 들어간 <개더타운(Gather Town>에서 사용자들은 방 탈출 게임을 만들어 즐긴다. 미국의 컨설팅 기업 액티베이트(Activate)는 2022년 테크·미디어 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메타버스의 출발점은 게임”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1)기술적이고 플랫폼적인 측면을 넘어, 이 전망이 의미하는 것은 가상세계에서 나타나는 게임을 통한 커뮤니케이션과 관계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다시 몰아닥친 메타버스 열풍이 게임 속 일상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했지만, 팬데믹 이전부터 게임과 일상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시도들은 계속되어 왔다. 모바일 미디어가 대중적인 게임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후, 게임은 우리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더 가까워졌다. 이는 단순히 게임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거나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바일 미디어의 휴대성(portability)과 이동성(mobility)은 게임과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위치기반 증강현실 게임이다. 전 세계적인 하나의 현상으로 주목받은 <포켓몬 GO(Pokétmon GO)>를 바라보는 시각은 증강현실이라는 기술과 게임의 결합이라거나 <포켓몬>이라는 IP의 활용에 집중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포켓몬 GO>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일상의 공간을 게임의 공간으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플레이어는 손쉽게 게임과 일상을 오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출처 : 포켓몬 GO 공식 홈페이지(pokemongolive.com)

  <포켓몬 GO>와 <인그레스(Ingress)>를 개발한 나이언틱(Niantic)은 “스마트폰 대신 세상을 보며 인생을 즐기도록 새로운 현실과 사용자들을 연결하자”가 핵심 개발 의도라고 밝힌 바 있다. 2)나이언틱이 지향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걷는 모험’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라는 기술에 매몰되어 주변을 잃지 않도록, 기술을 통한 사회화의 수단으로 게임을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에 가고, 출근을 하고, 장을 보고, 친구를 만나는 일상의 공간이 포켓 스탑으로 전환되는 순간, ‘나’는 ‘지우’ 못지않은 트레이너가 되어 포켓몬들을 잡는다. 희귀한 포켓몬을 잡기 위해 해당 장소를 방문하거나, 커뮤니티 데이나 레이드에 참여하기 위해 다른 플레이어들과 협력하기도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함께 레이드를 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어색함은 사라지고 공통의 목적을 위해 집중한다. 온라인 게임의 가상세계에서 아바타로 만나 파티플레이를 수행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이다. 그야말로 ‘게임을 통한 사회화’가 아닐 수 없다. 그 공간이 PC방이나 문을 꼭 닫은 내 방이 아닌 탁 트인 공원이라면 더욱더 흥미롭다.     


  <포켓몬 GO>와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게임과 결합시키는 사례도 있다. 유니크굿컴퍼니의 대체 현실 게임(Alternative Reality Game) <작전명 소원>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대체 현실 게임은 트랜스 미디어를 방법론으로 하는 새로운 게임 형식이다. 아담 마틴(Adam Martin)과 톰 채트필드(Tom Chatfield)는 대체 현실 게임을 MMO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Game)의 일종으로 볼 수 있지만, 현실을 배경으로 게임 플레이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가진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3)대체 현실 게임이 지향하는 디자인 원칙은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This Is Not A Game·TINAG)’이다. 게임의 플레이어로 하여금 대체 현실 게임의 사건들이 게임이 아니라 현실로 믿게끔 만들거나, 허구인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마치 현실의 일인 것처럼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현실의 공간에서 게임 플레이를 경험하지만 <포켓몬 GO>가 게임 같은 현실을 경험하도록 했다면, 대체 현실 게임은 현실 같은 게임을 경험하도록 하는데 가깝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공식 블로그(blog.naver.com/mcstkorea)

  대체 현실 게임 <작전명 소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유니크굿컴퍼니가 제작한 역사 체험 콘텐츠다. 근현대사의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던 장소인 정동 일대를 중심으로 일제의 신문사에 스파이로 잠입한 독립군 ‘명선’을 도와 독립운동에 쓰일 자금을 운반하기 위해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방 탈출 게임이다. 미션을 수행하고 퍼즐을 풀다 보면 서울 주교좌성당, 덕수궁 중화전, 정동 중명전, 경교장 등 자연스럽게 정동 일대의 여러 역사적 장소들을 탐험하게 된다. 2019년 4월 5일부터 6월 10일까지 약 2달여간 5만 3천여 명이 참여하였다. 게임을 모두 플레이하는데 평균 3시간, 약 1만 5천 보가 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주목할만한 참여를 끌어냈다. 

     

  친구나 가족들과 삼삼오오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평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도시의 구조물이거나 관광객을 위한 문화재라고 여겨졌던 역사적 장소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플레이어들은 반쯤은 호기심으로 반쯤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플레이를 시작했지만, 곧 함께 퍼즐과 암호를 풀며 장소를 이동하는 재미에 몰입한다. 플레이가 끝나갈 즈음엔 독립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와 사건에 대한 의미를 환기하게 된다. 실제로 사회적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게임을 방법론으로 활용하는 것은 대체 현실 게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유형이다. <작전명 소원>의 미션은 툴킷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암호를 해독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때 증강현실이나 위치기반 기술을 기반으로 실제로 독립운동 당시에 사용되었던 한글 암호, 수기 암호 등을 활용한다. 독립군이라는 허구적 페르소나와 적절히 기술을 활용한 암호, 현실 공간을 탐험하는 조합은 날씨, 문화재 관람 시간 등 현실 공간에 의한 제약을 넘어 의미 있는 플레이 경험을 선사한다. 유니크굿컴퍼니는 <작전명 소원>의 서비스가 종료된 후, 대체 현실 게임 플랫폼인 리얼월드에서 <정동밀서>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다.


  일상의 공간에서 플레이를 경험하는 <포켓몬 GO>나 <작전명 소원>과 같은 게임은 기존의 게이머들에게는 새로운 플레이 경험을,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게임이라는 미디어를 발견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게임이 결코 일상에서 유리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일상과 결합할 수 있는 낯설지 않은 미디어임을 보여준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즐기는 게임은 어두운 PC방과 폐쇄적인 방을 넘어 우리의 일상과 게임이 함께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현실의 공간에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이와 같은 게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으로 움츠러든 우리의 일상만큼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포켓몬 GO>는 집에서도 플레이를 가능하게 하거나 원격으로 친구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업데이트를 단행했다. 리얼월드 또한 사용자들이 게임을 직접 만들어서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적 시도를 하고 있다. 부디 일상의 회복과 함께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게임적 시도들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1) 임영신, <메타버스 키우는 법…"게임이 출발점">, 매일경제, 2021.12.03.

   https://www.mk.co.kr/news/it/view/2021/12/1115113/

2) 오원석, <[써보니] 발로 뛰는 구글표 스마트폰 게임, ‘인그레스’>, 블로터닷넷, 2013.11.08.

   https://www.bloter.net/newsView/blt201311080001

3) Martin, Adam, Thompson, Brooke, Chatfield, Tom, Alternate reality games white paper, International Game Developers Association (IGDA). 

   (Retrieved from igda.org/arg/resources/IGDA-AlternateRealityGames-Whitepaper-2006.pdf), 2006, pp.6-7.



이진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21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2020년 ~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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