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무도 없는 시간, 넷플릭스에서 ‘페르시아어 수업’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를 배경으로, 유대인 청년 길레스가 생존을 위해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는 척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길레스는 독일군에게 체포된 뒤, 우연히 샌드위치와 맞바꾼 페르시아어로 된 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페르시아인으로 오해받는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즉석에서 가짜 페르시아어를 만들어 내고, 수용소 요리사인 코흐 대위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길레스는 자신만의 언어를 발명하게 되고, 점점 더 복잡한 거짓말에 휩싸이게 된다.
길레스와 코흐의 관계는 서서히 신뢰와 불신, 두려움과 의존의 감정을 교차하면서 극적으로 변해가는데, 문화 간의 갈등과 인간 관계의 복잡한 심리를 영화 곳곳에 배치하고 있어서 보는 내내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
길레스의 가짜 페르시아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닌, 그가 필사적으로 버티고자 하는 희망과 인간의 생존 본능을 나타내는 강력한 상징이다. 또한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면서 명부의 이름을 가짜 페르시아어로 만들어 내는 것은 어떤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과 같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
당신이 이곳에 존재했던 것을 증명하겠다.
당신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와 같은 메시지다.
‘페르시아어 수업’은 극한 상황에서 사람이 생존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이나 언어까지 새롭게 창조해내는지를 보여준다. 언어는 소통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의 고통, 희망, 그리고 꿈을 담는 그릇이다.
페르시아어 수업에서 주인공 길레스가 발명한 가짜 언어는 단순한 생존 도구 이상으로, 그가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흔적이자 희망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언어가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길레스가 3,000명에 가까운 희생자들의 이름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기억 속에서 불러오는 모습은 마치 그들 모두를 자신의 몸처럼, 언어처럼 기억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인간은 얼마나 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