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때 벌어진 일을 잊기 전에 뒤를 돌아보며
내가 2021년까지만 해도 Los Angeles (이하 LA)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당시 공교육 시스템은 완전 마비가 되어 있었다 (아래 기사 링크 참고). LA는 빈부격차가 심각한 도시여서 인터넷이나 컴퓨터가 제대로 설치 안 되어 있는 가정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런 집들을 위해서 LAUSD (Los Angeles Unified School District 로스앤젤레스 통합 학구)는 노트북 대여 프로그램을 만들고 인터넷을 어떻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나이대는 초등학생들이다. 이제 막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어린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교육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고 서로 교류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기에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알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위 문제는 대학에도 결국 영향을 미쳤다. 나는 다행히 코로나가 터지기 이전에 대학교 졸업을 마쳤기에 개인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 중에서 커뮤니티 칼리지 (community college 혹은 줄여서 CC)에서 수업을 몇 개 듣고 있었기에 코로나의 여파가 대학에 어떻게 미쳤는지 몸소 경험하게 되었다.
CC는 일반적으로 2년제 대학이어서 4년제 대학으로 편입을 목표로 하거나 아니면 준학사를 따려고 하는 학생들이 다닌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을 한 뒤에 구체적인 목표가 없어서 CC에 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직업 전선에 먼저 뛰어들었다가 나중에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간제로 CC를 다니는 학생들도 상당하다.
그러다 보니 CC에 다니는 학생 중에도 가정 형편이 썩 좋지 못한 친구들이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초등학생들과 같이 노트북과 인터넷이 필요한 대학생들도 있던 것이다. 내가 잠시 다녔던 CC는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 위치한 Santa Monica College (SMC)였는데 코로나가 2020년 3월 기준으로 넓게 확산이 된 상태에서 전자기기 보급 프로그램을 허겁지겁 만들어야 했다. 아쉽게도 기기 확보를 많이 할 수는 없었는지 선착순으로 대여하는 것을 진행했고 그 역시 생각보다 빨리 마감이 돼서 정말 필요한 학생들에게 노트북이나 아이패드가 돌아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에 비해서 내 모교인 UCLA나 사립학교는 문제가 덜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학교 규모가 크면 예산도 그만큼 더 크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물론 이전에 UCLA에 다니는 학생 중에도 노숙자가 제법 있다는 기사를 봤을 때 좀 충격이기는 했지만 이 이야기는 번외로 다른 글에서 나누도록 하겠다.
SMC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주제를 이어가자면 코로나 때 급격히 바뀌어야 하는 교육 시스템의 구멍을 계속 나는 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교수님들이 코비드 때 교수법을 바꾸셔야 하는 것에 엄청난 어려움이 있음을 계속 보게 되었다. SMC에서 내가 들은 수업을 가르치시는 분들은 대부분 연로하셨고 컴퓨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분들도 정말 많았다. 줌 (Zoom) 수업은 제대로 진행되는 것 자체가 신기할 나름이었다.
내가 듣던 수업 중 하나는 기본 스페인어(Basic Spanish I)이었는데 이 수업을 가르치시던 교수님께서 그나마 컴퓨터를 잘 다루셔서 본인이 70대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어린 교수님들을 열심히 가르치신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교수님보다 어리셔도 50에서 60대이신 분들 중에 컴맹이 생각보다 많았으니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지 모르겠다.
나중에 교수님과 대화 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러한 교수님들은 대학 내부적으로 추천하는 Canvas라는 시스템을 쓰지 않아서 모든 과제 제출과 채점을 프린트물로 하시고 주먹구구식으로 수업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누구에게는 편한 시스템이어도 본인이 익숙하지 않으면 여태까지 하던 대로 계속 이어나가는 것을 보며 역시 미국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눈치를 보기보다 교수님 당신이 지도하기 편하신 대로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줌 수업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교수님들께서 학생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당연히 모르신다는 이야기가 된다. 카메라나 마이크가 꺼져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분들이 줌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감이나 오셨을까? 물론 점차 나아졌겠지만 이 때문에 학생들의 태도는 최악이었다.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돈 내고 엉망인 교육을 받고 싶은 학생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태도의 문제를 극복하기 이전에 교수님들이 빨리 적응해야 하는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강의실에서는 프린트물을 나눠주는 것도 쉬웠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제대로 보급이 안 된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줌으로 프린트물과 수업을 동시에 보려면 적어도 휴대 전자기기가 두 개는 있어야 했는데 핸드폰 두 개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몇이나 될까. 교수님과 학생 모두가 힘든 상황이었다.
수업에 진행이 정상적으로 된다고 해도 문제는 수두룩했다. 학생들이 제대로 카메라를 켜놓지 않아서 수업에 집중하는지 확실하지 않았고 특히 시험이 있을 때는 어떻게 감독해야 하는지 미지수였다. 학생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기도 하고 중간에 인터넷이나 컴퓨터에 문제가 있다면 제한시간이 있는 시험을 제대로 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각 학생이 다른 문제를 가지고 오니 교수님들이 콜센터도 아니고 각종 IT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까지 생겼다. 내가 학생이었으니 망정이지 교수님의 입장이 되었다면 아마 복창이 터졌으리라 예상한다.
한 술 더 떠서 커닝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알 수 없었다. 학교 전체를 위해서 당장 외부 시스템을 도입하자니 너무 비싸고, 만약 큰 지출을 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이사회가 모여서 결정을 빠른 시간 내에 해야 하고 예산 조정부터 새로운 결산까지 행정적으로 전혀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한 시스템을 쓴다고 해도 그것을 쓰는 교수님들을 가르쳐야 하는 문제와 특정 수업에는 해당 프로그램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총제적 난국이 맞았다. 당시에 학생의 입장으로 그리고 전자기기를 제법 잘 다루는 사람으로서 교수님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다. 불만도 그만큼 있었고 오히려 내가 나서서 교수님들을 도와주고 싶은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돌아보면 교수님들에 비해서 학생들은 참 쉽게 넘겨온 것 같다. 교육자의 입장으로서 보면 정말 정신이 나갈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빨리 적응해서 교육법을 바꾸는 게 과연 쉬운 일인가? 그렇지만 코로나는 분명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와 나름 신선한 자극과 충격요법이 된 것은 사실이다. 안일하게 가르치던 교육자들에게는 혼나는 시간이 되었지만 빠르게 적응하는 분들께는 본인의 지경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여러 번 해 본 나로서는 교수님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가 배움의 기회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교수님들이 잘하지 못 하시는 것은 나중에 내가 비슷한 입장이라면 하지 말아야겠고 잘하시는 것들은 빨리 배워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가장 획기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것은 줌 수업 중에 스페인어 담당 교수님께서 쓰신 신문물(?)인 Kahoot!이었다. 게임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사지선다형을 제한 시간 내에 맞추는 방식을 썼다.
게임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참가자의 랭킹이 나눠지기 때문에 참여도도 높고 재미도 있어서 역시 교육의 미래는 Gamification (게미피케이션 - 게임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나중에 과외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쓸 수 있겠다 싶어서 교수님의 진행 방식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했다.
총정리를 하자면,
1. 미국 공교육 시스템은 코로나 적응기를 매우 어려워했다.
2. 그로 인해 고스란히 피해를 제일 많이 본 대상은 사회적으로 취약 계층에 속하는 저학년 학생들이었다.
3. 대학도 어려움을 피해가지는 못 했으며 나이가 많은 교수님들은 교수법을 갑작스럽게 바꿔야 하는 아마도 인생 최대의 역경을 경험했을 것이다.
4. 팬데믹을 통해서 배우는 인생교훈은 결국 빨리 적응하는 자가 이긴다는 것이다.
5. 추가로 앞으로 추구해야 할 교육은 게임화를 배제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번외로 팬데믹 때 학생으로서 가장 좋았던 것은 사실 연방정부에서 지급되는 재난 지원금이었던 것 같다. 두 번인지 세 번인지 받았는데 갑자기 없던 수입이 생겨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학부 졸업할 때까지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는데 이후에 CC를 다니면서 일어난 일들이 이제는 추억거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