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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마 Jun 24. 2024

육아를 책으로 배웠습니다

저는 순한 아이였습니다







저는 순한 아이였습니다.



4살쯤일까요?

해가 저물어 어슴푸레함이 내려앉은 방 안에서 엄마는 '부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엄마가 하시던 부업은 장롱에 매다는 노리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작고 까만 플라스틱 원통기둥에 빨간 실이 현란하게 오르내리면 금색 실을 수놓은 노리개가 완성되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바닥에 누워있었습니다. 이 장면이 저의 가장 원초적 기억 중 하나입니다.

그것 말고도 엄마의 부업은 다양했습니다.  어린이집도 없고 맡길 곳도 없던 시절이기에 엄마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저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신문배달을 하는 엄마를 따라 엘리베이터 없는 주공아파트 10층을 오르내리던 일도 생생합니다. 신문을 다 배달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빈 수레에 저를 태워 끌어주시곤 하셨죠. 제일 신기했던 부업은 엄마가 겨우 이틀 아르바이트로 갔던 일인데요. 당시 유행했던 '미미'인지 '쥬쥬'인지 모를 마론 인형에게 옷을 입히고 상자에 넣는 부업이었습니다. 오빠와 블록놀이만 하던 저는 그제까지 마론인형이란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었습니다. 처음 본 사람형태의 마론인형에게 팬티를 입히는 일은 충격 그 자체였죠.

이런 추억을 소환하는 이유가 뭐냐고요?

이 문장의 근거자료로 사용하려고요.

저는 순한 아이였습니다. 

엄마가 일을 하시던 내내 놀아달라, 뭘 해달라 보채는 것 없이 조용히 기다리는 아이였습니다. 제가 하는 말 아니고요. 엄마가 보증해 주었습니다.


"너는 한 번도 속 썩인 적이 없어."


어릴 적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자랐죠. 어쩌면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불을 지피는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만, 어찌 되었든 '순한 아이'는 저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낳은 아이도 '순할 것'이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죠. 아이를 낳아보기 전까지는요.









내 아이는 순하지 않았습니다.



"응애! 응애!"


뱃속에서부터 심상치 않더라니, 갓 태어난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어찌나 우렁차던지요. 병실 밖에서 대기하던 친정 부모님도 큰 울음소리에 깜짝 놀랐다고 하셨습니다. 가수가 되려고 이렇게 목소리가 크냐면서요. 38주에 3.4kg로 태어난 아이는 에너지가 남달랐습니다. 조리원 신생아실에서 다른 아기들이 모두 속싸개에 싸여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다면, 우리 딸은 눈을 말똥 하게 뜨고 두 팔을 휘두르느라 배냇저고리가 다 벗겨질 지경이었습니다. 갑자기 울음이 터지면 울음소리가 어찌나 크고 그치질 않는지 조리원 원장님이 달려오시는 일도 여러 번 있었죠. 조리원 원장님은 '얼굴값 한다'라고 하셨지만, 아이를 처음 낳아보는 저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집에 오고 여러 날이 지나면서 드디어 순한 아이는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죠. '울면 젖을 물리라'는 말에 아이가 큰 소리로 벼락 치듯 울 때마다 젖을 물렸더니 하루에 14번도 넘게 수유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꼴이 아니었죠.


달라진 환경과 몸상태, 산후우울증으로 매일 밤 베개를 적시우며 울었습니다. 먼저 아이를 낳은 형제자매도 가까운 친구도 없었기에 갓난아이라는 존재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고 조언을 구할만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거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냐고 한탄했습니다. 육아학교가 있어 국가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습니다. '울면 젖을 물리라'는 어른들의 조언은 답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무엇이 정답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지금처럼 유튜브에 많은 정보가 있는 시절도 아니었고요. 맘카페의 '너무 힘들다'는 글에는 득달같이 '아이는 로봇이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라는 해결이나 공감과는 동떨어진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리고 이 후로도 엄마, 아빠는 얌전한데 누굴 닮은 거냐는 이야기를 유아기 내내 듣게 됩니다...








육아를 책으로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수면교육, 먹놀잠, 아이주도 이유식, 훈육, 기질, 애착... 책에는 처음 들어보는 용어와 나의 고민을 해결해 줄 실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책을 의지해 어려웠던 영아기를 보냈습니다. 먹놀잠이 할만해지고 훈육이 필요하던 시기에도 책을 찾았습니다. 너무 활동적인 아이가 버거워 기질 검사와 육아 스트레스 검사를 하던 시기에도 책을 찾았고요. '이제 영어 공부 시켜야 하냐, 무언가 교육을 해야 하냐' 고민이 시작될 때도 책을 읽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 한 명 없었던 제가 기댈 곳은 책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책에는 주변 엄마들과도, 오래전 아이를 키워본 부모님과도 다른 이야기들이 적혀있습니다. 과학적인 근거들, 논문에서 비롯된 방법들, 그리고 다양한 아이들을 경험해 온 전문가들의 이야기.


아무도 내 아이를 대신 재워주지 않았지만 책에서 알려준 방법은 아이를 잠들게 해 줬습니다. 밥 잘 먹는 아이를 만드는 방법도 책에 있었습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 할 타이밍이 언제인지, 그 방법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선배들과 전문가들의 노하우도 있었습니다. 사소하게는 넘쳐나는 아이의 디지털 사진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에 대한 팁까지도요.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닌 이웃 엄마들의 '그렇다카더라'가 아닌, 더 많은 경험과 근거를 갖춘 이야기들이 책에 있었습니다. 책이 주는 권위에 기대어 나만의 기준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SNS와 소문이 아닌 나만의 방법으로 흔들리지 않고 오롯이 내 아이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여전히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이를 키워 온 8년의 시간보다, 키워야 할 시간이 더 많이 남아있죠. 여전히 아는 척하기보다는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초보엄마입니다. 그래도 그동안 고민하며 책으로 배워온 육아 이야기를 기념비 삼아 남겨볼까 합니다. 저보다 늦게 아이를 낳은 회사 후배들의 질문에 읽어보라고 권해주던 책들을 글로 적어볼까 합니다. 저처럼 답을 찾아 헤매는 간절한 초보 엄마에게 작은 것 하나라도 도움으로 닿길 바라면서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너와의 시간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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