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은 매우 성실하셨으나 조금은 무뚝뚝한 분들이셨다. 자기표현에 특히 서툰 분들...
아마 고만고만한 살림에 우리 자매를 키우시느라 벅차 그러셨겠지만, 단 한 번도 다정한 말씀을 해주신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엄마가 되면 다정하고 언제나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노력하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학창 시절엔 유난히 작은 키로 인한 콤플렉스로 늘 자신감이 없었다. 어렸을 적 동네를 주름잡던 그때의 그 골목대장은 어디로 가고 폭풍의 사춘기를 겪고 난 후의 나는 어느새 나의 부모님처럼 자기표현에 서툰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이상하게 닮기 싫었던 것들만 닮아가는 아이러니함.
그래서 한참을 그런 나를 미워했다.
아니, 이런 성격으로 낳아주신 부모님을 아주 조금은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그게 어디 부모님 탓이었을까!
그럼에도 늘 자신 없는 나의 모습은 나를 이렇게 낳아준 부모님 탓이라 생각했다.
작은 키도, 한쪽눈의 시력이 현저하게 낮은 것도,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툰 것까지도...
그렇게 내가 나를 미워하는데 10대 후반과 20대 초반까지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나를 다독이며 매일 거울을 보며 활짝 웃으며 "예쁘다."라고 해줄 텐데...
시간이 흘러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돌이켜보니, 내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적인 모습이야 자기만족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니 제쳐두더라도...
성실했던 부모님 아래서 자란 덕분에 나도 제법 성실하다는 소리를 듣고 산다. 어디 그뿐인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던 엄마를 보고 자라서 시어른들과 함께 사는 것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하고 시어른들이 분가해도 좋다는 말씀을 하실 때까지 합가 해서 함께 살았다. 그걸 보고 자란 나의 아이들도 동네 어르신들을 봐도 어려워하지 않는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는 말이 정말 괜히 나온 말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더욱더 바르게 생각하고 옳은 행동을 하려 애쓰게 된다. 아마, 나의 부모님 또한 그러셨으리라...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애써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나를 그리 키우셨겠지 싶어 진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엄마는 공부는 안 해도 좋으니 책은 늘 가까이 하라 하셨다. 엄마 역시 책이 너무 좋고 이야기가 좋았는데 사서 보는 게 그렇게나 힘들었다 하시며, 내 아이만큼은 일고 싶은 책 실컷 읽으며 크길 바라셨다 했다. 그래서 어려웠던 살림살이에도 읽고 싶은 책이 있다 하면 두말없이 사주시곤 하셨는데, 그 덕분에 지금도 책이 그렇게 좋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의 그 촉감, 보물찾기 하듯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기쁨... 엄마 덕분에 생긴 나의 소중한 취미이자 삶의 낙이라고 할까?
나의 큰아이와 막둥이가 이런 나의 성향을 닮아 책을 좋아한다. 큰아이는 글도 제법 쓰는데, 이럴 땐 타고난 성향 자체가 나를 쏙 닮은 듯하다.
유소년 축구선수인 막둥이도 훈련 틈틈이 책 읽기를 즐겨한다. 이 역시도 나의 피를 이어받았음이 아닐까 싶어 져서 묘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셋 중에 유일하게 아빠의 성향을 많이 닮은 둘째는 커 갈수록 아빠와 판박이다. 성격도 외적인 모습까지도...
생각할수록 신기하지 않은가?
둘은 나를 닮고 하나는 아빠를 닮았다.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아가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고집스럽게 한 곳만 파고드는 성격은 아버지를 많이 물려받은 듯 하지만...
외적인 모습은 그저 그뿐이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내면이 더 중요함을 조금씩 더 알아가는 중이다.
살아가는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때가 더 많아지고, 고비를 넘었다 싶으면 또 다른 고비가 오고 이제 좀 여유가 생기려나 싶다가도 또다시 입이 바짝바짝 말는 순간이 오지 않던가!
웃는 날이 있으면 우는 날도 오고, 또 그러다가 다시 맑게 개인 하늘 마냥 모든 것이 술술 풀리는 그런 때가 비 온 뒤 찾아오는 쨍한 햇빛 나는 날도 오겠지!
이렇게나 마음도 몸도 건강하게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날. 조금 더 나를 사랑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