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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이월의봄날 Oct 22. 2024

#4. 표현에 서툰 사람

브런치 팝업 전시에서 얻은 글감 30가지로 글쓰기.

"미나야! 니 장모님한테 언제 전화했노?"

"왜..."

"좀 하고 해라! 비온다 아이가! 얘깃거리 있을 때 해라! 표현은 해야 아는기라! 누가 니맘 거저 알아준다카 드나!"

"... 오빠 안 하면서 누구보고 뭐라 해!"

"야! 내 요즘 그래도 니한테 맨날 한다 아이가! 사랑한다~이뿌다~안하드나?"

"뭐래는 거야! 밥이나 먹어!"


뜬금없이 표현하라니?

몹시도 생경스러워서 한참을 말없이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서사가 저리 길단말인가!


"형석이도 내일 모래면 성인이다! 니도 이제 좀 변해야 안 하겠나! 나중에 애들이 니한테 그런다 생각해 봐라! 얼마나 외롭겠노! 가뜩이나 니는 딸도 없는데..."


더 이상의 말은 듣기 싫다는 듯, 제법 신경질 적으로 밥을 국에 퍽퍽 말아 그저 말없이 먹고만 있었다.

이제 좀 그만해. 알아들었기를 바라면서...

남자들은 나이를 먹으면 여성호르몬이 많아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평소에 하지 않던 잔소리를 저리도 늘어 놓는것 보면... 한잔 두 잔 연거푸 마시더니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낯설다 정말. 왜 저러니? 싶어서 나도 따라 아주 잠시 창밖을 보다가 결국 숟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말았다.


"와~못 먹겠나! 억지로 먹지 마라! "

"아니, 뜬금없이 오늘 왜 그래? "

"그냥~니 요즘 계속 저기압 아니드나! 다른 집은 엄마랑 딸은 친구 같다데! 니도 엄마한테 좀 기대고 해라!

머스마들에게 할 끼가! 몬한다 아이가! "

"있지... 나는 그런 딸이 못돼! 다정하고, 사소한 거 다 말하고, 웃고, 그런 거 못해. 속상하고 힘들고 괴로울수록 더 그래. 그런 걸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몰라. 다른 수다는 끊임없이 떨어도 그런 건 못해. 말로 안 나와.  클 때부터 그랬어. 그냥 그게 익숙해서 그래! 엄마나 아빠는 너무 나를 강하게 곧게만 키우려고 그랬는데, 나는 애초에 그런 애가 아니었잖아. 자꾸만 나보고 강해지라고만 했지, 기대라고는 안 했어. 나만 그랬는 게 아니고. 나미도 그래... 우린 그렇게 컸어! 표현? 그것도 해본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나는 못해. 입 밖으로 못해서 맨날 오빠한테도 장문의 카톡 보내고, 애들한테도 그러잖아. 나한테 언어는 클 때부터 글이었어. 말이 아니고... 그게 익숙해서 그러는 거야. 이러다 말어. 좀 둬. 여태 그냥 잘 두더니 왜 그래!"


이럴 땐 같이 한잔씩 했으면 좋겠다면서 혼자 빈 잔을 채우더니 단숨에 비워낸 남편이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원래부터 술을 못마신건 아닌데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동안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그렇네. 술도 표현도 자꾸 해야 늘어나는데 나는 둘 다 안 하네. 이제라도 노력을 해야 하는 건가? 이상하게 다른 수다는 하루종일 떨 자신 있는데...


"니 내랑 있을 때 표정 봤나? 단 한순간도 안 웃는다! 아나? 그 마이 지치나! 니 내 못 믿나!"


누가 내 뒤통수를 세차게 후려친듯한 충격에 마땅히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누가 못 믿는데?' 하고는 헛기침을 하며 그제야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내가? 그랬던가?

아닌데... 못 믿고 안 좋으면 살겠나! 아니, 이십 년을 살았는데 매일 사랑스럽고 좋고 그럴 때는 지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러다가 갑자기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게 아니라 사실 그랬다.

이유 없이 짜증 나고, 자꾸만 미운 구석이 보이고, 하나부터 열까지 자꾸만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한숨만 나오고 답답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랬어. 요즘은... 사는 게 참 진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서 이제 좀 숨통 좀 트고 살겠다 싶은 순간에 꼭 한 번씩 비바람이 불고 폭풍이 몰아치는데, 나란 사람은 나약하고 가늘어서 곧게 강단 있게 넘기지를 못하고 이렇게 휘청휘청 보는 사람 불안하게 만들어. 꼭 이렇게 티를 팍팍 내고 말아.

마흔이 넘어서도 이래. 나는...

지금이 너무 힘드니 좀 도와달라는 그 말을 못 해서 혼자 끙끙 앓고 말아.


아버지도 엄마도 표현에는 서툰 사람들이었다.

다정한 말보다는 엄하고 가시 돋친 말을 더 많이 자주 하셨다. 안다. 이제야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인지라 너는 나처럼 그리 살지 말라는 의미였으리라는 걸... 남편이 속상해하는 그 마음도 왜 모르겠는가! 이십 년을 살아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다. 나는 나를 표현하는 것이. 글이 아닌 말로 내뱉는 것이.


"누가 알아준다카 드나! 내도 말 안 해주면 모른다 아이가! 해라! 내 짜증 안 낼게! 하고 살아라 니도! 이제!"


하루종일 비가 내려 그러는 걸까?

아니면 진짜 당신에게도 여성호르몬이 더 넘치는 순간이 온 걸까? 왜 여태 아무 말도 안 하던 사람이 뜬금없이 왜 이럴까? 왜 요즘 이리도 자꾸만 다정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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