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집이 있는데, 쫓겨나는 기분이란...(이별)
브런치 팝업 전시에서 얻은 글감 30가지로 글쓰기.
오늘도 두 집이나 이사를 나갔다.
가뜩이나 낡은 동네의 집들이 하나둘씩 을씨년스럽게 <공가> 표시가 적힌 노란 딱지들이 늘어만 간다. 나 역시도 곧 떠나야 하는데... 이 감정은 대체 뭐란 말인가! 낡고 낡은 이 집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바랐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싱숭생숭하고 서글픈 마음만 드는 것일까?
어르신들이 유난히 많은 동네, 일산 신도시 중 가장 먼저 생겼다는 내가 사는 이 동네. 나의 집은 마흔 살도 훨씬 넘은 집이다. 빨간 벽돌로 차곡차곡 쌓고 시멘트를 발라 마감한 건물 양쪽으로 방향만 다른 구조가 같은 집이 나란히 3층으로 여섯 집이 마주 보고 있다. 그런 건물이 4개씩 병렬로 세워진, 총 4개의 동으로 구성된 빌라촌. 그중 가장 햇빛이 잘 들어오고 시야의 방해도 없는 집이 '나의 집'이다. 신혼부터 내 집에서 시작했던 우리는 어려움 없이 평수를 늘려가며 살았다.
그러다, 큰 아이 초등학교 1학년 즈음...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잃게 되었다.
거기에 덤으로 빚까지...
절망적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일은 벌어지고, 아이들은 커가니 어서 정신 차리는 수밖에.
하루 두세 시간 쪽잠을 자면서 이를 악물고 살았다.
밤마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은 두려움에 울다가도, 기계처럼 몸을 일으켜 일터로 나갔던 그 시간들 끝에 지금의 이 집으로 오게 되었다.
그날의 그 설렘 그 뿌듯함은 지금도 생생하게 내 마음에 곱게 자리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우리가 피 땀 흘려 일군 어쩌면 첫 번째 우리 집인 셈이었다.
(이전의 두 집은 양가 부모님들의 도움으로 얻은 것이었으므로...) 아파트가 아니면 어떠하랴!
이제 이사 걱정 없이 누구 눈치 안 봐도 되는... 아기자기하게 내 마음대로 꾸미고 살아도 되는 '나의 집'인데...
그렇게 십 년.
세월의 흐름에 별 수 없이 집은 갈수록 낡아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포근했던 '나의 집'이었는데... 이제 이곳에서는 3주라는 시간만이 남았다.
안방과 화장실 사이의 모퉁이에 표시된 아이들의 성장 기록이 이제 멈추게 되겠구나. 구석 구석 나의 손길이 닿은 내 소중한 공간.
이제 몇 달 뒤 정들었던 이웃들이 각자 새로운 곳으로 터전을 옮기게 되면 마구잡이로 허물어지고, 곧 새로 땅이 다져지고 높은 아파트가 들어설 테지...
"아고, 새댁이! 어디로 이사가? 나는 저짝에 역 근처로 가네! 새댁이는 이사 갈데 정했는가!"
"할머니. 저는 둘째가 이 동네 고등학교 다녀야 해서요. 근처로 가요. 저 위에 초등학교 앞으로 가기로 했어요."
"그려, 새댁이는 잘살껴. 야무징께. 애들도 잘 키웠지 뭐. 여서. 아파트 살면 애들 이래 못 키워! 민원 들어와 싸서. 여야 노인네들이 절반이니 다들 이해해 주지! 안 그려? 아이고야... 내 다시 아파트 세워지믄 오겠는가! 내는 못 오지 싶네~우리 새댁이는 고생했으니 좋은 집에 다시 들어와 잘 살게나~! 복 많이 많이 받고!"
바로 위층 할머니가 이사 가시기 전날에 해주셨던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떤 종류의 이별도 쉽지는 않다. 더더군다나 십 년을 이웃으로 함께했으니...
내 집을 두고 당분간은 다시 또 세입자로 살아야 하는 날들에 억지로 쫓겨나는 기분에 마음이 서걱거리는 날들을 일단은 견딘다. 내 집을 두고 쫓겨나는 이 알 수 없는 기분은 뭐란 말인가! 조금만 참고 견디면 새집에 입주할 일만 남았는데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이곳에서 추억이... 너무나 많아서 쉽지 않다 이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