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일기 중에서>
몇 년 전 지인 집에서 저녁을 얻어먹었는데 간장에 절인 새콤한 맛의 마늘종이 나왔다. “마늘종이 맛있는데요?” 내 말에 지인은 약간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했다. “마늘종이 아니라 아스파라거스인데요.” “엥, 이게 아스파라거스라고요?” 아스파라거스는 스테이크를 먹을 때 곁들여 먹는 채소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장아찌로 만들어 먹기도 하나 보다. 그러고 보니 생긴 게 조금은 다른 것 같다.
예전에는 식탁에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던 아스파라거스였는데 요즘에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가격도 제법 비싸요. 요만큼 한단에 만원씩 해요.”라며 지인은 손을 조그맣게 오므려 보였다. 아스파라거스에는 아스파라긴산을 비롯하여 비타민, 항산화 물질 등 각종 영양분이 잔뜩 들어있다고 한다. 아스파라거스가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고 하니 먹기는 해야겠는데, 가격은 그리 만만치가 않은 것 같다. 이럴 때면 우리 집 가훈처럼, 내가 늘 식구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가격이 비싸면 키워 먹으면 되지!”
그까짓 아스파라거스쯤이야 밭이랑 하나만 심으면 충분히 먹을 수 있겠지 싶었다. 추위에 약한 채소만 아니라면 이제는 무엇이든 제대로 키워낼 자신도 있다. 일단 먼저 재배에 필요한 정보를 찾아봤는데, 아스파라거스는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우리가 먹는 아스파라거스는 죽순처럼 봄이면 땅에서 올라오는 새순이라고 한다. 아스파라거스는 다년생 식물로 한 번 심으면 15년 정도는 지속적으로 수확할 수 있고, 첫 수확도 씨앗을 뿌리고 3년은 기다려야 한단다. 아무래도 돌려짓기를 하는 우리 집 텃밭에서는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반면에 재배법은 아주 쉬워 보였다. 한 번 심어 놓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방제를 할 필요도 없고, 이따금 거름과 물을 주고, 풀만 잡아주면 된다. 키가 보통 1.5미터는 자란다고 하니 지지대를 세워주어야 할 것 같다. 추위에도 강해 겨울에도 뿌리가 얼어 죽지 않고, 따뜻한 봄이 되면 땅을 헤집고 새 순이 솟는다. 우리는 그 순을 잘라먹기만 하면 된다. 참 쉽다! 다만 3년을 기다리려면 인내심은 좀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인내심이란 게 제일 어렵다. 씨앗을 뿌리고 3년 동안 아스파라거스 순이 나올 때까지 목 빠지게 기다려야 하니까 말이다. 아마도 밭에 무엇을 심었는지 까맣게 잊을 때쯤이 되어서야 겨우 아스파라거스를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3년 말고 좀 더 빨리 수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스파라거스도 부추처럼 뿌리를 심으면 수확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추도 씨앗을 뿌려 키우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뿌리를 심으면 바로 다음 해부터 수확할 수 있다. 망설일 것도 없이 곧바로 아스파라거스 뿌리 10 포기를 구입했다. 1~2년은 순식간에 지나갈 테니까.
농사란 기다림의 연속인 것 같다. 씨앗을 뿌리고 싹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새싹이 자라 큰 줄기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열매가 맺고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일 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간다. 나무를 심을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회초리 같은 나무를 심으면 왠지 휑하고 허전해 보인다. 하지만 시간만 지나면 나무는 저절로 자라기 마련이다. 첫해는 뿌리를 내리느라 더딜지 몰라도 그 이후로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사람들은 지루해 보이는 그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지금 당장은 2~3년이 길어 보일지 몰라도, 막상 살다 보면 그 정도의 세월쯤은 후딱 지나간다. 농사꾼으로 살아온 지 십여 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기다림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아스파라거스를 심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아스파라거스는 한 번 심으면 옮길 수도 없으니 한적한 곳에 심어야 한다. 자연스레 과수원 끝자락에 아스파라거스를 심게 되었다. 그곳은 길이 25m 정도의 한 줄로 된 긴 밭으로 고구마와 옥수수가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 만든 아스파라거스 밭은 길이 4.5m의 짧은 이랑이었다. 이 밭에 거름을 듬뿍 뿌려주고 아스파라거스 뿌리를 40cm 간격으로 심었다. 그 밭은 과수원 끝자락이라 가뭄을 타는 땅이므로 점적호스도 설치해 주었다. 뿌리를 심어서인지, 아스파라거스는 첫해 5월에 벌써 땅을 헤집고 삐죽 얼굴을 내밀었다.
아스파라거스는 작년에 첫 수확을 했다. 그런데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뿌리가 발달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밭이 작으니 수확량이 작을 수밖에 없다. “겨우 요만큼으로 누구 코에 붙이려고?” 아내가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아무래도 아스파라거스 밭을 늘려야겠다. 마땅한 장소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니 만만한 게 옥수수 밭뿐이다. 옥수수 밭을 뚝 잘라 아스파라거스 밭으로 만들었다. 난 옥수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아내는 많이 좋아한다)!
우리 집에서 제일 엉성한 밭이 바로 아스파라거스 밭이었다. 풀을 깎기 쉽도록 이웃집 인삼밭에서 차광막을 얻어다 깔아주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꼴이 영 말이 아니었다. 이번에 과수원에서 걷어낸 보도블록으로 아스파라거스 밭을 새로 단장했다. 먼저 파란 차광막을 걷어내고, 줄을 띄운 다음, 줄에 맞춰 보도블록을 깔아주었다. 이번에는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흙에 보도블록을 절반만 묻기로 했다. 아스파라거스 밭은 해마다 흙을 갈아줄 필요도 없으니까.
제일 끝단에 심었던 아스파라거스 한 포기를 캐낸 다음, 뿌리를 여럿으로 찢어 새로 만든 밭에 옮겨 심었다. 아스파라거스 밭이 절반쯤은 늘어난 것 같다. 이번에는 풀도 덜 나고 항상 습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특별히 볏짚도 얻어다 덮어주었다.
아스파라거스는 텃밭 작물로도 꽤나 괜찮아 보인다. 키우기도 쉽고, 영양분도 많고, 쉽게 사 먹기가 어려운 고급 채소다. 그 귀한 채소를 텃밭 귀퉁이에 심어놓기만 하면, 두고두고 봄마다 수확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아스파라거스 새 순을 수확하는 것도 거의 끝물인 것 같다. 아스파라거스 줄기가 제법 질겨졌다. 줄기를 수확할 때는 몽땅 다 잘라내지 말고 일부를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남겨진 아스파라거스가 여름내 햇빛을 받고 더욱 무성히 뿌리를 내릴 테니까 말이다. 아마도 내년에는 더 넓어진 밭에서 더 많은 아스파라거스 순이 삐죽삐죽 솟아오를 것이다.
올해 마지막으로 굵은 순들을 잘라 바구니에 담는다. 오늘 저녁은 내가 좋아하는 ‘아스파라거스 볶음’을 해 달래야지! 아스파라거스 한 가지만 덧붙여도 우리 집 저녁식탁이 더욱 풍성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