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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씨 Sep 05. 2021

울타리

'주관'이라는 울타리를 허물 때, 더 많은 세계가 열린다.

친구가 "너는 참 자기 주관이 뚜렷한 거 같아."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했습니다. 내가 주관이 뚜렷하다는 말을 듣는 날이 올 줄이야!


사실, 저는 주관이 뚜렷하기보다 희미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남들이 아무 의미 없이 던진 말에도 상처를 잘 받았고, 상처를 받은 날엔 집에 혼자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러던 제가 '주관'이라는 울타리를 쌓기 시작한 뒤로부터 타인의 말에 상처받는 일이 줄었습니다. 생각과 기준이 명확해질수록 타인이 제 기준을 침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울타리를 더 크고 높게 쌓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제가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주제에서 주관이 강해졌습니다. 확실하게 선을 그어 제 마음을 방어하고 싶었고, 그 선을 침범하는 사람은 울타리 안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마음보호하기 위해 세운 기준들 덕분에 자존감이 크게 높아졌고, 한동안 울타리 안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주관적 기준들이 나를 보호해 줄 수는 있지만,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주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대하기 어려워했거든요. 주관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주관이 강한 저 조차도 대하기 어려우니까요.


사실 사람들을 싫어했던  아니었습니다. 단지 제 영역이 침범당하는 것이 싫었던 거죠. 그로 인해 상처받는 것이 싫었고, 인간관계에서 마찰이 생길 때마다 스스로 결함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 울타리를 세워 그 안으로 도피하고 싶었습니다.


"난 잘못된 사람이 아니야. 내 기준은 이렇고 내 말이 맞아."



사람이 싫지 않은데 상처받기 싫어 피하고, 울타리 안의 세상이 아늑하다고 말하면서도 항상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도피처가 안식처는 아니니까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단단하게 쌓아 올린 울타리는 저를 지켜주기도 했지만, 사람들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안전해진 동시에 고립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울타리를 허물자니 나쁜 사람이 틈을 타 제 마음을 침범할까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이게 최선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상처받기 무서웠던 것이고, 사실은 사람을 좋아하는 쪽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거든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최선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요즘, 저의 생각과 기준을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수정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울타리 안에만 머무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여전히 상처받는 것이 두렵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 모든 과정이 성장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요즘엔 모임에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소통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주관이 뚜렷하되 사람들에게 제 기준만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제가 울타리를 치지 않아도 될 만큼 다정한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습니다. 울타리를 허물고 있는 요즘,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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