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2>, <오은영 리포트>로 바라본 기울어진 성평등 인식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
(중략)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여자
(중략)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1989년 발매되어 인기를 끈 변진섭의 노래 <희망사항>의 가사다. 무릇 대중가요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 시절 남성들은 <희망사항>의 가사처럼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자신의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순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김치볶음밥과 같은 요리를 만들어 내조해주는 여자를 선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33년의 세월이 흐른 2022년의 여성상은 어떠할까. 여성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 진출에 적극적이고, 탈코르셋 운동을 전개하며 여성을 향한 외모 압박을 벗어던지고자 노력한다. 오래전부터 뿌리 깊게 이어진 성차별로부터 탈피하려는 주체적인 여성상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대적인 사회 흐름과 정반대로 아직 미디어는 여성에게 남성을 위해 김치볶음밥을 만들라고 권유한다. SBS 예능 <동상이몽2>에 등장하는 임창정의 아내 서하얀은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현모양처 역할을 한다. 잠에서 깬 임창정은 이불 속에 누워 서하얀에게 ‘창정이 정식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 비록 겉보기에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지만, 발화의 목적은 분명 ‘어서 창정이 정식을 차려달라’는 지시다. 임창정의 지시에 따라 서하얀은 분주하게 5첩반상을 준비한다. 패널들은 ‘대단한 분이시다’, ‘참 차분하시다’라며 남편 아침상을 차리는 서하얀을 추켜세운다.
서하얀의 내조는 아침상 차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서햐얀은 마치 비서처럼 뮤지컬 연습, 콘서트 현장 등 남편의 업무 현장을 따라다닌다. 소속사 일에 관해서는 서하얀도 엄연한 직원이다. 회사 재정을 들여다보고 직원회의에도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한다. 하지만 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서하얀은 임창정을 보필하는 보조자로 전락한다. 일정을 끝낸 임창정이 소파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패널들은 ‘너무 안쓰럽겠다’라고 말하며 시청자로 하여금 임창정을 동정하도록 종용한다. 임창정이 체력적으로 힘이 든다면, 그와 동행한 서하얀 역시 지칠 것이다. 하지만 서하얀은 임창정처럼 소파에 쓰러지지 않고 임창정을 위한 내장탕과 7첩반상을 내온다.
<동상이몽2>의 다른 커플인 이은주와 손담비는 서하얀만큼 능숙한 현모양처는 아니다. 이은주는 인터뷰에서 결혼 전까지 제대로 요리를 해본 적이 없으며, 늘 회사나 밖에서 밥을 사서 먹었다고 고백한다. 방송에서 이은주는 무척이나 서툰 솜씨로 계란후라이와 박대구이를 요리한다. 손담비도 마찬가지다. 남편 이규혁을 위해 콩나물 전을 만들 때, 이규혁의 할머니 생신상을 준비하려고 미역국과 잡채를 요리할 때, 손담비는 긴장되고 서툰 모습을 보인다. 서하얀의 능숙함이 칭찬의 대상이 되었던 것과 반대로 이은주와 손담비의 미숙함은 웃음거리가 된다. <동상이몽2>의 패널들은 ‘(이제껏) 계란후라이도 해보지 않았느냐’며 이은주를 타박한다. 심지어 손담비가 콩나물 전 반죽 조절에 실패하자 패널 김구라는 ‘오늘 정을 떼는 과정’이라고 언급한다. 동시에 화면 하단에는 #요리 세포 0% 입증, #저게 다 정을 떼는 과정이라는 자막이 나갔다. 은연중에 여성의 미숙한 요리 실력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동상이몽2>가 지켜내려고 노력한 전통적 여성성의 환상(-내조하는 아내가 만드는 행복한 가정-)은 MBC 예능 <오은영 리포트>에서 처참히 깨진다. 안무가 배윤정은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다. 인터뷰에서 배윤정은 ‘아이가 짐으로 보이고 내 인생이 완전히 꼬인 것 같다’라고 속마음을 토로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배윤정이 아이를 출산한 시기와 댄서들의 전성시대를 이끈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방영 시기는 절묘하게 겹친다. 출산 전까지 배윤정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댄서였다. 브라운관에서 활약하는 다른 댄서들과 육아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는 것도 당연하다. 남편 서경환은 이러한 배윤정의 우울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배윤정, 서경환 모두 같은 집에 있지만, 서경환은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 배윤정이 서경환에게 아이를 봐 달라고 부탁하나, 그는 아이와 놀아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이내 아이를 빨리 재우려고 한다. 배윤정과 서경환 둘 다 부모임에도 두 사람의 어깨에 지워진 짐의 무게는 현저히 다르다. 서경환이 방문을 닫고 개인 업무를 보는 동안 배윤정은 홀로 아이를 양육하고 남편이 먹을 라면을 끓인다. 사실상 가정 내에서 배윤정은 돌봄 노동의 부담을 오롯이 떠안는다. 여성 노동자의 삶을 다룬 책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은 여성의 삶은 가족을 위한 삶으로 위치 지어지고, 여성의 생활시간은 가족을 위한 시간으로만 해석되어왔다고 말한다. 배윤정의 우울은 남편과 아이를 위해 삶의 대부분을 할애할 것을 강요당하는 여성-남성 간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서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은영 박사는 ‘(어렸을 때 해외 생활을 한 탓에) 서경환씨의 한국말이 서툴다’, ‘집에서 일하지 말고 상담시간을 정해놓아라’라고 조언하며 이들의 갈등을 지극히 개인적인 의사소통 문제로 일축한다.
<오은영 리포트> 3회 음소거부부 에피소드에서도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고 갈등을 개인 간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오류가 반복된다. 결혼 10년 차인 음소거부부는 5년째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대신 문자를 통해 꼭 필요한 정보만 전한다. 어쩌다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를 거세게 비난하는 날 선 말이 잇따른다. 이들 부부의 관계는 마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폭탄 같다. 그런데 음소거부부의 대화 내용, 행동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배윤정-서경환 부부와 유사한 갈등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가사노동·양육에 관한 남편의 무관심이다. 아내는 이른 새벽에 기상해 남편이 숙면을 취하는 동안 아이의 방을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상을 차린다. 또한, 아내는 자녀의 교육 문제, 방학 일정에 관심이 많지만, 남편은 이에 대해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도리어 아이에 관한 관심을 바라는 아내가 버겁다고 불평한다. 밤늦게 귀가한 아내가 싱크대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고 한숨을 쉬자, 그는 인터뷰에서 단지 귀찮아서 설거지하지 않은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남편의 ‘귀찮음’은 온전히 아내가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으로 돌아온다. 한국 사회에서 음소거부부의 사례는 그리 특이한 경우가 아닐지도 모른다. 2021년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정의 돌봄 시간은 남성보다 여성이 2배 길었다. 특히 12세 이하의 아동이 있는 경우 여성의 돌봄 시간은 남성의 3배였다. 그러니 남편을 향한 아내의 분노는 여성에게 지나친 가사노동을 부과하고도 방관한 사회의 몫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은영 박사는 ‘먼저 나를 되짚어 볼 것’, ‘부끄러움을 함께 감당할 것’이라는 솔루션을 제시하며, 또다시 부부 사이의 비뚤어진 관계를 개인의 그릇된 태도 문제로 환원한다.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간과하는 <오은영 리포트>의 문제는 급기야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폭력을 묵인함으로써 심화된다. 12회 물불부부 에피소드에 출연한 남편은 술을 마시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내에게 남편의 블랙아웃은 공포 그 자체다. 임신 6개월 차였던 웨딩 촬영 전날에 술에 취한 남편에게 폭행당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당시 상황을 ‘임신 6개월이라 배가 나온 상태에서 얼굴에 멍이 들 만큼 무방비로 폭행을 당했다’라고 회상한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 제2조 제1항에 따르면 ‘가정폭력이란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또한, 가정폭력처벌법 제2조 제3항에 의하면 가정폭력은 상해와 폭행죄를 포함한다. 따라서 이는 단순 개인 간의 다툼으로 치부될 문제가 아니라 ‘가정폭력’이라는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야 하는 문제다.
물불부부의 남편이 신체적 폭력을 일삼았다면, 13회 국제부부의 남편은 우즈베키스탄 아내에게 정신적 폭력을 일삼는다. 국제부부의 남편은 아내보다 13살 연상이고 현재 무직이다. 외국인 아내가 타지에서 홀로 일하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는커녕 돈을 벌지 못하면 안 되니 아프지 말라고 말한다. 경제 활동을 포기한 남편은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일침을 가할 시에는 ‘난 널 사왔어’라는 막말과 함께 공격적인 욕설, 손가락 욕을 서슴지 않고 퍼붓는다. 결혼중개업체를 거친 국제결혼의 경우 한국 남성이 개발도상국의 여성을 돈으로 구매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다. 인종, 성별 조건에서 열위에 있는 다문화가정의 여성은 가정 내에서 한국 여성보다도 훨씬 약자가 되기 쉽다. 그러나 남편의 폭력적인 언행은 그의 행동이 ‘우울증’ 탓이라는 오은영 박사의 진단에 가려진다. 단지 우울증 때문에 아내에게 위협적으로 대한다는 해석은 사실 납득하기 어렵다. 아내와 있을 때와 달리 남편은 친구 앞에서는 욕설을 쓰지 않았다. 만약 우울증으로 인해 욕설을 조절할 수 없었다면 아내뿐만 아니라 친구에게도 욕설을 사용해야 했다. 아내를 향한 폭력적인 언행의 기저에 자신이 강자이고 아내가 약자라는 인식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자고로 방송콘텐츠는 사회의 지배적 흐름을 반영한다. 문제는 사회를 지배하는 논리가 옳지 않을 시, 잘못된 논리가 미디어에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성차별적 인식을 내포하는 콘텐츠가 제작되고, 콘텐츠가 전파를 타고 방영되어 성차별적인 편견을 다시 강화하는 식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이 연쇄작용을 끊어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미디어로 송출되는 방송 영상은 우리가 부딪히는 현실 문제와 직결되는 까닭이다.
<쌍둥이 태어난 뒤 게임 못해...고시원 얻은 남편, 이혼 사유 될까>, <남편의 집밥 요구에 생긴 갈등...이혼 사유 될까> 작년과 올해 JTBC 사건반장에서 보도한 2건의 뉴스다. 전자의 뉴스에서는 가사·양육을 외국인 아내에게 떠넘기고 컴퓨터 게임에만 집중하던 <오은영 리포트> 국제부부의 남편이, 후자의 뉴스에서는 아내에게 현모양처가 되어 남편에게 요리해줄 것을 끊임없이 강요하던 <동상이몽2> 프로그램이 연상된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한 남성이 대낮에 충남 서산의 도심 거리에서 가정폭력을 휘둘러 아내를 살해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이전에 4차례나 경찰에 가정폭력을 신고했었지만 이내 남편에 의해 살해되는 참극을 막진 못했다. 앞서 <오은영 리포트> 12회에서 음주 상태에서 임신 6개월 차 아내를 폭행한 남편의 사례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TV 프로그램은 사회의 모습이 투영된 문화적 산물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불특정 다수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매스미디어의 창작물이기도 하다. 즉, <동상이몽2>, <오은영 리포트> 등의 TV 프로그램은 특정 사건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여 시청자들의 고정관념을 바꿀 수도, 사회의 부조리한 이면을 지적할 수도 있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패널들이 주고받는 멘트, 그 중에서도 특히 전문가인 오은영 박사의 견해는 무의식적으로 시청자들의 생각을 장악하기에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 실은 사연자의 개인적인 성향을 바꿔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가 뒤바뀌어야 해결되는 문제이기에 당장은 해결할 수 없다고, 때로는 용기있게 불편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이제 모든 갈등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솔루션은 그만두자. 진정으로 솔루션을 내려야 하는 대상은 가부장제에 멍든 사회이니 말이다.
* 본 비평문은 2022년 10월 13일 작성된 글로, 제25회 방송문화진흥회 좋은 방송을 위한 시민의 비평상 수상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