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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일리 Jul 30. 2020

대티고개에서 <소년의 눈물>을 읽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고향에 내려왔을 때의 일이다. 때마침 ‘자갈치 축제’가 열리고 있었기에 오랜만에 식구들과 회를 먹었다. 세꼬시로 뜬 전어에다 히라스와 도다리를 함께 주문했다. 때 만난 가을 전어는 고소했고, 쓰케다시로 나온 음식들도 먹을 만했다. 초장과 쌈장과 와사비 푼 간장에다 번갈아 가며 회를 찍어 먹다가, 외국어면서 또한 지방색 짙은 그 말들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회를 먹으면서 떠올렸던 상념은 <소년의 눈물>을 읽으면서, 내 할아버지들의 족적에 대한 구체적인 실감으로 옮아갔다. 나의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두 분 모두 일제 강점기먹고 살  일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셨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아 각각 히로시마와 나고야에서 돌아오셨다. 만약 그분들이 어떠한 사정이나 결심 때문에 돌아오지 않으셨다면, 나의 고향은 여지없이 일본 땅이 되었을 테다. 재일교포인 서경식의 운명이 그러했듯이.


고등학생이던 1960년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서경식은 구걸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만일 해방 후 내 아버지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더라면, 나는 저 아이들과 똑같은 처지, 똑같은 운명에 놓였을 게 분명했다. 할아버지와 더불어 한 발 앞서 고향으로 돌아간 가족들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장남인 아버지는 일본에 남아 계셨던 것이다. 저 운명의 장난이, 지금 나와 저 아이들을 이쪽저쪽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207)


위의 대목에다 “만일 해방 후 내 할아버지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을 겹쳐본다. 그러고는 재일교포들의 처지가 결코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것이 아님을 새롭게 실감하게 된다.


<소년의 눈물> 속 저자에 대한 진한 공감은 비단 위와 같은 가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병약한 책벌레’였던 어린 서경식의 모습에 내 어릴 적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나는 조야한 연립주택과 그럴싸해 보이려고 지은 이층집, 허름한 슬라브 집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동네에 살았고, 툭하면 성금을 걷고 제식 훈련을 시키는 국민학교에 다녔다. 반공 교육이 불러일으킨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마른버짐과 함께 허옇게 펴 가던 시절이었다. 누추하고 숨 막히는 현실을 피해 들어간 곳이 책 속이었고, 서경식이 그랬듯이 나 또한 “아름다운 자연과 유복한 가정, 기품 있고 이지적인 누이, 외국 아이들과의 편지 왕래, 무엇보다도 고전음악을 비롯한 ‘문화’! 나는 그것을 가슴이 아리도록 동경했다.” (23)


나 또한 꼭 그랬었다. 시공간은 달랐지만 ‘어린아이의 눈물’을 함께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재일교포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한국의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역사의 그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에 인용된 에리히 캐스트너의 “어째서 어른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의 일들을 그렇게도 새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일까요?” (85)라는 말은 어느덧 굳은살이 박인 내게 고스란히 와 박히는 말이다.


물론, 서경식이 슬픔을 말리기 위해서만 독서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꾀병을 부리며 읽지 않아도 될 책들을 섭렵하기도 하고, 사춘기 시절, 동료 여학생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마의 산>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서경식의 독서 편력은  옥에 갇힌 형이 보낸 편지의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닌 사명이다”라는 문구 앞에서 흠칫 멈춰 서기도 한다.


“한 순간 한 순간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엄숙한 자세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독서, 타협 없는 자기 연찬으로서의 독서.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 (146) 서경식이 자세를 고치며 했을 이러한 말 앞에서는 나 또한 잠시나마 고개를 괴었던 손을 빼고 일어나 앉지 않을 수 없다.


서경식이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 속에는 둘째 형인 서승, 셋째 형인 서준식의 영향을 결코 빼놓을 수 다. 책을 무척 좋아했던 둘째 형의 책들을 그대로 섭렵했던 그는 "작은형의 품에서 자랐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랬던  그가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옥중에 갇힌 형들에게 책을 차입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검열이 심했던 탓에 어떤 책을 넣어야 보안당국의 허가가 떨어질지 헤매이면서.


인생 여정 중에 책읽기의 매너리즘에 빠져버렸을   때, 어느덧 눈물이 말라버렸다고 생각될 때, <소년의 눈물>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어른의 눈물을 아는 자가 아이의 눈물을 안다. 아이의 눈물을 이해하는 자가 어른의 눈물까지 이해하는 것이다”(85)라는 에리히 케스트너의 문장에는 “타인의 눈물 앞에서 무감각해지고 말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어린 시절 흘렸던 눈물을 떠올려 보라”는 뜻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좋건  싫건 어린 시절 각인되어버린 그 무엇을 짊어진 채, 사람들은 수많은 괴로움과 얼마 되지 않는 잗다란 기쁨으로 수놓인, 인생이라는 긴긴 시간을 인내하며 살아나간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인생을 인내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은 어린 시절 몸과 마음에 깊숙이 아로새겨진 그 무엇이다.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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