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부산시에서 재개발, 재건축 사업을 하려면 길고양이의 안전을 확보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례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신문기사를 보면서 격세지감에 잠겼다. 문득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이 떠올라 찾아보니 집에 있었다. 1998년 2월 날짜가 남겨진 작가의 사인본이다. 아무리 떠올려 봐도 작가님을 직접 뵌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대학 시절 후배의 메모를 보고 수수께끼가 풀렸다. 후배가 작가님께 사인을 받으면서 자기 이름 대신 내 이름을 불러준 것이었다. 후배의 메모는 “조그만 행복들 느낄 수 있는 생활 하시는지요?”로 시작되고 있었다. 후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려 이 책을 다시 펼쳤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다시 읽을 곳으로 부산의 한 재개발 현장을 떠올렸다. ‘도심 속 섬’이라 불리는 곳, 범천동 매축지 마을도 곧 재개발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범천동은 일제 강점기에 바다를 메워 만든 마을이다. 태평양 전쟁 때 만주지역으로 군수물자를 실어 보내던 말과 일꾼들이 쉬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육이오 때 피란민들이 ‘축사’를 개조해서 살던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말이 머물던 곳에 사람이 오래 살았다. 그렇게 방치되던 곳이 도심재생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알록달록 색이 입혀졌다. 영화 촬영지로 소문이 나 카메라를 든 이들의 출사지가 되기도 했다. 할머니와 고양이들의 일상이 아랑곳없이 흘러가는 동안, 조합 설립을 둘러싸고 구청과 조합 측이 옥신각신하더니 최근 결론이 났다. (한때는 마구간이었던) 부엌에 방 하나 딸린 집과 공용화장실이 헐리고, 방이 세 개에 화장실도 두 개인 그런 아파트들이 들어설 모양이다. <부산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 조례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공사업체는 재개발 지역에서 공사하기 전 해당 지역의 길고양이의 이주와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매축지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갈까. 고양이들에게도 이주 대책을 마련해준다는데, 이런 고민은 이제 할 필요가 없어진 걸까? 하지만 난쏘공의 시대로부터 수십 년이 흘러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원주민들이 수억을 주고 새 아파트로 이주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구간을 개조한 그 집들은 대부분 프리미엄이 잔뜩 붙어 시세 차익을 노리는 이들에게 팔려나갈 것이다. “그날 밤 승용차 안의 사나이가 우리 동네의 나머지 입주권을 모두 사버렸다. 그는 다른 투기업자들이 이십이만 원에 사는 것을 이십오만 원씩 주고 모두 사버렸다. 그날 밤에도 영희는 팬지꽃 앞에 앉아 기타를 쳤다.”(연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01)
범천동에서 경로를 바꿔 ‘누나의 길’로 향했다. 1960년대 부산 동구 범일동 일대 조선방직과 신발 공장에 나가던 여공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다. 길 이름이 못마땅하다. 왜 ‘누나의 길’일까? ‘언니의 길’일 수도 있었는데. 이 길을 만들 적에 ‘누나’로 할 것이냐 ‘언니’로 할 것이냐 갑론을박했던 과정이 있기는 있었을까. 결국 ‘누나의 길’로 결정된 건 여공들이 집안의 남동생들을 위해서 일했다고 여겨졌기 때문일까. 언니들의 인생을 가장의 조력자나 산업 역군으로만 요약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골목에서 여공들이 출퇴근할 때 하이힐 소리가 울려 펴졌다고 하는 증언이 그렇게 반갑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여덟 글자에 그 여자들의 삶이 입체적으로 되살아난다. “잔업이 너무 많아서 출근길에서나마 멋 부린다고 정장에 구두 신고 길을 나서면 그 구두 소리가 어찌나 좋던지…….” 월급날이면 공장 옆 진시장에서 천을 떼어다 옷 만들어 입기를 좋아했다던 언니들의 인생은 박지선 감독의 <전설의 여공: 시다에서 언니되다>라는 영화에서 직접 구술되기도 했던 모양이다. 하루 열네 시간 이상 소음에 시달려 가며 기계처럼 일했던 언니들이지만 아름답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영이는 흰 원피스에 흰 구두를 신었다. 영이는 예뻤다. 영희가 영이의 가슴에 진한 보라색 꽃 한 송이를 달아주었다. 아이들이 큰 소리로 웃었다. 회사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영이는 웃지 않았다." (연작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193) 언니들의 모습에 연작소설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에 등장하는 은강 노동자 조합 부위원장 ‘영이’가 겹쳐진다. 영이는 예쁘게 차려입고 사측과의 회의에 들어간다. 무시무시한 소음과 섭씨 삼십구 도에 달하는 실내온도,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잠이 부족해 꾸벅꾸벅 조는 공원들을 옷핀으로 찔러 잠을 깨우는 작업반장들, 그런데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수당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사용자는 흰 원피스를 입은 영이를 보고 “무슨 돈으로 그렇게 예쁘게 차려입을 수 있었소?” 하고 딴지를 건다. 종업원을 대표하는 입장이라 깨끗이 입고 나오고 싶었다고, 이렇게 차려입기 위해 3급 근로자의 한 달 임금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고 영이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그 대답 속에는 ‘가난하다고 해서 과연 욕망이 없을까요?’라는 쓰린 질문이 담겨 있다. ‘누나의 길’이 의외로 너무 짧게 끝나버리는 것에 당혹스러워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이중섭 거리’가 나타난다. 희망100계단,이중섭 전망대, 거리미술관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져 있다. '이중섭 거리는 제주에도 있을 텐데, 화백이 부산에서 몇 년을 살았던가. 역시 유명인이라 대우가 다르구나.'구시렁대며 끝도 없이 이어진 경사진 계단을 오른다. 언제 끝날지 모르게 까마득하고 한숨이 폭폭 나오는 이런 계단이라면 부산 원도심에 수두룩하다. 하지만 이중섭이 남긴 글과 그림들을 읽으며 한 걸음씩 오르다 보니 금세 전망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저 계단 아래에서 품었던 불만도 어느새 스르르 풀리고 말았다.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극빈한 가운데서도 사랑과 예술을 놓지 않았던 이중섭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랬다.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는 나는 온 세계의 누구보다도 가장 행복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충분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계단이 끝난 지점 이중섭 전망대에 오르자, 이중섭의 아내 남덕이 남긴 글귀가 온 마음을 파고든다.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서 있는 집들에 여름 해가 고르게 비치고 있었다. 기어이 가난을 이기는 것은 사랑일까.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던 난장이도 있었다.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 선도 끊어버린다. (…) 아버지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나의 생각을 수정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옳았다.” (연작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