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돈다.”
아버지는 돈 잘 벌어다 주고, 어머니는 가사를 야무지게 돌보고, 자식들은 공부 잘하고 말 잘 들으면 보통 그 가정은 건실하다는 평을 받는다. 더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단은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기본이라고들 여긴다. 만약 이들 어느 한 구성원이라도 위치를 이탈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쑤군거릴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람들 사이의 평판과 시선이야말로 사회의 비공식적 안전책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시선’의 감옥에 갇히는 데서 더 큰 불행과 위선이 생겨나기도 한다.
런던의 증권 브로커인 윌리엄 스트릭랜드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지금껏 구축해온 궤도를 벗어날 결심을 한다. 이유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그는 17년 동안 가족들을 위해 봉사한 성실한 가장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기 안의 창작 욕구를 누를 수 없어졌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로 한 순간부터 그는 가장의 책무를 벗어던진 천하의 몹쓸 놈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인사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뻔뻔해지는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이 아주 비열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라지요.」
「사람들이 미워하고 멸시해도 상관없단 말인가요?」
「상관없어요.」 (64)
반면, 그의 부인인 에이미는 사회의 통념을 아군 삼아 자신이 누려왔던 안정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에이미는 남편의 사랑을 잃은 것보다 구설수에 오를 것을 더욱 두려워한다.
「아직도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글쎄요. 모르겠어요. 아무튼 돌아오길 바라요. … 그이가 돌아오기만 하면 만사가 순조롭게 해결될 것이고, 그러면 아무도 이 일을 모를 거예요.」 (53)
이쯤 되면, 과연 가족을 버리고 떠난 자가 철면피인지, 남은 자들이 불행한 자들인지 혼돈스럽게 된다. '가족주의’는 선량한 미풍양속의 ‘탈’을 쓰고 있지만, 때로 그것은 ‘덫’이 된다.
이 소설을 최초로 읽었던 것은 열두 살 무렵이다. 중학생 오빠가 문고본 소설들을 한 권 두 권 사 모으기 시작했고, 그중 한 권이 <달과 6펜스>였다. 그 무렵 주말이면 아버지를 따라 다대포 근처로 낚시를 가곤 했는데, 낚시에는 별로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나는 땅콩크림빵을 씹으며 오빠가 사둔 소설들을 한 권씩 읽곤 했다. <달과 6펜스>는 그 나이의 내가 읽기에는 무리였다. 태양 아래서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싸우듯 읽노라니, 엄마가 땡볕에서 무슨 책을 그렇게 보느냐고 혼을 냈고, 마지못해 바위틈 그늘로 갔더니, 그곳엔 갯강구들이 득실거려서 기겁했던 기억이 난다.
이십 대 중반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며, 가족주의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사십 대가 되어 다시 책을 펼쳐보니 “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돈다.”(18)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문장을 곱씹으며 최근 어느 날 지하철 1호선 종착역인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유년 시절의 그 기억으로 인해 이 책을 다시 읽을 곳은 다대포여야 했다.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돈다는 건 무슨 말일까. 새롭게 돌아봤자 결국 원을 못 벗어난다는 뜻일까, 같은 원이지만 늘 새롭게 돈다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단 뜻일까. 결국 우리가 도달할 지점은 우리가 처음 출발했던 곳, 다시 말해 ‘고향’이라는 말일까. 이때 고향은 역마살을 잠재워줄 이상향, 반드시 태어난 곳으로 여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때로 어떤 사람은 정말 신비스럽게도 바로 여기가 내가 살 곳이라 느껴지는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254)
스트릭랜드의 여정을 떠올려 본다. 영국 사람이었던 스트릭랜드는 안정된 삶을 떠나 파리를 거쳐 타히티에서 생을 마감한다. 타히티는 그에게 꼭 맞는 장소였다. 6펜스의 세계에서 벗어나 그가 사로잡혔던 달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현해 낼 수 있는 곳이었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라는 장소에 안착하여 비로소 자기 삶을 완성할 수 있었다. 좌우로 흔들리든, 새롭게 원을 돌든, 비틀거리든, 더디 가든 결국 꼭 맞는 곳(=이상향)을 찾아 자기완성에 이르는 것이 최종 목적지라는 것을 조금 알 것 같다.
<달과 6펜스>는 기어이 그것을 해낸 자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