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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Feb 05. 2023

어찌하란 말이지

여자는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눈을 떴다. 소설(小雪)을 지난 계절은 새벽녘 한기를 더했다. 암막커튼으로 가려진 방 안은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시간을 보려 핸드폰을 더듬어 찾았다. 핸드폰 화면에 ‘오늘의 운세’가 떴다. ‘사람들이 이런 것에도 관심이 많은가’ 하며 헛웃음이 나왔다.   

  

남편이 아파트를 팔았다. 여자에겐 팔겠다고 ‘통보’를 했을 뿐이다. 남편은 여자에게 의견을 묻지 않았다. 대신 여자가 이유를 물었다. 집값이 더 오르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 집값이 떨어지면 단독주택을 사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아파트를 판 뒤에도 집값은 계속 올랐다. 아파트 판 돈은 전세 값으로도 부족했다. 반 월세로 빌라를 얻었다.      


남편이 직장을 퇴직했다. 남편은 한 달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꼬박 밤을 새우더니 새벽녘에 자는 여자를 깨워 ‘통보’했다. 오늘 직장을 그만 둘 거라고. 남편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여자는 사정을 묻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잠 못 이루던 사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싶었다. 대신 여행을 다녀오라 권했다. 남편도 잠 못 이룬 밤들을 지우고 싶었다.       


남편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큰 집에 사정이 생겨 모실 형편이 안 되었다. 큰 집에선 남편에게만 전화를 했다. 여자에겐 형편을 설명하지 않았고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주위 지인들도 ‘불쌍하신 어머니’, ‘늙으면 서글퍼진다’, ‘당신도 언젠가는 늙을 것 아니냐?’ 이런 쓸모없는 설득만 퍼부어댔다. 어느 누구도 여자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예전의 노인네가 아니었다. 거침없이 자신의 말을 토해내던 의기충천은 사라졋다.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행동했고 숨 죽여 말했다. 시어머니가 내성발톱으로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틀에 한 번씩 소독받기 위해 병원을 갔다. 부축한 며느리에게 ‘고맙다’했다. 여자는 눈물이 났다. 시어머니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이 싫었고 측은했다. 남편에겐 애틋한 어머니겠지만 여자에겐 잊을 수 없는 모멸감이었다.       

오랜만에 여자는 남편과 의기투합했다. 여자의 친구가 남편과 싸워 집을 나왔다. ‘당연히 이혼해야지’하며 재산분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단 변호사를 구해서 자문을 받아야지’ 남편이 거들었다. 둘의 생각과는 달리 집나온 친구는 그녀의 남편과 화해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오히려 이번 일로 둘이 서로 잘 이해하게 되어서 다행이야’ 라며 여자가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새벽녘에 헛웃음 치며 흘려 읽은 ‘오늘의 운세’가 잠깐 기억났다. ‘주변 상황에 맞는 객관적 대응이 필요하나 어려움을 겪어봐야 지혜가 드러난다.’ 여자는 생각하며 소리 내어 되뇐다. “어찌하란 말이지? 천고법사께 여쭤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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