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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Jun 24. 2020

한 번뿐인, 돌이킬 수 없는

이언 매큐언

<the hunt>라는 덴마크 영화가 있었다. 소녀 추행의 혐의를 받은 교사가 겪는 고통을 다룬 작품이다. 실망과 수치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소녀는 친절하기만 했던 아저씨를 무고하였고, 한번 혐의를 받게 되자 주인공은 범죄자라는 덫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소녀는 최초의 증언을 번복하려 하지만 어른들은 ‘약한’ 피해자 편을 들어준다는 명분으로 최초의 주장을 지켜준다. 억울한 주인공은 무죄 판결을 받지만, 주변 사람들은 한 번 찍은 낙인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이언 매큐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속죄> 역시 어느 여름날 저녁 벌어진 강간 사건을 중요한 사건으로 무고의 문제를 다룬다. 언니 세실리아와 고용인의 아들 로비 터너 사이의 애정 관계를 훔쳐 본 열 세 살의 브리오니는 어른이 된 기분과 함께 비현실적인 감각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기분 때문인지 그녀는 사촌 롤라를 폭행한 범인으로 로비 터너를 지목한다. 앞의 영화처럼 어린 소녀의 증언은 강력한 힘을 가지며 가족들은 그녀의 증언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오해였는지 거짓말이었는지 모르는 그녀의 증언으로 언니와 가족은 멀어지고 로비는 교도소로 가게 된다. 브리오니는 둘에게 ‘죄’를 지은 것이고 이 소설은 속죄를 위해 쓴 브리오니의 고백록 형식을 띠고 있다. 실제 범인이 누구인지는 작품 후반에 밝혀지는데 그와 폭행 피해자 역시 로비에게 죄를 지은 셈이다. 내용으로 보면 이 소설은 오해 혹은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은 충격으로 쉽게 무너지는 일상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서사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긴박감 넘치고 밀도 높은 묘사는 독자가 소설에서 한 순간도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한다. 사건의 진행은 매우 느린 편이지만 지루함을 느낄 틈 없이 지속적인 긴장을 제공한다. 하나의 사건을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겹쳐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서사가 단선적으로 흐르는 위험을 막아 독자의 판단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거둔다. 작가에게도 솜씨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 소설은 매큐언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의 시선은 인물에 철저하게 밀착되어 있다. 인물의 내면을 천착하는 것은 물론 대상에 대한 묘사도 개별 인물의 관점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 초반에는 실제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묘사가 어떤 맥락에 놓이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는 명확함이 부족이 아니라 긴장의 강화로 이어진다. 소설을 읽는 내내 추리소설을 읽을 때처럼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진다. 거기에 예기치 못할 반전까지 포함하고 있다.    

  

제목 ‘속죄’는 죄를 지은 사람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용서나 화해와 달리 피해자가 관련된 말은 아니다. 브리오니는 자신이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하여 이 단어를 사용하지만, 피해자 로비의 고통을 알고 있는 독자들은 그녀의 속죄를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녀 때문에 불행해진 다른 사람들의 운명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따지고 싶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브리오니에게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해에서 비롯되었든 악의에서 비롯되었든 이미 벌어진 불행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어차피 없다. 이 점은 피해자나 가해자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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