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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Jun 24. 2020

누가 감히 전쟁을 말하는가 -
서부전선 이상 없다

레마르크

<삼국지>의 ‘적벽대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고대 전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전투를 치르기 위해 군대는 중요한 거점으로 이동한다. 상대방 역시 적군을 막기 위해 전장으로 이동하거나 특정 지역을 지킨다. 그리고 예고된 날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며, 승패가 기울어지면 병사들은 도망가거나 상대편에 투항한다. 장군들 역시 전세를 보아 전장에서 벗어나는데 무사히 전장을 벗어나면 쉽게 안전한 지역으로 피할 수 있다.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대부분 병사들이고 전장에서 떨어진 곳의 민간인들은 전쟁과 어느 정도 무관한 상태로 있다. 그리스의 마라톤 전투나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전은 이와 전혀 다르다. 한곳에 모여 스포츠 경기하듯 단판 격돌로 승부를 결정하는 전쟁은 이제 없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전방과 후방의 개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초반에 승패가 결정 나지 않을 경우 긴 시간에 걸친 지루한 소모전으로 이어지기가 일쑤이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무기가 개발되어 피해의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이 커졌다. 병사들보다 민간인의 피해가 더 크다는 것도 예전 전쟁과 현대전이 크게 다른 점이다.   

   

이런 현대전의 양상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 1차 세계대전이었다. 이 전쟁은 무엇보다 참호전으로 유명했다. 참호전은 전진도 후퇴도 없는 교착 상태에서 매일 전투가 벌어지고 병사들이 죽어간 자리에는 후방에서 새로운 병사들이 공급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참호 안에서는 군인의 명예도 자랑스러운 죽음도 없었다. 그냥 일상처럼 이어지는 전투와 휴식이 몇 년씩이나 이어졌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날아온 포탄과 총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이 필요했다. 끝없는 전투로 병사들의 감정은 황폐해졌고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고려 대상도 되지 못했다.      


19세의 고등학생 파울 보이머는 동급생들과 함께 10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받고 전선에 투입된다. 프랑스와 맞닿은 독일의 서쪽 전선 즉 서부 전선이다. 처음에는 칸막이가 없는 화장실 사용도 부끄러워하던 그들은 점차 전쟁에 익숙해진다. 부실한 보급과 비위생적인 환경,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이들은 점차 본래의 순수한 인간성을 잃어간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병사들은 전우와의 우애로 어려운 시간을 견뎌 나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우들도 하나씩 죽어간다. 보이머도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후송되지만 그곳에서도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다. 환자들의 죽음과 자살을 바라보며 그는 차라리 전선에 복귀하기를 바란다. 

     

주인공 보이머에게 가장 강렬했던 경험은 적군과의 직접적인 대면이었다. 보이머는 구덩이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던 중 우연히 구덩이에 들어온 프랑스군을 찌르게 된다. 보이머는 구덩이에서 그 프랑스군과 시간을 보내다가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적군의 상처를 붕대로 감싸주면서 자신에게는 절대 죽이려는 의도가 없었음을 설명한다. 그가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고 그를 찌른 것이 자기라는 사실이 그가 죽어가는 긴 시간 동안 그를 괴롭힌다. 그는 사람이 얼마나 서서히 죽어 가는지를 새삼 느낀다.

 

죄책감에 싸인 보이머는 죽어가는 적군 옆에서 전쟁에 대해 생각한다. 실제 자신은 적군을 관념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 관념이 적군을 찌르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프랑스군이 2미터만 옆으로 걸었어도 구덩이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옆 구덩이에서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본다. 보이머는 죽은 프랑스 병사의 지갑 속에서 나온 가족의 사진과 그의 이름을 적고 그들에게 편지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조금이나마 그것을 떨쳐버리려 노력한다. 살아나온 보이머는 총이 있었으면 그를 사살해 버렸을지 모르지만 칼로 찔러 죽일 용기는 나지 않았다고 친구들에게 고백한다.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기고 고참병이 된 보이머는 곧 종전이 될 것이라는 소문을 듣는다. 하지만 그는 전쟁이 끝나도 무엇을 할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자신의 세대는 전쟁으로 모든 것에서 단절되었다고 느낄 뿐이다. 그는 전쟁이 그들의 의지에 따라서 일어난 것도 아닌데, 그들이 왜 전쟁터에서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지 생각하며 분노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기 직전 그 역시 죽음을 맞는다. 그가 전사한 날 사령부 보고서에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라고 적혀 있었다.      


레마르크는 소설을 통해 전쟁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폭력으로 얼룩진 절박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절망에 빠진 이들의 깊은 사색을 들려준다. 다양한 인간들의 삶과 죽음, 변화를 통해 전쟁이 인류 전체에게 미친 해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궁극적으로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삶에의 의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발휘되는 인류애를 통해 인간성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고귀한 형제애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극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끈끈한 인간관계, 즉 동료애, 유대감, 협조 정신, 전우애 등으로 불린다. 이를 통해 우리는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을 때 마지막 기댈 곳이 인간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형제애는 충분히 고귀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형제애를 느끼기 위해 일부러 그런 상황에 처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슬픔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불행에 빠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작가나 보이머가 보기에 전쟁은 전우애로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그저 무의미한 고통의 늪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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