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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Jun 24. 2020

아버지와 아들, 그들만의 아름다운 저녁 - 문 앞에서

이동하

시작은 이렇다. 휴대 전화가 보급되기 전인 1990년대 초반, 서울 근교에 살고 있지만 남쪽 먼 곳에 직장을 두고 주말 부부로 살아가는 사십 대 후반의 남자는 문이 잠긴 아파트 문 앞에서 서성거린다. 그는 한 달에 몇 번 집에 오지만 오늘따라 연락 없이 올라와 빈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참을 서성거린 후 그는 자기 말고도 다른 사람이 집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다른 남자는 고향 대구에서 연락 없이 아들의 집을 찾아온 그의 아버지였다. 잠긴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두 ‘가장’은 문밖에서 우연히 하루 저녁을 함께 보내게 된다. 이 소설은 묘한 상황에 만나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는 부자(父子)의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중년을 넘어선 부자가 단둘이 긴 시간을 함께 보낼 일이 많지는 않다. 여러 이유로 한국에서 부자 관계는 다정하고 다감한 관계라기보다 점잖고 어색한 관계인 경우가 많다. 지금은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침범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가족 구성원과는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섬과 같은 존재였다.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가정 내에서보다는 가정 밖ᅌ게서 자기를 드러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 소설의 아버지들 역시 가족이지만 조금은 가족 밖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아들의 경우 천 리나 떨어져 있는 직장에서 외롭게 지내다 주말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교육 문제나 주거 환경 때문에 가족들은 여전히 서울 근교에 남겨둘 수밖에 없다.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면 가족들이 평소에 그를 긴히 찾지도 않는다. 경제적 능력마저 변변치 못한 그의 아버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버지는 새로 결혼한 아내와 통제하기 어려운 아들과 함께 살면서 문제가 생기면 반항의 뜻으로 전처 아들을 찾아 상경하는 일을 반복한다. 자신에게 다른 아들이 있다는 점을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한 ‘치사한’ 시위이다. 그들은 가정은 밖에서 얻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고 삶의 의욕과 활력을 재충전 받는 공간이라는 말을 실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들은 늘 잠긴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가정에서 소외당한 가장들의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갈등이나 화해를 인상적인 사건을 통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시키지는 않는다. 가족들에게도 일상이 있고 지금의 늦은 귀가도 그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는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 소설이 중심 서사와 주제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 아들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해가는 과정에 있다. 문 안이 아닌 문밖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아들은 아버지가 살았던 시대, 그가 만났던 사람 그리고 그의 고민까지 이해하게 된다. 마음속에 남아 있던 아버지에 대한 의문이나 서운한 감정도 녹아내린다.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아들은 안경점, 양복점, 식당, 목욕탕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다닌다. 새삼스럽게 추레한 아버지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목욕을 함께하면서 그는 아버지의 겨드랑이 아래쪽에 길쭉하게 드러나 있는 흉터를 발견한다. 전쟁 통에 생긴 상처다. 그는 전쟁의 상처가 단순히 아버지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주저 없이 말씀하시는 분이다. 그만큼 그가 살아온 세월은 험했고 개인이 견디기에는 벅찬 것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다. 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았고 유난히 무능력했으며 그런 만큼 매사에 불운한 분이라 여겼다. 그런 그가 새삼스럽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것은 그가 어느새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상치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아버지를 보았을 때 그는 자기 코앞에서 맞바라보고 있는 좀 더 늙고 좀 더 초췌해 보이는 자기를 보았던 것이다. 구체적인 삶의 과정은 달랐지만, 가장으로서 한 가정을 짊어지고 견디어온 세월의 무게는 온전히 그들의 얼굴에 남아 있었다.     

 

이 소설은 심각한 사건이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그러기에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잔잔한 필치로 그려냄으로써 우리 세대와 이전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변화한 가정의 의미, 가장으로서 아버지가 지고 가는 삶의 무게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문 앞에서」는 소심하게 살아온 평범한 이들의 모습을 애정을 담아 과장 없이 보여주는 고요하고 담백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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