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1920년 태어난 폴란드계 유대인이라는 이력을 보면 우선 ‘바르샤바 게토’ 혹은 ‘아우슈비츠’가 떠오른다. 2차 세계 대전 전후 나치의 우선 목표가 된 폴란드계 유대인들은 격리되는 것도 모자라 잔인한 학살을 당했다. 그것도 수백만 명이.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서전의 주인공 라이히라니츠키는 전후 가장 영향력 있는 독일 문학 평론가로 꼽힌다. 가족을 아우슈비츠에서 잃었고 자신도 끔찍한 게토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는데 말이다. ‘유례없는 삶’이라는 부제에 과장이 없지는 않지만, 그의 삶이 평범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이 책의 첫 장 제목은 “당신은 대체 정체가 뭡니까?”이다. 그는 폴란드 국적이지만 인종적으로는 유대인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독일인에 가깝다.(이는 프라하의 카프카와 비슷하다.) 독일어를 제일 잘 하고 폴란드어도 할 줄 안다. 두 언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는 게토에서 견딜 수 있었고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의 삶은 자연스럽게 우리 시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자서전 내내 그는 자신이 독일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주위에 상존하던 반유대주의를 찾아내는 일도 게일리 하지 않는다.
자서전의 전반부는 어린 시절 독일 문학에 빠지게 되는 과정과 나치 점령 후 폴란드에서의 삶을 다룬다. 운 좋게 게토에서 탈출하여 폴란드 민가에 숨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일, 이후 폴란드 군에 들어가고 공산당에 입당한 일, 런던 대사로 일한 일 등이 차례로 서술된다. 그는 이후 스탈린 체제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감되고, 정보부와 외무부에서 해고된다. 이후 바르샤바에서 독일 문학 편집자, 비평가로 활동하다가 1958년 가족과 함께 독일로 망명한다.
그는 폴란드에서 독일로 망명한 후 생계를 위해 글을 쓴다. 폴란드에 대한 일말의 미련도 남기지 않는 그의 행동과 사고가 조금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하튼 그는 신문사에 정기적으로 투고하게 되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고, 문단에서의 위치도 다진다. 그는 1960년부터 1973년까지 <디 차이트>의 고정 문학 평론가, 이후 1988년까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문학부 책임자로 일했다. 1988년에서 2002년까지는 독일 제2공영 방송에서 <문학 4중주>라는 서평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라니츠키는 스스로 냉정하고 객관적인 비평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많은 문인들과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더 많은 문인들과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가 포폄(褒貶)한 작가들은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 요하임 페스트, 아도르노, 우베 욘존, 뒤렌마크, 마르쿠제, 토마스 만, 하인리히 만, 마르틴 발저, 브레히트, 슈테판 츠바이크, 페터 한트케, 한스 베르터 리히터 등 전후 독일어권 유력 작가 대부분을 포함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들과 라니츠키 사이의 에피소드를 많이 기대하고 읽었다.
개인의 삶을 다룬 책에는 위인전, 전기, 자서전 등이 있다. 영웅이나 위인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여 독자에게 교훈을 주려는 글이 위인전이라면 전기는 그보다는 입체적으로 개인의 삶을 조명한다. 흔히 평전이라 부르는 전기는 인물과 시대, 갈등과 고민, 성공과 실패 등 가능한 객관적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재구하려 노력한다. 이에 비해 자서전은 기억에 의해 재구된 개인의 삶을 다룬다. 독자는 개인의 내밀한 면을 볼 수도 있지만 확인하기 어려운 주관적 견해를 날것으로 만날 수도 있다. 자서전을 읽을 때는 읽은 내용을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할지 늘 고민이 된다.
라니츠키의 자서전 역시 얼마나 가리고 얼마나 포장되었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가 독일 비평계에서 황제와 같이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 책에는 만족스럽게 드러나 있지 않다. 단지 성실히 비평가로서의 삶을 산 정도로 문학 권력을 쥘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비평 활동을 하면서 그와 사이가 벌어진 많은 작가들에 대해서 그가 공정하게 평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근원적으로는 나치에게 겪었던 고난을 모두 넘어설 정도로 독일 문학에 대한 그의 사랑이 컸던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여자관계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다. 그의 개인적 경험들이 유럽 현대사와 맺고 있는 관계가 매우 극적이다. 그가 만난 그리고 다룬 독일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문학을 향한 그의 열정 역시 인상적이다. 역사적 삶과 문학적 삶의 아이러니 역시 이 글을 끝까지 흥미롭게 하는 이유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감긴 그의 삶은 불행했을지 모르지만, 비평가로서 그의 삶은 행복했다. 그가 활동한 시기에는 문화 안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느 때보다 높았고, 라니츠키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많은 사람이 동의해준다면 그보다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