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안 일리스
책의 남은 페이지를 자꾸 확인하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내용이 지루해서 언제 이 책을 다 읽나 하는 불만 때문인 경우가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책이 다 끝나가는 게 아쉬워서 설레는 마음으로 남아 있는 즐거움을 확인하는 경우이다. <1913년 세기의 여름>은 오랜만에 아쉬운 마음으로 남은 페이지를 뒤적인 책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식의 구성으로 책을 한 번 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3년은 모더니즘 예술의 전성기였고 유럽 문화의 전성기였다.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회고하고,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리워했던 ‘오래되고’ ‘자랑스러운’ 유럽의 문화 전통이 살아 있던 시간이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구분에 의하면 ‘장기 19세기’가 종말을 구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그 해 1월부터 12월까지 유럽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예술가를 비롯한 역사적 인물들의 동정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이런 발상을 하다니 저자에게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300명이 넘는다.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하인리히 만, 아르톨트 브레히트,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구스타프 융, 파블로 피카소,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프란츠 마르크, 마르셀 뒤샹, 카지미르 말레비치, 아르놀트 쇤베르크, 아돌프 로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코코 샤넬 등. 모두 현대 유럽 문화사에 길이 기록될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들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그들의 이력을 설명하기보다는 1913년 당시 그들의 행적과 고민을 스케치하듯이 가볍게 기술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절정을 넘어서는 유럽 문화 안에서 예술인들이 어떤 고민을 했으며 어떻게 절망을 견뎠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에는 개인으로서의 주인공은 없다. 개인들 안에 스며든 시대의 분위기, 그들이 만들어낸 세기말의 문화가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이 주는 감동의 핵심이다. (만약 인물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읽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인물 외의 다른 주인공은 1913년 유럽의 도시, 그중에서도 단연 빈이다. 서유럽의 문화 중심 도시가 파리였다면 동유럽의 문화 수도는 빈이었다. 그해 빈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미술 아카데미 입학을 거부당하고 공원에서 수채화를 그리던 히틀러와 방안에 틀어박혀 민족 문제를 연구하던 스탈린은 1월에 빈의 같은 공원을 산책했다. 유고슬라비아를 이끌게 될 티토 역시 이 해에는 빈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했다. 십 년 이상 이 도시의 유명인은 프로이트였고, 오스카 코코슈카가 그린 알마 말러의 누드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가 그린 빈 여인들의 누드가 도시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다. 무조음악의 창시자 쉰베르크는 3월의 한 음악회에서 너무 날카로운 음색의 음악을 작곡했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따귀를 맞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1차 대전을 앞두고 곧 피살될 운명의 페르디난트 대공은 빈에서 자동차를 타고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문학만으로 한정해도 이 해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를 떠나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쓰고 있었고, 로베르토 무질은 <특성 없는 남자>를 시작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인 <스완네 집 쪽으로>가 출간되고, D. H. 로런스는 <아들과 연인>을 출간했다. 아내가 아픈 토마스 만은 <마의 산>을 구상했고, 심약한 카프카는 여전히 여자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고민했다. 저자에 의하면 이 해는 프란츠 카프카와 제임스 조이스와 로베르트 무질이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의 한 카페에 잠시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셨을지도 모르는 해였다고 한다.
여름은 전성기이지만 이제 곧 조락의 가을을 맞게 되는 계절이다. 아마도 유럽 문명의 1913년이 그랬던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이런 ‘역사적’ 사건들을 특별히 극적인 서사 없이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대단한 사건이나 필연적 사건을 만들지 않는다. 그저 한 시대의 끝에서 벌어진 일상적이고, 그러기에 운명적인 하루하루를 잔잔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 덕에 독자는 ‘그 시절’에 ‘그곳’에서 있었던 ‘그 사건’을 여유 있게 상상할 기회를 얻는다. 핏기없는 토마스 만의 표정이나, 권위적인 얼굴로 융을 만났을 프로이트의 모습, 누드화를 그리는 클림트의 화실 등이 차례차례 떠오른다. 다 적을 수 없지만 그렇게 떠오르는 장면이 너무나 많다.
비록 세기의 여름을 다루고 있지만 추상화된 역사가 아닌 구체적인 인간의 삶에 집중하고 있어서 나는 이 책이 좋다.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