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스위프트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고전’이라고 부른다는 농담이 있다. 고전은 이해하기 어렵고 재미도 없다는 많은 사람들의 선입견을 만족시켜 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은 읽은 후에 긴 여운을 남기고 언제고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고전이 시대를 초월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은 믿지 않지만, 특정한 시기의 시대정신을 담아낸 작품만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는 믿는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수많은 고전을 접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때 접하는 고전은 원작에 많은 편집이 가해진 소년·소녀물인 경우가 많다. 어린이들이 고전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쉽게 편집한 의도는 알겠지만, 의도와 달리 이런 책이 고전에 대한 사람들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책으로는 우리가 기대하는 고전의 ‘위대함’을 맛보기가 쉽지 않다. 피부와 살 심지어 이목구비가 달라진 뼈만 앙상한 작품에서 어찌 감동을 느끼겠는가. 어린 시절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이 소설인 줄 알았다.
원본과 아동물의 차이가 큰 대표적인 작품이 “걸리버 여행기”이다. 이 작품은 1726년 아일랜드 출신의 조나단 스위프트가 쓴 풍자소설이자 정치소설이다. 발표 당시에는 신랄한 현실 비판이 문제 되어 출판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전체 줄거리는 선상 의사 걸리버가 세계를 돌아다니다 여러 나라에 표류하여 겪은 특별한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걸리버는 차례로 작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 릴리퍼트, 큰 사람들이 사는 나라 브롭딩낵, 날아다니는 섬의 나라 라퓨타, 휴이넘이 지배하는 말(馬)의 나라를 경험한다.
어린이를 위한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과 거인국 부분을 잘라 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소인국에 도착한 걸리버는 별것 아닌 일로 일어난 두 소인국의 전쟁에 참여한다. 두 소인국은 계란의 넓은 쪽을 깨는 관습과 좁은 쪽을 깨는 관습을 서로에게 강요한다. 가운데를 깨면 되지 않느냐는 걸리버의 제안은 양쪽 왕국 모두에 의해 거부된다. 영화나 만화로 각색된 “걸리버”도 주로 소인국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때 관객들은 거인이 된 주인공으로부터 대리 만족을 얻기도 한다.
3부는 걸리버가 학자들의 나라에 간 이야기로,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문명과 지적 성취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한심한 것인가를 풍자한다. 그 중에서도 하늘에 떠 있는 섬 라퓨타는 문명을 이용해서 다른 인간들을 지배하는 압제의 상징이다. 라퓨타의 지상 식민지들 중 하나인 린달리노(Lindalino)가 항거해서 자치를 얻어내는 과정도 그려진다. 죽지 않고 늙기만 하는 사람들이나 일본에 대한 이야기도 후반에 짤막하게 실려 있다. (죽지 않고 계속 늙기만 하다니!)
이 소설의 주제는 마지막 4부에 있다. 걸리버가 들린 곳은 지혜로운 말들이 지배하는 나라인데, 그곳에서는 인간들이 말들의 노예로 생활한다. 이상적인 덕성을 갖춘 말들의 눈을 통해 추악한 인간의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작가가 보기에 그 모습이 바로 현실의 인간 모습이다. 잘 알려진 포털사이트의 이름 야후는 말들이 인간을 나추어 부르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어른이 되어 읽는 “걸리버 여행기”가 새삼스럽게 놀랍고 신선한 이야기는 못 되겠지만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읽어볼 만한 책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