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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Aug 05. 2020

팔 수 있는 것과 팔 수 없는 것

마르셀 에나프, 진리의 가격

소설책에 파묻혀 있다가 오랜만에 다른 분야의 책을 손에 들었다. “증여와 계약의 계보학, 진리와 돈의 인류학”이라는 매력적인 부제를 달고 있는 <진리의 가격>이라는 책이다. 철학과 인류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저자는 돈 혹은 교환이라는 개념이 역사적으로 변해온 과정을 탐구한다. 그는 자본주의 시대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을 지배하고 있는 교환이라는 제도를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보려 한다.  


냉철한 현실 인식인지 개인의 믿음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이 책은 시장은 값을 따질 수 없는 물건의 가격을 정해준다고 으스대고 있지만, 결코 그 물건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말할 수 없고 그 영원성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작가는 등가 교환이라는 상업적 방정식에 의해 세계가 움직이는 것 같지만 인생, 우정, 사랑, 고통 등 여전히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이 우리 주변에 많고 그것이 교환될 수 있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말한다. 공동의 기억이 담긴 물건들도 마찬가지이며, 진리 역시 그렇다고 말한다. 


논의의 시작은 소크라테스이다. 그는 소피스트들이 자신의 지식에 대해 가격을 매기는 데 대해 크게 반발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진리는 가격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이치를 알았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특별한 혜택을 입은 것인데 그것을 어찌 가격으로 계산할 수 있겠는가. 그 이전에 과연 진리를 안다고 확신할 수나 있겠는가. 진리에 가격을 매기는 이들은 장사꾼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파는 것의 본질에 대해 관심이 없는 자들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사람들을 현혹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자신이 가난하다는 점을 들었다고 한다. 진리를 팔고 다닌 것이 아니라 탐구하려 노력했다는 증거로. 

     

이제 이야기는 인류학으로 넘어간다. 이 책은 장사꾼들의 교환과 다른 의미의 교환으로 선물의 영역을 든다. <증여론>이라는 책을 읽었다면 익숙한 개념이다. 지금은 상호 선물이라는 제도가 없어지고 한쪽의 선의만 남았지만 원래 선물은 상호 인정의 유대를 확립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의례적 선물교환은 경제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유용하지도 않지만 서로를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였다. 상대방의 인정은 귀중한 물건의 상호 대갚음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에게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물건이 있다는 것, 어떤 물건은 이윤이 아니라 인정을 받기 위해서 서로 교환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교환과 계약은 정의를 규정하는 데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정의와 다원적 평등>을 참고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정의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등가 정의’로 불리는 것으로 엄격하게 계약을 따르고 평등성을 추구한다. 다른 하나는 ‘분배 정의’ 혹은 ‘균형 정의’로 불리는 것으로 더 유동적이고 우월하다고 여겨지며 자애의 규칙과 조화를 이룬다. 등가 정의는 참여자들 간에 형식으로서의 평등을 상정하거나 도입했다. 그것은 신분이나 능력의 차이를 무시하고, 오로지 교환되는 물건만을 고려한다. 이러한 면에서 등가 정의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개인을 고려하지 않는다. 가격에 의한 등가 교환처럼.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답해야 할 문제는 이런 과거에 대한 탐구가 현재를 보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이다. 오늘날에는 과학 탐구로부터 문화 활동, 예술 창조, 교사나 연구자의 급료, 저자의 보수에 이르기까지 그 어는 것도 상업적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시장가치가 이 평가의 객관성을 더는 보장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도 이 평가의 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우리는 이 상황에 익숙해져서 자연스레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현재 보상받아야 할 것은 배우거나 전수되는 내용이 아니라, 가르치는 데 드는 수고비이다. 마침내 소피스트는 플라톤이 씌운 혐의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들은 결코 지식을 팔지 않았다. 다만 여타의 능력이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의 서비스에 대해 보수를 요구한 것뿐이었다. 현재는 모두 그렇게 되었다. 임금 수입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대 전환에 의해서. 

     

저자의 답도 그리 명쾌하지는 않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의 방식이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전통 중에서 가장 낯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저자는 이 사고방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마음의 작동 원리에 대항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선생님들이 임금과 연구자들의 연구 기금, 저자들의 출판을 통한 이윤은 그 액수가 얼마이든지 간에 지식과 재능에 대한 보상 방식이지만, 이 영역에서 시장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리라는 것은 결코 쉽게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대로 드러난 현실들을 조사하고,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일을 그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의 사상 체계가 얼마나 유용한가에 대한 논의는 이제 식상하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전부터 그의 사상은 의심받았고 수정되었으며 때로는 폐기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자본론> 1권을 따라 상품,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이라는 개념을 만나던 뜨거운 독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가능한 냉철하게 읽으려 했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 했다. <진리의 가격>을 읽으면서 새삼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우리는 같은 이야기에 맴돌고 있지 않은지 의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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