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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Aug 12. 2020

자유 시장 논리와 에로티시즘

미셸 우엘벡, 투쟁 영역의 확장

그리 길지 않은 이 소설의 주제는 명확해 보인다. 자유 시장 경제가 개인의 투쟁 영역을 확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 섹스는 성에 있어서 개인의 투쟁 영역을 확장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자유 시장 경제가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수많은 문제를 낳았듯이 새로운 방향의 투쟁 역시 개인에게 수많은 고통을 주고 있다. 자유 섹스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은 없었지만, 나는 이 책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로운 인간관계라는 환상이 오히려 인간관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표피적으로 만든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관계가 낳은 대표적인 문제는 불평등이다. 자유로운 경제 체계는 어떤 이들에게는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도와주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실업과 가난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마찬가지로 자유 섹스 체계에서 어떤 이들은 정말로 다양하고 짜릿한 성생활을 즐기지만, 다른 이들은 외로움 속에서 쓸쓸히 늙어 간다. 자유주의 경제에서 투쟁 영역은 그 사회의 모든 연령층, 모든 계층을 아우른다. 자유주의 섹스 역시 그 사회의 모든 연령층과 계층으로 투쟁 영역을 확장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사회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이다. 나이 서른에 농업 관련 기업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여성들에게 인기가 없지도 않다. 하지만 그는 인간계에 늘 어려움을 겪는다. 어디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관계없이 홀로 살아가기를 희망하지만, 혼자라는 것에서 오는 우울증도 앓고 있다. 그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자기 일을 사랑하지도 않고 섹스도 즐기지 않는다. 그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살아야 하기에 필요한 일을 하지만 결국에는 그저 피로할 뿐이다.   

   

주인공의 동료인 라파엘 티스랑은 끊임없이 여인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키가 작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그의 투쟁은 언제나 패배로 끝난다. 섹스조차 표면적인 관심 이상이 아니라 생각하는 주인공이 관계를 아예 포기하고 사는 데 비해 티스랑은 가망 없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손쉬운 섹스는 거부한다. 표면적인 관계가 아닌 깊이 이해하는 관계를 원한다는 면에서 그는 옛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끝까지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숨을 거둔다.      


소외든 사물화든 인간관계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현대사회의 질병에 대해서는 다른 소설에서도 많이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독특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것을 섹스라는 구체적인 행위로 집약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친구의 입을 빌어 에로티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가짜라고 말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 주제에 대해 쉽게 싫증을 내지만 그것에 집착하는 척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깊은 인간관계가 점차 불가능해진 것을 자유의 증가 때문이라고 말하면 실제 섹스의 자유를 그 예로 든다. 실제로는 그것을 평등하게 누리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요즘 우리 시대 보통 사람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무언가 하려고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려면 겁을 먹고 머뭇거린다. 무엇에 애정을 가져야 할지, 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관계는 어차피 표면적이고 의미를 찾기에 세상은 환멸만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매우 귀찮고 번거로우며 우리는 너무나 무능력하고 무기력하다. 하지만 그런 나를 드러낼 용기는 없다. 그러니 어떻게든 나를 속이고 세상을 속여야 한다. 어떤 척이라도 하고 살아가야 하고 하루하루 그렇게 견뎌낸다. 그것도 할 수 없어진다면 우리는 주인공처럼 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  

    

우엘벡이 그린 이런 세상은 암울하지만 그럴듯하다. 빠져나갈 통로가 어디인지, 있기나 한지 알려줄 사람도 없다. 그런 시대가 마음에 안 든다고 살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하고 가능하면 잘 살고 싶다. 나에게는, 역설적으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용기를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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