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르웨이숲 Jun 01. 2023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으며

부모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책


'가족이란 뭘까? 엄마란, 자식이란 어떤 존재일까?' 끊임없이 내 안에 의문을 생성시키는 책이었다. '만약.. 내가 만약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미치지 않고 내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되묻게 되고 탄식하게 되는 책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부모가 자식이 저지른 행동을 깊이 속죄하면서도 자식에 대해 변함없는 사랑을 유지하는 일이, 자식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나도 알 것 같다. (10)
자기가 몰랐기 때문에 아들과 세상을 저버린 셈이 되었다고 한다.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차라리 죽는 게 최선일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죽음은 부모의 절망이다. 이 애도의 책을 통해 수는 대신 참회하려 한다. 미움이 사랑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실제로 미움과 사랑은 늘 같이 간다.(16)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은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범의 어머니가 쓴 회고록이다. 그 사고는 13명이 사망자와 23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미국에서 매우 큰 사건이었다. 아이들을 많이 보는 직업을 가진 나도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부모가 어떻게 가르쳤길래..' 하는 생각이 숱하게 들었다. 열의 아홉은 부모의 양육방식이나 태도 면에서 실제로 문제가 없다고 보기는 어려운 환경이었고, 열의 하나는 '부모님은 참 괜찮으신데... 원인을 모르겠다.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환경이어서 뭔가 가정 안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지레짐작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수 클리볼드'는 자신의 가정은 매우 화목한 가정이었고, 부모로서의 의무도 태만히 하지 않았으며, 사랑과 정성을 다해 자신의 아들인 딜런을 키워냈다고 서술한다.


나는 내 가족은 자살 위험이 전혀 없다고 마음속 깊이 믿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사이가 친밀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빈틈없고 민감하고 다정한 사람이라 안전하게 지킬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었다. 자살은 다른 집에서나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틀렸다.
자살에 대해 내가 알던 것 전부가 틀렸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그 까닭이 뭔지 나는 안다고 생각했다. 이기적이거나, 비겁해서 자기 문제를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순간적 충동에 휩싸이는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보는 문화적 편견을 나도 받아들였다. 너무 나약해서 삶의 도전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바라는 사람,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고 싶은 사람이라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쉽사리 판단하는 정확하지 않은 생각들이었다.(257)


 내가 가진 옹졸한 선입견이 이 책을 읽는 내내 금이가고 부서졌다. 부모로서 아이의 많은 것을 안다고 해도 중요한 것을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은 자식 된 입장에서는 나도 부모님께 많은 것을 속여왔기에 깊이 이해되었지만, 부모 된 입장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수 클리볼드는 자신이 그 사건을 인지하게 된 순간부터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 딜런이 그 일을 벌이게 된 과정과 심리상태를 되짚어보며, 자식 대신 피해자들에게 속죄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우울증에 대한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운동을 하기에 이른다.




 그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그녀는 직장에서 일하는 중이었고(대학에서 장애인 학생을 돕는 일을 한다.), 처음 그 소식을 접해 듣고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막내아들이 총기난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부정하며, 딜런이 다른 사람을 더 해치지 못하게 차라리 경찰의 총에 맞기를 기도한다. 딜런은 친구인 에릭과 타인을 해치고 나서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데, 수는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오히려 안도한다.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더라면 자신의 아들이 어떠한 계획과 목적으로 이런 사건을 저질렀을지 미궁에 빠졌을 텐데 자살로 삶을 종결함으로써 딜런이 원했던 것은 자살이지, 살인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구절을 읽으며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냉소적인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부모도 결국은 피해자라서 부모로서의 처절한 고통이 느껴져 너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은 친구인 에릭과 딜런이 저지른 사건이었는데 에릭은 평소 충동적이고 사악한 생각을 일삼는 사이코패스 기질이 다분한 학생이었고, 딜런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한다. 수는 처음에는 딜런이 약물이나 친구의 협박에 못 이겨 비자발적으로 한 행동이라고 한줄기 희망을 가져보지만, 사건 종료 후 보안관의 사건 과정 브리핑을 들으며 아들의 잘못을 인정하게 된다.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냐고 묻고 싶어요. 엄마이면서도 그 아이 머릿속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던 것에 대해서, 그 아이를 도와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요.(중략) 이런 아픔을 겪긴 했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에게 느끼는 사랑이 내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이었으니까요. 제가 말하는 아픔은 제 아픔이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은 아니에요. 하지만 제 아픔은 받아들였습니다. 삶은 아픔으로 가득하고 이 아픔은 제 것이지요. 딜런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더 좋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그렇지 않아요.(17)


 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딜런을 키우며 느꼈던 자신의 행복이 얼마나 컸던지 회고한다. 누군가에게는 딜런이 태어나서는 안될,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존재였겠지만, 자신에게는 정말 귀엽고 예쁜 아이였음을 서술한다. 또한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의 고통을 전혀 알지 못했던 자신을 책망하고 자책한다. 자신이 자녀의 일부밖에 알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어려움에 처한 아들을 돕지 못했음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이 구절에서 자식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느껴져 너무 서글펐다. 사실 남겨진 수와 그의 가족들의 삶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수십여 건의 소송과 피해보상에 휩싸여 가진 재산을 모두 잃어야 했고, 남편인 톰과도 결국 이혼을 하며, 유방암 투병까지 하게 된다. 딜런은 남을 해치고 그저 떠나버렸을 뿐이지만 남겨진 가족들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손가락질받으며 죄인 된 마음으로 살아야 하기에, 남겨진 가족의 고통을 감히 측량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 양육 방식이 결실을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딜런은 착하고 충실한 친구이자 사랑받는 아들이었고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는 듯 보였다. 딜런의 글을 보면 우리가 딜런에게 심어준 것들을 잘 받아들였다는 증거가 충분히 있다. 딜런의 일기에는 양심과 싸운 흔적이 가득하다. 그런데도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무언가가 우리가 가르친 교훈을 덮어버렸다.(421)
내가 아는 아이를 기르기 위해 내가 아는 최선의 방식으로 길렀고, 내가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 아이를 기르는 최선의 방식은 알지 못했다.(424)


 내가 아는 최선의 방식으로 양육해 왔지만, 내가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린 자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경은 어떠할까. 자녀를 양육하며 드는 정성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 이제 첫발을 뗀 나는, 아이를 20여 년 길러낸 딜런의 어머니 수의 아픔과 고통의 수준을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어떤 방식이 최선의 방식인 걸까. 내 아이에게는 최고로 좋은 것들만을 주고 싶었고, 주어 왔을 정성과 사랑이 이런 결말을 맺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절로 숙연해진다. 부모가 되는 과정은 더없이 민감하고 또 겸허해야 하는 것임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의 삶이 위기에 처하기 전에 도울 수 있다면, 세상이 모든 이에게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445)


 끊임없는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학생들 역시 정신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기 쉬운 환경에 놓여있다. 누군가는 타고난 정신력으로 쉽게 어려움을 극복하겠지만, 누군가는 지금도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딜런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지금 너무 힘들다고, 어려움에 처했다고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아이들에 대한 촉수를 민감하게 세워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필요를 알아차리고,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른의 몫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뿌리 깊은 지역감정을 경험한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