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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 Jan 18. 2021

담아내는 것과 비워내는 것

그림을 그리는 데에 있어서 비워내는 것과 담아내는 것 어떤 것이 더 어려울 것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입시에서 불분명한 목적으로 동양화과 서양화를 나누는 한국 미술계의 폐단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왜 그렇게 무 자르듯 두 개의 항목으로 입시가 나눠져야만 하는가? 그것을 나누어 규정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동양 사람이 그리면 동양화, 서양사람이 그리면 서양화 아닌가? 오리엔탈적인 재료를 쓰는 것이 동양화인가? 그렇다면 아크릴, 유화 이러한 재료를 사용하여 동양의 사상의 그림을 담고 있는 서양화 전공 학생들이 작품은 서양화인가? 그 기준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이다. 잘못된 기준으로 나눠진 것을 바로잡기엔 너무 긴 시간을 흘러서 어떻게 손대어야 할지 모르는 입시 전형과 학과들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큰 힘이 들어 그저 지켜보는듯하다. (이 모든 생각들은 전적으로 어떠한 이론을 바탕되지 않는 작가의 생각이다.)


왜 비워내는 것과 담아내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장황하게 동양화 서양화에 대한 이야기 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는 데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나는 동양화 또는 한국화를 전공하면서 비워내는 것에 많은 노력을 했다. 많은 교수들이 동양화의 중요한 점으로 비워내는 것 또 다른 말로 한다면 '여백의 미'에 대해 강조한다. (모든 교수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나 전반적으로 내게 남아있는 인상은 그러하다). 서양화는 어떠할까? 그곳에서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적어도 비워내는 것을 강조되며 그렸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비워내는 것을 많이 생각하고 그렸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비워내야 할 것인가? 정말 비워내는 것이 좋은 그림인가?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미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정 짓기는 어려운듯하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그림의 목적성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그림을 집에 걸어 놓고 싶다 생각해서 갤러리에 가서 그림을 고린다. 당신이 고른 그림은 좀 더 여유롭고 따뜻하며 담백하고 단조로운 그런 그림일 확률이 높다. 복잡하고 너무 구상적인 그림보다는 보기 편안한 그림들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면 잘 담아내는 것과 비워내는 것은 결국 같은 이야기이다.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 비워낼 수도 있고, 비워 낼 수 있는 사람이 잘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경영위치'를 잘 파악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진다면 나는 담아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그림을 막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담아내는 것에 집중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크게 그리기를 권장한다. 그림을 배운 적 없는 비기너들에게는 작게 부담 없이 시작하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이미 당신이 그림을 좀 그렸거나 오랫동안 그렸던 사람이라면 그림을 크게 그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작은 그림은 묘사도 색채도 움직임이 작아질 수 있으며 묘사되는 많은 것들이 생략되기도 하다. 그러나 크게 그리게 된다면 '눈동자'를 하나 그리게 되더라도 수많은 표현을 집어넣을 수 있고 그것을 잘 채우고 배워나갈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를 보니 담아내려는 욕심 때문에 어느 하나도 담아낼 수 없는 나를 발견했다. 손은 그림을 상징하고 그 나뭇잎들은 담아내려는 나의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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