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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길 Jul 07. 2020

제주 바다 냄새를 기억하는 이유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기억의 의미

며칠 전 한 유명인의 SNS를 들여다보았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에서 생활을 하며 티브이 출연을 통해 유명인사가 되었는데 SNS에 올린 몇 편의 글이 네티즌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글이길래 사람들이 그럴까?"라는 호기심에 이끌려 클릭한 마크 테토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의 SNS에서 한 편의 글을 읽게 되었다.

한옥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한옥에서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풀어낸 글이었다. 한옥의 본질을 냄새로 정의하며 그 냄새가 주는 의미를 곱씹는 글이었는데 읽을수록 놀라운 정도가 아니라 당황하기까지 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대학에서 공부를 한 엘리트 재원이라 해도 그는 파란 눈의 외국인이 아녔던가? 그가 생각한 것을 표현하기에는 한글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은 듯했다. 유려한 글솜씨에 빠져들어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며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던 순간 마지막 문단의 첫 문장에서 나의 눈이 멈춰졌다

'나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오랜 세월이 지나 나이를 먹을지라도, 이런 냄새를 맡으면 이 한옥이 떠오를 것이다'

이내 마크 테토의 한옥 냄새처럼 나에게도 그런 냄새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를 가더라도,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그런 냄새.

나는 짠내 나는 바다 냄새를 기억한다. 지금은 비록 바다보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방의 한 도시에 살고 있어 바다 냄새를 잘 맡지는 못하지만 어렸을 적 맡던 그 냄새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바람을 타고 코끝에 닿는 그 순간 살짝 비릿하지만 이내 따뜻한 소금기가 온몸에 퍼지는 바다 냄새. 전국의 무수히 많은 바다 냄새 중 내가 기억하는 바다 냄새는 제주의 바다 냄새다.


제주 바다 냄새를 기억하는 이유는 추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제주에서 태어나 바다 냄새를 머금고 있는 마을에서 자랐다. 해안 마을이라 바람이 거세 바다 냄새가 마을 안까지 진하게 밀려 들어왔다. 항상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저녁을 배웅하는 것도 바다 냄새였다. 제주에서의 모든 추억은 바다 냄새와 공유했다. 즐겁고 기쁠 때도, 아프고 슬플 때도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그렇게 나의 모든 추억이 바다 냄새가 되었다.

몇 달 전 친구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오래간만에 제주를 찾았다. 혼자 찾은 터라 어색하고 허전했는데 공항에서부터 제주 바다 냄새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비행기에 내려 제주의 땅을 밟기가 무섭게 코끝을 노크하는 바다 냄새는 한참만에 봐도 어제 본 듯한 친구 녀석처럼 익숙했다. 그리고 함께했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나의 후각이 제주를 기억하고 있다. 짠내 나는 제주 바다 냄새를 통해 제주를 기억한다. 그 기억 속에는 나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추억이 있다. 비록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기억은 그대로이듯 제주 바다 냄새도 항상 그대로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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