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가 계속 내린다. 거의 3주 이상 하루를 걸러 내렸다가 그쳤다가를 반복 중인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뜬금없이 찾아온 손님처럼 갑자기 하늘에서는 비가 내린다. 어제는 하늘이 구멍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장마는 여름 철에 여러 날 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비, 혹은 이를 가리키는 현상을 뜻하는데 올해는 유독 길다. 한자어 長(길 장) 자에 비를 의미하는 옛말 ‘마ㅎ’가 합쳐진 합성어 ‘장마’는 올해 앞에 大(큰 대) 자를 덧붙여 ‘대장마’라 하는 게 차라리 나을 듯하다. 이토록 많은 강수량과 오랜 기간의 장마는 처음이다.
내 기억 속의 장마는 제법 더워지기 전 본격적인 무더위를 알려주는 신호등 같은 존재였다. 여름이라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항상 마주하는 신호등처럼, 장마라는 초록색 불이 들어오면 “여름이 시작됐구나”라고 생각했다. 뭍으로 나오기 전 나고 자란 제주에서는 장마를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곳은 태풍이 지나가는 섬이었지, 빗물을 머금는 섬은 아니었다.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섬이기에 빗물은 구멍 뚫린 현무암 사이사이로 스며들었고 장마로 인한 침수 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장마가 지나가고 무더위와 함께 찾아오는 태풍은 가로수를 뽑아 날려버릴 만큼 강력했고 위협적이었다. 제주에 사는 사람에게 태풍은 빨간색 불이었지만, 그에 비해 장마는 안전한 초록색 불이었다.
장마를 걱정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엊그제 광주에서는 이사 오기 전 살던 동네가 폭우로 침수되었다. 침수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찾아본 인터넷 기사 속의 사진은 내가 알고 있던 도로의 모습인지 새로 생긴 하천의 모습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발목 정도 깊이의 침수를 예상했지만 어른 목까지 차오른 빗물을 보며 많은 걱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주변의 많은 산들이 무너졌고 도로가 꺼지고 잠겼다. 불과 몇 킬로 떨어진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입구는 빗물에 의해 봉쇄되었다.
침수 된 도로
장마가 가져오는 비는 주변을 멍들게 했다. 너무 많이 뿌린 탓이다. 그러나 때론 장마는 가뭄에 목마른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고마운 단비를 뿌리기도 한다. 이럴 땐 비가 너무 모자라면 또 다른 걱정과 고민을 낳는다. 올 해는 반대로 비가 너무 넘쳤다.
장마를 통해 생각한다. 중용에서 말한 세상의 이치처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균형의 중요함에 대해. 그리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장마를 바라며, 이제는 하늘에서 비대신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