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기간제 공무원으로 복무하고 있다. 변호사 자격을 가진 헌법학 박사과정 학생이기도 하다.
공부와 업무,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이상해 보이는 법령 조항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건 법령이 아니고 내 부족한 지식과 경험이었던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달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법령도 없지 않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기묘한 조항들을 상당히 잘 찾아내는 편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썰(說)을 풀어보자면, 2015년에 대통령이 강력추진한 행복주택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대학생 ·사회초년생·신혼부부의 거주 안정을 위한 주택임대 정책이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한계는 있었지만) 당시 돈도 없고, 대학생이고, 신혼부부였던 나는 대통령께 감사하며 입주를 신청하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법적으로 나는 기혼이라서 신청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듣고 만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그런 불합리한 법이 있을리가 없다고, 담당자가 실수할 수 있으니 너그럽게 다시 확인해보자고 생각했던 나는 법전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당시의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 제17조 제1항 [별표 5] 제1항에는, 일반 대학생은 되고, 일반 신혼부부도 되는데, 대학생이면서 신혼부부이면 이 정책의 혜택을 볼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이처럼 합집합에서 교집합을 빼는 방식을 수학에선 대칭차집합이라고 부른다] 왜 이런 법이 있느냐고 여쭤봤지만, 어디에서도 정확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솔로몬처럼 똑똑한 사람이 와도 그 법령의 깊고 심오한 뜻은 설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일찍 결혼한 놈들은 도저히 아파트에 들일 수가 없어! 대략 그런 의도였을까?
모욕감을 느낀 나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국토교통부와 법무부의 답변은 더욱 황당했다. 기혼 대학생을 수용할 수 없는 "도시공학적 이유"가 있다고 했다. 내가 도시공학 전문가가 아니라서 자신은 못하지만, 정부가 제출한 답변서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나중에 도시공학을 전공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는데, 그런 이론에 대해서는 듣도 보도 못했다고 한다. 어떤 전문가에게 그런 결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적 아이디어가 있다면, 아마도 대한민국 정부에서 특별채용으로 뽑아갈 것이다.] 내가 궁금한 건 이러한 차별적인 법이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인지, 꼭 필요한 것인지, 이런 법도 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였는데, 정부의 답변서에는 방대한 회의자료가 있었고, 얼마나 대단한 교수들이 얼마나 참여했는지, 그 법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회의와 절차와 행사를 거쳤는지만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나는 정말 답답했다. 그렇게 대단한 분들이 많은 회의와 절차를 거쳤는데도 왜 이런 우스꽝스러운 법이 결과물로 나온건지, 그게 알고 싶었을 뿐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헌법소원을 진행하던 중, 국토부는 시행규칙을 개정했고 나를 포함한 대학생 신혼부부도, 직장인 신혼부부와 마찬가지로 취급되어 입주신청권을 보장받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 매우 뿌듯했다.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법은 생각보다 널려있었다. 사실 나는 지금 공무원이기도 하고, 배우자가 공무원이기도 하고, 공무원들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하고 너그럽게, 문제 일으키지 않고 넘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왜 세상은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건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희한한 법들이 자꾸 내 삶을 건드리고 쿡쿡 찔러왔다. 최대한 신경쓰지 않고 모른척하며 넘어가려고 했지만, 결국 더 심한 법들이 나타나서 시비를 걸어왔다. 그냥 수그려야 할까? 보통은 그럴 것이다.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법을 잘 알면 가끔은 판을 뒤집을 수 있다. 이 세상도 가끔은 상대를 잘못 고를 때가 있다.
두 번째 헌법소원 경험. 우리 아이를 A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했다. 당시에는 입소 대기자가 많아서, 보건복지부가 매년 '보육사업안내'라는 지침을 발표해서 점수제를 통해 입소순위를 정했다. 특히 맞벌이가구에는 200점을 부여했는데, 다자녀, 다문화, 한부모 등 다른 1순위 요소들엔 100점, 2순위 요소들엔 50점만 부여하기 때문에 결국 맞벌이 요건을 채우느냐 마느냐가 입소순위의 핵심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의 가장을 맡은) 아내가 공무원이었으니, 나만 맞벌이로 인정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학업 중인 부모도 맞벌이의 일종으로 취급해준다는 내용을 봤다. 그런데 웬걸. 복지부 지침을 확인해보니 대학원생은 맞벌이인데, 대학생은 맞벌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행복주택을 떠올렸다. 당시 서울대 경영대 4학년이었던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알바를 해서라도 맞벌이를 인정받아야할지 고민했다. 그렇지만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게 장기적으로 아이를 위해서도 좋지 않겠다는 결론을 냈고, 일단 아이를 다른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대신 차근차근 싸움을 준비했다. 검색해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부모들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명운동도 올리고 그랬지만, 막상 변하는 건 없었다.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고, 헌법소원도 제기했다. 도저히 질 자신이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다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장 내가 대학생이고 주변에 대학원생이 많아서 잘 아는데, 정부는 계속 터무니 없는 주장만 했다. 대학원생은 장학금을 받고, 수업시간이 길다는데, 연구를 한다는데, 사실 평균 수업시간은 학부생이 훨씬 길고, 장학금은 케바케고, 연구도 마찬가지다. 문과, 이과, 예체능 등 다양한 전공에서, 풀타임, 파트타임, 석사, 박사 등의 양상까지 고려하면 학부생과 대학원생 중에 대학원생만 보육의 필요성이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장 나부터도 장학금을 받으며, 수업시간도 길고, (허접하지만) 연구도 하고 있었다. 정 그러한 차이가 중요하다면 그 차이 자체를 기준으로 만들면 되지,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구분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사실상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연령 차이가 있다보니 대학원생 부모는 많고, 대학생 부모는 적다는 것이다. 설마 몇명 되지도 않는 대학생 부모들을 학업을 중단시키고 노동자로 전환시키려고, 이 국가가 나서서 음모를 꾸몄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일하다보면 빠뜨리고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대신 실수를 알아챘으면 늦더라도 바꾸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보건복지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권위에서는 생각보다 빨리 조사를 마치고, 인권 침해가 맞고, 특히 아동에 대한 차별이기 때문에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몇 달이 지나도 검토하겠다고만 했다. [공무원이 검토해보겠다는건 그냥 안하겠다는 것과 같다 라는 속담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역시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가 없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기막힌 우연이라는 것도 있다. 마침 내 헌법재판소 사건을 접한 인터넷뉴스 기자님이 연락이 와서 기사를 쓰고 싶다고 했다. 전화로 내 입장을 몇 마디 했는데, 기사를 실어주셨다. 그리고 그 기사를 보고, MBC 뉴스데스크의 기자님께 연락이 왔다. '당신뉴스'라는 시청자 코너로 다루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방송 뉴스에 보도가 되고 네이버 뉴스 메인에도 걸렸다. 놀랍게도(혹은 조금도 놀랍지 않게도), 보건복지부는 MBC 뉴스의 방영 직후 입장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오랜 검토가 마침 그 날에 마무리된 것은, 이것도 역시 우연일까? 아무튼 보건복지부는 이듬해 지침을 개정해서 대학생을 대학원생과 동일하게 취급하기로 했다. 그 전에 줄기차게 주장했던 각종 양자 간 차이점들은 그냥 핑계에 불과했던 것일까. 마음이 뿌듯하기도 하면서 좀 속상한 부분도 있었다. 기사에 댓글이 많이 달렸는데, 25살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정상은 아니라는 댓글이 있었다. 아이 아빠가 서울대라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댓글도 있었다. 아이를 두고 더 심한 나쁜 댓글도 있었다. 내가 일일이 신고 버튼을 눌러서 퇴치했다. 다문화 가족 정책이나 공무원의 무능을 비난하는 댓글도 있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으면서, 세상이 좋아지려면 한참 남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해피엔딩이었다.
세 번째, 네 번째 제도개선 경험까지 쓰기에는 너무 복잡하니 생략하고, 그냥 최근에 발견한 이상한 조항을 간략히 언급하고 마치려고 한다.
최근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당내 경선과 공천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소위 안심번호 제도가 도입된 이후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커졌는데, 여론조사라는 간편한 방식으로 비당원들의 여론도 당내 경선에 적극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공무원이 경선에 활용되는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을 때 이 조사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57조의2(당내경선의 실시) 제2항, 제3항은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57조의2 제2항 : 정당이 당내경선[당내경선(여성이나 장애인 등에 대하여 당헌ㆍ당규에 따라 가산점 등을 부여하여 실시하는 경우를 포함한다)의 후보자로 등재된 자(이하 “경선후보자”라 한다)를 대상으로 정당의 당헌ㆍ당규 또는 경선후보자간의 서면합의에 따라 실시한 당내경선을 대체하는 여론조사를 포함한다]을 실시하는 경우 경선후보자로서 당해 정당의 후보자로 선출되지 아니한 자는 당해 선거의 같은 선거구에서는 후보자로 등록될 수 없다. 다만, 후보자로 선출된 자가 사퇴ㆍ사망ㆍ피선거권 상실 또는 당적의 이탈ㆍ변경 등으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57조의2 제3항 :「정당법」 제22조(발기인 및 당원의 자격)의 규정에 따라 당원이 될 수 없는 자는 당내경선의 선거인이 될 수 없다.
잘 살펴보자. 제57조의2 제3항에서는 공무원 등(정당법상 당원이 될 수 없는 자)이 '선거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였고, 여론조사 방식의 당내경선이 위 조항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명시적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 여론조사가 당내경선에 포함된다고 규정한 것은 제2항이지 제3항이 아니며, 이를 명시하지 않은 이상 유추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일부 판례(2019도8815 판결, 2018도4075)에서는 여론조사 방식의 당내 경선도 다른 당내 경선과 유사하게 본 경우가 있으나, 이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선운동을 규율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언급이고, 공무원이 개인적으로 위와 같은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아야 한다고까지 설시한 판례는 없다. 단순히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것은 경선 운동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실제로 일반 국민 대상 안심번호 여론조사 시스템은 당적 보유 여부나 공무원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지 않고 실시되고 있고, 공무원이 사전에 국민선거인단 같은 방식으로 등록하거나 동의하는 절차도 없다. 선관위에서 제시한 ’06. 5. 2. 회답에, 공무원이 당내경선에 선거인이 될 수 없다라고 언급한 부분은 확인되는데, 이는 단순히 법률을 동어반복했을 뿐이다. 핵심은 위 당내경선에 여론조사 방식이 포함되는지, 또한 선거인 개념에 여론조사 응답행위가 포함되는지의 여부이다. 공무원도 일반적인 의미의 선거권 자체가 박탈되지는 않고, 누구를 지지했는지 주변에 밝히지만 않으면 되는 것처럼, 당내 경선에 관해 별도의 선거인단 등록 신청 없이 비당원 자격으로 우연히 걸려온 전화에 응답하는 행위만으로 위 조항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는지 매우 의문스럽다.
두번째로 이상한 사항은, 공무원이 제57조의2 제3항을 위반하고 선거인으로 당내 경선에 참여한 경우, 이를 제재하는 규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형벌이나 제재 조항이 없는 이상 금지 조항은 훈시적 규정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공직선거법 제57조의2 제3항에서도 선거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였을 뿐, 이를 위반했을 때 벌칙이나 과태료를 부여하는 등의 제재규정이 현행 공직선거법상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경선이 진행되는 와중에 위와 같이 법률 조항에 위반되는 응답사례가 감지·확인된다면, 해당 응답을 무효로 할 것인지의 여부도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어쩌면 유권해석기관, 법원의 태도는 내 견해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해 어디에도 명확하게 정립된 설명이 없다는 것은 참 이상하다.
이 부분도 실제로 사고가 터지기 전에 누군가 학문적으로든 실무적으로든 비판을 제기해서 미리 개정이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물론 대부분은 관심 없긴 하겠지만..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가 혹시 놓쳤거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 이런 뻔한 문제를 나 혼자 발견했다는 게 말이 되나? 아니면 다들 생각은 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넘어간 걸까? 궁금한 게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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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선관위에 문의하니 2024. 5. 3. 생각보다 간단하게 답변이 나왔다. 여론조사 방식의 당내경선은 제57조의2 제3항에 포함되지 않고, 따라서 선거인이 될 수 없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는다고 한다. 당대표 경선에서도 물론 그렇다. 이렇게 쉽게 결론날 거였는데 괜히 복잡한 글을 썼나 싶기도 한데, 아무튼 이전에는 불명확한 상태에 있어서 찝찝했는데 명확히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으니까 속이 시원해졌다.
단, 여전히 남는 문제는 있다. 20대 대선의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 어떤 정당은 소위 (비당원에게 개방된) 국민선거인단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는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이 아니고 직접 선거인단 등록을 해야 경선 선거권이 생기는 시스템이었다. 이 경우 공직선거법 제57조의2 제3항에 의해 공무원은 참여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정당이나 정당 후원회 가입을 제한하는 것은 몰라도, 아예 비당원도 할 수 있는 국민경선 참여를 못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지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가령 당내 경선에는 헌법상 선거의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인지, 국민경선의 선거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볼 수 있는지 등.. 역시 세상에는 공부할 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