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또 여행 가고 싶다!"
길었던 여름휴가가 끝나고 나니 일상이 재미없어졌다. 역시 휴가는 길수록 후유증이 크다. 특별할 것 없이 반복되는 나날들이 축복이면서도 지루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회사와 집을 오가며 반복되는 풍경들과 매일 똑같은 인간관계에 지쳐 갈 때쯤 또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는 왜 여행을 하는 걸까? 나는 왜 여행을 좋아하는 걸까?
현실적인 이유는 여행은 단조롭고 지쳐버린 회사생활의 유일한 도피처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면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끝내지 못한 일들, 해내야 하는 일들을 그나마 잊어버리게 된다. 지난날의 실수들을 복기하며 자괴감에 빠지는 일도, 앞으로 다가올 업무를 미리 걱정하는 일도 줄어든다. 나는 사소한 일에도 걱정이 많은 편인데, 여행 갔을 때만큼은 지금 현재만 생각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행 이후에 벌어질 일들은 최대한 머릿속에서 미뤄둔 채로.
도피처라는 이유 말고도 여행지에서의 낯선 경험과 신선한 자극들은 순간순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할 때가 있다. 낯선 환경에서의 긴장감은 인간의 오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아름답게 미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여행지에서는 똑같은 햇빛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매일 마시는 커피도 더 맛있는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평소에는 지나쳤을 법한 사소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니, 내가 살아있음에 절로 감사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여행이 좋은 이유는 하루하루를 빈틈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여행지의 하루는 온전히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정하고 내가 만들어간다. 평소에는 하루하루를 고민하며 살기보다는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를 고민하고, 대부분의 하루들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기 위한 것들로만 꽉 채울 수 있어서 좋다. 물론 특별한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다니시는 분들도 많고, 하루 종일 숙소에서 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런 계획(또는 무계획)조차도 온전히 그 하루가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은 같을 것이다. 가끔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도 있고, 안 좋은 기억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부정적인 경험까지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는 게 또 여행의 매력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제주도 여행은 비는 왔었지만 뜻밖에 엉또폭포를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살은 까맣게 탔지만 제주 앞바다의 물고기와 돌고래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너무 더웠지만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들로 힘을 낼 수 있었다. 실패라고 느꼈던 순간들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다 좋은 기억이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행복하게 끝이 났고, 나는 언제든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