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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마니 Apr 24. 2023

퇴사의 이유

- 퇴사의 이유는 회사 밖에 있었다  -

퇴사계획을 정하고 나니, 덜컥 겁이 나는 것은 도대체 '퇴사의 이유'를 위에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였다. 퇴사할 계획을 잡은 사람이 별 걱정을 다 한다고 하겠지만, 내 성격이 그렇다. 워낙에 남 눈치 보고, 좋은 게 좋은 거라 싫은 소리 한번 못하는.


퇴사의 사유로 가장 좋은 것은 이직인데, 난 이직을 위해 회사를 관두는 것이 아니다. 퇴사보다 은퇴에 가깝기 때문에 나는 당분간은 전혀 일을 할 계획이 없다. 그렇다면, 퇴사 이유를 뭐라고 해야 할까? 회사를 다니면서 안 좋았던 일들은 보고서로도 쓸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이유로 대기에는 내가 회사에서 받은 것 또한 너무 많다. 그렇다면, 뭘까?


사실 내가 퇴사를 가장 고민했던 이유는 지친 몸과 마음이었다. 서울에 있던 회사의 지방이전 이후 내 삶은 급격히 힘들어졌다. 장거리 출퇴근과 두 집 살림(주말에는 서울집, 주중에는 사택)으로 인해 사실 건강도 좋지 않아 졌고, 마음도 외롭고 지쳐있었다. 그런 생활을 수년간 이어오다 보니 매년 퇴사가 꿈인 직장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안이 있어야 퇴사를 한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서울로 이직을 하지 않는 이상, 회사는 떠날 수 없는 곳이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 이직이 사실상 불가능한 나이가 되면서 나의 목표는 퇴사가 아닌 조기은퇴를 꿈꾸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보직을 맡게 되어 더 무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대신 통장은 조금 두둑해졌다. 하지만 돈과 스트레스 강도는 비례하는 것이었는지, 보직을 맡은 이후 힘든 일들이 더 많아졌고, 전보다 퇴사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져만 갔다. 그러던 중에 마음속에 툭하니 나를 건드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잊고 지낸 나의 오랜 꿈. 누구나 한 번쯤 버킷리스트에 간직되어 온 바로 그 꿈.

바로 '세계여행'...


대학생 때부터 나는 배낭여행이나 어학연수를 너무 가보고 싶었다. 동기들은 휴학을 하고 다들 해외로 떠났는데, 나는 여러 이유들로 그러지 못했다. 회사를 열심히 다니면서도 언젠가 퇴사하고 무작정 세계여행을 떠나겠노라 다짐한 것은 그저 '꿈'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짬짬이 휴가를 내서 열심히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만, 항상 아쉬움이 컸다. 정해진 시간,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여행.   


부부가 같이 회사를 관두고 세계여행을 다녀왔다는 경험담들을 일부러 찾아서 읽었지만, 읽는 것만으로 용기가 생기진 않았다. 그런 나에게 오히려 용기가 되었던 것은 내 나이었다. 돈을 더 모아서 안정적인 상황이 올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내 젊음이 너무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늙기 전에'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이제는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점점 확신이 되어 갔다. 그래서 퇴사에 대해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동안 그렇게 찾아 헤맸던 퇴사의 이유는 회사 밖에 있었다. 회사가 어떻고, 사람이 어떻고 이런 이유들이야 넘쳐났지만, 나는 그런 이유들에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은 회사 밖에 있는 꿈을 쫓아 회사를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의지로, 더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나가는 게 되었으니까.


회사에 일단 퇴사를 하겠노라 말을 하고 나서는 구체적으로 이유를 대지는 않았다. 그저 오랜 시간 장거리 출퇴근과 주말부부에 지쳤다고 하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대부분 내가 왜 회사를 나가는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눈치였고, (어떤 윗분은 신의 직장을 왜 관두냐는 말씀을 했다) 몇몇은 부러워했다.

세계여행 가려고 퇴사한다는 말은 친한 사람들에게만 전했다. 그것도 아직 계획이니 두고 봐야 한다는 정도로.  


오랜 기간 고민했던 퇴사의 이유, 결국 단순하지만 강렬한 것 하나면 충분했다.

오래전부터 미뤄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이 마흔에 꿈을 이뤄보겠다는 퇴사의 이유가 그동안 내가 제일 찾아 헤맸던 가장 보편타당한 이유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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